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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도 너무 길다 - 하이쿠 시 모음집
류시화 옮겨엮음 / 이레 / 2000년 3월
평점 :
절판
대학 전공 시간 <시가론> 시간에 선생님이 시를 이야기하시다가 일본의 하이쿠에 대해서 하이쿠만큼이나 짧게 설명을 하고 넘어가셨다. 그게 하이쿠라는 장르를 처음 접한 최초의 기억이다. 요즘 공고에 춤을 글로 배웠다는 광고가 있는데 , 문학 작품을 정말 글로만 배웠던 시기였다. 그 때는 관심도 없었으므로 다시 만나게 될지도 그렇지 않을지도 알 수 없었다.
다시 내 기억의 저편에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정원사의 서평 때문이었는데 정원사의 서평을 읽다가 다시 하이쿠라는 단어를 마나게 되면서 대학 때 기억이 오버랩되었다.
올해 초 가까운 곳에 교보가 있어서 들릴 일이 많아졌을 때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 한 줄도 너무 길다>를 발견했다. 하이쿠의 이론이 아니라 실재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었지만 , 교보에서 외부로 반출을 허한다는 도장을 찍고 붙여준 띠지를 봉인처럼 꽤 오랜 시간을 잠들어 잇었따. 어제 읽힐지도 모르는 띠지도 떼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면서 시간은 직선으로만 하강했다.
대학 때 시인론 수업을 할 때 였다. 권 선생님께서
"시는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이 쓰는 것이고 , 소설은 할 말이 적은 사람들이 쓰는 것이다"
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그 이후로 잊혀지지 않는 한 문장이 되었는데 , 이것은 글을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흘러나온 말이라고 하니 믿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잠깐 생각해보면 이 말이 맞다는 것을 알 수 있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소설을 읽고 느낀 것보다 잘 써진 시를 한 편 읽고 받은 느낌이 더 강렬하고 많은 것을 지배하기도 했다.
시라고 하면 최소 세 줄이 되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 정서다. 아마도 한시의 정서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현대를 거치면서 점점 길어져서 산문시의 형태를 만드릭도 했다. 길어져서 좋은 것도 있지만 역시 시는 짧은 문장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녹여내어야 제대로 된 시다. 괜히 운문이라는 말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었다.
세 줄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내기가 힘들 것 같은데 한 줄 달랑 한 줄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연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장르가 일본에 있다고 한다. 이름하여 하이쿠다. 말장난이지만 하이쿠를 읽으면서 어이쿠하면서 무릎을 치게도리지도 모른다.
하이쿠는 일본 히라가나를 기반으로 쓰여진 작품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다. 하이쿠가 의미의 전달만이 아니라 읽히는 맛이라고 할 수 있는 운율도 있었을 것 같은데 - 흔히 랩에서 말하는 라임이라고 하나 하여튼 운율 - 원문을 같이 실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 문장을 실고도 많은 여백이 남아있었기에 그 여백에 잡념이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하시길 - 일종의 찬미이고 깨우침인 글들이 많았다. 자연에 대한 찬미이며 , 인생에 대한 인간에 대한 깨우침인 글들이었다. 길게 말하기는 쉬워도 짧게 말하기는 힘들다. 정확히 쭉정이를 빼고 알맹이만 가려내서 문장을 만드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세상이 재미없고 지치고 허무하게 느껴질 때 있으면 한 번 꺼내서 읽어보고 싶어졌다. 잊고 있었던 나 이외의 외부와 내가 살아가는 시간에 대한 통찰이 한 문장 안에 드러나 있으니 다시 정체된 것들을 부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저기서 돌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생각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