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유랑인입니다. 또 왔습니다. 찔레꽃도 다 지고 입추도 다 지났건만 기온은 청량하지 못하고 부는 바람은 뜨겁기만 시간이 계속되고 있는 요즘입니다. 여름이니 더위를 견뎌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이겠습니다만 견디기 보다는 피해서 피서를 가고 휴가를 가는데 말입니다.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들고 흥겨운 휴가도 있을테지만 좀 조용한 휴가를 보내도 좋다는 생각을 해보는 요즘입니다. 책을 읽는 자들에게 조용한 휴가라는 것이 책을 느긋하게 읽어보는 것이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여름이니 시원한 추리소설이나 공포소설을 읽으면서 수박 한 덩어리 잡수시면서 얼음물에 발 담구어 두면 제법 즐길만한 독서라고 생각하긴 합니다. 저는 이상하게도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를 잡고 읽게 되었습니다. 부제가 아마 도양 고전 독법인 것으로 압니다. 동양 고전이라는 단어가 주는 갑갑함이 제법입니다. 오래된 글이고 게다가 동양 고전이니 한자라로 쓰여있고 한문을 기반으로 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쉬이 짐작할 수 있었는데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피하려고 했으면 피해갔었겠지요 사실 그렇게 도망 다닌 시간이 반 년은 족히 되어 보입니다. 읽는 법이 따로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만 읽는 법을 다르게 하면 관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설핏 맛보아본 동양 고전은 - 맛본다고 한 것은 통독은 하지도 못하고 이름만 들어본 것도 있고 조금 읽다가 팽캐쳐버린 것도 많기 때문입니다. - 텍스트는 고정되어 있으나 그 텍스트를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는가에 따라 무궁한 의미로 파생되어 본질은 하나이나 쓰임은 여럿인 것으로 변용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이 소개하는 동양 고전 독법은 인간 관계론입니다. 즉 시경 서경 초사를 시작으로 주역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한비자 불교 신유학 대학 중용 양명학까지 두루 아우르고 있는데 이런 고전을 관통하는 축이 바로 인간 관계론입니다. 인간 관계론에서 논의는 과거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 훈고학적 입장은 아니라는 말씀이겠습니다만 - 과거로 현재를 다시 반성하는 것이겠습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현대를 고전에 빗대어 반성한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고전이 고전일 수 있는 명분을 얻는 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특히 사상을 언술한 고전들은 더 그러해야 합니다. 과거에 머물러 그 시공간에서 소용이 다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도 달통할 수 있는 것이 고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전의 힘은 오래된 것이 아니라 영속성에서 확인되는 현재성입니다. 제가 재미있게 본 장면은 시경 서경 부분과 주역 묵자와 한비자 정도입니다. 다른 것을 흥미 없이 봤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우매하여 다른 것들은 허명이라도 들어 보았으나 아직 접해보지 못한 것들입니다. 묵자의 경우 겸애와 반전을 이야기했다는 것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전국의 시대에 반전을 이약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인데 말입니다. 흥미가 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만 아직 묵자를 만날 용기가 없습니다. 차일피일 미루게 될 바에야 미친척하고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만 집에 있는 다른 공자니 맹자니 주역 장자 도덕경부터 읽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책이 또 다른 책을 읽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니요 참 재미있는 일입니다. 한자 옥편을 준비했습니다. 아마도 이제 점점 책 이야기하는 기간이 길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 아침 - 잠을 못자서 밤을 꼴딱 세우고 지금 이시간 자보려고 자판을 두르리고 있습니다. - 주절거린 유랑인 이만 물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