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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완벽한 하루
채민 글.그림 / 창비 / 2010년 1월
평점 :
『그녀의 완벽한 하루』 <채민 만화 , 창비 , 2010)
완벽한 것은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아
나는 ‘완벽한’이라든지 ‘완전무결하다’든지의 말을 수긍하지 못하고 그 존재를 믿지도 않는다. 완벽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또 ‘전부’ ‘모두’등의 의미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는다. 완벽함에 방점을 찍으면 기표는 그대로이지만 기의는 대척점을 향해 치달아 불완전한 것 혹은 남루하고 비루하다는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는 것도 이미 배웠다.
그녀에게 완벽한 하루라는 것은 사치이며 백만 번 정도 죽었다가 깨어나도 완벽이라는 것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슬프지만 현실이므로 눈물을 찍으면서 우는 것도 신파다. 그대로 있는 그대로 환상으로 포장된 것의 포장지를 뜯어 완벽하지 않은 하루를 바라 볼 뿐이다.
세상은 신상 구두처럼 아름답지 않다.
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굳이 상기시켜주지 않아도 현실이 신상구두처럼 아름답고 따끈따끈하지 않다는 것을 경험으로 다 알고 있다. 그저 스스로 외면하자고 자기최면을 걸고 보더라도 보지 않은 척 지나가려고 아등바등한다.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 요즘은 감출 수 없는 것을 몸속에 사려 넣고 견디기 힘들다. 내 자루는 이미 낡아서 언제 터질지 조마조마하기만 하다. 우산 같은 것 세상은 신상구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신제품 우산이 점점 비를 맞아 낡고 삭고 색을 읽어가다가 찌그러지고 결국에는 비를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용도 폐기되어 소용을 다한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별 것이 아니라 소용이 다할 때까지 어떻게든 살아가는 거다.
그런데 세상이 꼭 ‘신상 구두’여야 하는 법이 있으랴 싶다. 신상이 아니어도 어떤가. 철 좀 지나고 중고가 되고 헌것이 아우러져 살아가는 것 각각의 것들이 아퀴를 맞춰서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 세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비정한 세계 지루하고 멸렬한 세계이지만 그 속에서 팽팽한 긴장감은 아니어도 긴장을 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녀의 완벽한 하루』를 읽고 보고 - 시는 읽어야 제 맛이고 만화는 봐야 제 맛이다. - 세상 참 팍팍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우울함의 정점으로 드리블해서 극단으로 치닫는다. 뭐 너무 극단적 시나리오가 아닌가라고 따져 물을 생각은 없다. 지극히 적나라하여 좀 부끄러울 뿐이다.
시 그리고 그림의 이종교배
시와 만화가 이종 교배된 것이 『그녀의 완벽한 하루』 그로테스크한 우울함의 祖師 기형도를 필두로 박정만 허연 오규원 최영미 최승자 이상 황동규 신현림의 시들이 소개된다. 하나같이 희망은 없고 절망이거나 절망과 대를 같이 하는 것들의 이미지가 그들의 시 한 편에서 기생하고 있었다. 봄을 노래하고 사랑을 노래하는 것은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시의 내면이라는 것은 거대하고 거대하기 때문에 다양하다. 그 다양한 것들은 각자의 고유한 색을 내는 것이어서 시는 기표는 하나이지만 기의는 읽는 사람들에 따라 천만변화를 겪는 것인데 그 중 한 가지를 잡아 올려 사람들에게 명징하게 드러내 놓은 것이 『그녀의 완벽한 하루』에서 그림이 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