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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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도하>를 읽은 것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고 기억과 생각은 집적되기 마련이다. 집적된 것들은 형상을 나타내는데 필경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한 편의 글이 될 수 밖에 없다. 김훈은 1년의 시간을 보냈고 보고 들었고 생각은 구체화되었고 집적되어 침강했고 침강한 생각의 편린들은 소설이 되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소설이 <내 젋은 날의 숲>이다.

 

<내 젊은 날의 숲>은 김훈의 소설의 흐름에서 한 점을 차지할지도 모른다. 여성이 화자로 등장하는 장편 소설을 내가 알기로는 처음 쓴 것으로 안다. 많은 김훈의 독자들은 여성이 화자이고 주인공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구매하고 싶은 - 김훈은 어느 강연에서인가 부산인 것 같다. 그 강연에서 여자를 잘 알지 못함으로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을 쓰지 못한다고 담담하게 고백했던 것으로 안다. -  책이다.

 

계약직 수목원 세밀화가 여성이 주인공인 이 소설은 김훈이 이제껏 고수해오던 것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장석주 씨가 <만보객 책 속을 거닐다>에서 언급했듯이 '건조하고 성마른 문체'는 이미 김훈만의 독자 브랜드다. <내 젊은 날의 숲>에서도 김훈은 그의 독자 브랜드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건조하고 성마른 문체는 시종일관 이야기의 중심을 잡았다. 명징한 것들이 더욱더 명징해지기도 했지만 밀어붙이는 것들은 짓눌려 명징성을 잃어버리고 추상성 속으로 함몰되어 간다는 것이 어쩌면 흠이라면 흠이겠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여성 화자를 앞세워 숲에서의 삶을 그 순간의 편린들을 서사할 때 , 나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의 주인공 남자가 여성성이라는 껍질만 뒤집어 쓰고 웅크린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졌다. 좀 더 적나라하게 이야기해보자면 김훈이라는 남성 화자가 여성으로 분장을 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난감함에 봉착했다. 차라리 남성이 주인공이었다면 좀 더 읽고 몰입하기에 적당한 문장이었다. 김훈의 독자 브랜드는 남성의 화자일 때 그 효과를 100퍼센트 혹은 그 이상을 발휘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김훈은 소설가로도 유명하지만 에세이스트로도 유명하다. 김훈의 소설과 에세이를 두루 읽어보면 같은 문장을 구사하고 있어도 소설과 에세이의 문장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책 겉 표지에 보면 이 소설이 여행의 소산임을 알 수 있다.

 

  "나는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풍경의 안쪽에서 말들이 돋아나기를 바랐는데 풍경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풍경은 미발생의 말들을 모두 끌어안은 채 적막강산이었다. 그래서 나는 말을 거느리고 풍경과 사물 쩍으로 다가가려 했다. 가망 없는 일이었으나 단념할 수도 없었다. 거기서 미수에 그친 한 줄씩의 문장을 얻을 수 있었다. 그걸 버리지 못했다. 이 책에 씌어진 글의 대부분은 그 여행의 소산이다. 산천을 떠돌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산천은 나의 질문을 나에게 되돌려 주었다. 그래서 나의 글들은 세상으로부터 되돌아온 내 질문의 기록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김훈은 <풍경과 상처>에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말할 수 있는 것을 겨우 말하기에도 식은 땀을 흘리며 기진맥진한다"고 말했는데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말하려고 웅얼거리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완성된 문장이 아닌 미수에 그친 한 줄씩을 버리지 못하고 보듬어 낸 것이 <내 젊은 날의 숲>인 것이다. 김훈은 이미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소설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내 젊은 날의 숲>은 소설의 구성과 서사를 가지고 책이 되어야 했던 것이 아니라 여행을 하고 쓴 에세이 성격을 가진 가령 <자전거 여행>과 같은 여행 에세이의 책이 되어야 했던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전하고자 했던 것이 더욱 명징하게 전달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남녀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양성애자의 고통 같은 것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김훈 또한 소설과 에세이 사이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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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완벽한 하루
채민 글.그림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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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완벽한 하루』 <채민 만화 , 창비 , 2010)




 완벽한 것은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아




 나는 ‘완벽한’이라든지 ‘완전무결하다’든지의 말을 수긍하지 못하고 그 존재를 믿지도 않는다. 완벽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또 ‘전부’ ‘모두’등의 의미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는다. 완벽함에 방점을 찍으면 기표는 그대로이지만 기의는 대척점을 향해 치달아 불완전한 것 혹은 남루하고 비루하다는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는 것도 이미 배웠다.




 그녀에게 완벽한 하루라는 것은 사치이며 백만 번 정도 죽었다가 깨어나도 완벽이라는 것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슬프지만 현실이므로 눈물을 찍으면서 우는 것도 신파다. 그대로 있는 그대로 환상으로 포장된 것의 포장지를 뜯어 완벽하지 않은 하루를 바라 볼 뿐이다.

 

세상은 신상 구두처럼 아름답지 않다.




 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굳이 상기시켜주지 않아도 현실이 신상구두처럼 아름답고 따끈따끈하지 않다는 것을 경험으로 다 알고 있다. 그저 스스로 외면하자고 자기최면을 걸고 보더라도 보지 않은 척 지나가려고 아등바등한다.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 요즘은 감출 수 없는 것을 몸속에 사려 넣고 견디기 힘들다. 내 자루는 이미 낡아서 언제 터질지 조마조마하기만 하다. 우산 같은 것 세상은 신상구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신제품 우산이 점점 비를 맞아 낡고 삭고 색을 읽어가다가 찌그러지고 결국에는 비를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용도 폐기되어 소용을 다한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별 것이 아니라 소용이 다할 때까지 어떻게든 살아가는 거다.




 그런데 세상이 꼭 ‘신상 구두’여야 하는 법이 있으랴 싶다. 신상이 아니어도 어떤가. 철 좀 지나고 중고가 되고 헌것이 아우러져 살아가는 것 각각의 것들이 아퀴를 맞춰서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 세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비정한 세계 지루하고 멸렬한 세계이지만 그 속에서 팽팽한 긴장감은 아니어도 긴장을 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녀의 완벽한 하루』를 읽고 보고 - 시는 읽어야 제 맛이고 만화는 봐야 제 맛이다. - 세상 참 팍팍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우울함의 정점으로 드리블해서 극단으로 치닫는다. 뭐 너무 극단적 시나리오가 아닌가라고 따져 물을 생각은 없다. 지극히 적나라하여 좀 부끄러울 뿐이다.




시 그리고 그림의 이종교배




 시와 만화가 이종 교배된 것이 『그녀의 완벽한 하루』 그로테스크한 우울함의 祖師 기형도를 필두로 박정만 허연 오규원 최영미 최승자 이상 황동규 신현림의 시들이 소개된다. 하나같이 희망은 없고 절망이거나 절망과 대를 같이 하는 것들의 이미지가 그들의 시 한 편에서 기생하고 있었다. 봄을 노래하고 사랑을 노래하는 것은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시의 내면이라는 것은 거대하고 거대하기 때문에 다양하다. 그 다양한 것들은 각자의 고유한 색을 내는 것이어서 시는 기표는 하나이지만 기의는 읽는 사람들에 따라 천만변화를 겪는 것인데 그 중 한 가지를 잡아 올려 사람들에게 명징하게 드러내 놓은 것이 『그녀의 완벽한 하루』에서 그림이 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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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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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 , 문학동네 ,2010)




사랑 , 그 끝나지 않을 이야기




세상에 태어나 정해진 것은 하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죽음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소멸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했다. 정해진 것은 죽음뿐이라고 생각했다. 요즘 몇 몇의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으면서 죽음과 마찬가지로 피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풀밭 위의 식사』를 읽으면서 더욱더 명징해졌다.




노래방을 가본 사람은 안다. ‘ㅅ’ 중에 가장 많은 노래 제목이 ‘사랑’이고 다른 노래 내용도 다 사랑과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아 어쩌겠는가 이 많은 사랑들을 전경린은 『풀밭 위의 식사』에서 사랑의 한 편린에 대한 이야기를 자아냈다.




기현 , 서강주 ,하이힐, 치마 누경 , 사랑은 유리 같은 것




『풀밭 위의 식사』는 기현과 누경의 사랑 이야기면서 강주와 누경의 사랑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누경과 인서의 사랑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랑이라는 것은 거대한 자루 같아서 그 자루 안에는 많고 많은 자잘한 사랑들이 모여 있다.




자고로 지탄을 받을만한 사랑이 더 애틋하던가? 세상의 잣대라는 것은 참 우습게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잣대도 들이대지 못한다. 강주와 누경의 사랑이 그러하다. 절절한 사랑이라고 말하면 조금 질펀해지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마른 사랑이다.




이들의 사랑은 하이힐 , 그날의 하이힐 한 쪽이 부러지면서 시작되었다. 시작되어서는 안되는 그런 사랑 따위는 상관없는 일이다. 강주와 누경의 사랑의 정점에서 베를린으로 떠나는 강주에게 치마 선물을 해달라고 한다. 중년의 남자가 치마를 산다는 것은 참 그렇다. 부인에게가 아니면 그다지 선물할 곳도 마땅하지 않다. 강주가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부인이 아니라 누경임을 확인하고 싶었던 누경이 아니었을까? 균열된 사랑의 끝은 어쩌면 자명한 것일지도 몰랐다. 누경의 일방적인 통보 ‘앞으로는 사적으로 만나지 않겠다’는 말로 관계는 끝이다.




기현과 누경은 섬으로 여행을 가고 위에서 누경의 자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누경에게서 밀려난다. 이 도한 사적으로는 만나지 않겠다는 완고한 문자 메시지 한 통으로 끝나는 사랑이다. 하지만 기현은 포기하지 않고 누경의 곁을 지키기로 한다. 안 될 사랑 외사랑이다. 누경의 사랑은 인서에게로 향한다. 불꽃이 튀기면 아무도 말릴 수 없는 것이 사랑이지 않던가? 기현은 인서와 누경을 담담히 지켜본다. 지켜보는 사랑은 매우 힘들지만 견딘다.




“깨어지지 않는 게 사랑이야 어떤 균열이든 두 팔로 끌어안고 지속하는 그것이 , 사랑의 일이야”라고 푸른 병이 사랑에 대해서 말했다. 사랑은 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어떤 것이어야 했다. 누경은 깨어진 유리병을 다시 만든다.




이후의 누경의 사랑이 어디로 향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글을 맛있게 읽은 사람은 그 방향을 알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보게 되는데 그것은 읽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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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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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권비영 ,다산책방, 2010)에 대해서 말하기

잊혀진 이름 , 조선의 마지막 옹주 덕혜

나는 고백하건데‘덕혜 옹주를 알지 못한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덕혜옹주라는 키워드로 대대적인 방송을 본 기억은 있는데 그것이 어렸을 적이라는 기억뿐이다. 잊혀진 - 왕정이 무너진 지금 - 조선의 왕조와 대한제국의 왕정은 아련한 기억이다. 이제는 그 시대를 경험한 사람을 찾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덕혜 오주와 내가 겨우 만날 수 있는 순간은 어린 나이로 시간을 얽어맨 한 장의 사진뿐이었다.

덕혜옹주는 실존 인물이고 실존 인물은 개인의 역사를 가진다. 그것은 시간의 집적이고 우리는 그것을 인생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삶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보통 인생이든 삶이든 반추해보면 어느 사람이나 질곡이 있게 마련이고 희비가 있게 마련이다. 불운한 시대를 곁가지로 산 사람이 아니라 그 중심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덕혜옹주의 삶이 아니라 눈물일지도 모른다.

태어났지만 오랫동안 존재를 묵살당했던 한 아이가 있다. 일국의 옹주로 태어난 것은 어쩌면 그 아이에게는 행운이 아니라 불운일지도 모른다. 기울어가는 국가의 옹주는 귀애받는 처지가 아니라 그저 정략적으로 소용이 있는 정치적 볼모에 불과했다.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그렇게 결정된 삶이었다.

풍파란 것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한 풍파가 도사리는 곳으로 유배 떠난다. 그리고 견딘다. 일국의 옹주이기 때문에 견뎌야 하는 고된 삶이다. 아이는 거부하지 않았다. 옹주로서의 삶 그것을 오롯하게 받아들였다.

자존심과 자존감만이 스스로를 위안했고 조선인이라는 정체성 하나로 힘든 세월을 견딘다. 보모이지만 부모이기를 거부당하는 삶이다. 그 순간이었을지 모른다. 그는 스스로 심하게 흔들린다.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다. 내부로부터의 붕괴는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앗아갔다.

돌아가려고 해도 돌아올 수 없는 삶 고단 한 삶은 조선이 아닌 대한민국이 되엇야 겨우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강토를 밟는다. 영면에 드는 땅은 그나마 이국이 아니라 자신의 모태가 있는 곳이다. 그나마 한순간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는 행복했으리라.


실존 인물이 살았던 시간과 시간 사이 행간을 매우는 작업

권비영 장편소설 『덕혜옹주』는 소설이다. 아주 당연한 것을 다시 거론하는 것은 소설이라는 것에 방점을 찍기 위해서이다. 소설이므로 덕혜옹주의 삶은 허구다. 덕혜옹주라는 실존 인물이 있지만 소설은 허구다. 지극히 신파적이고 극적이어서 눈물을 잘 잘아내기에 적합한 비극성과 질곡을 새겨 넣은 삶이다.

소설가의 작업은 인물의 삶 속에서 사건과 사건의 틈을 , 시간과 시간의 간극을 문자로 매워넣어서 사람의 깨어진 한 순간을 복원하는 것이다. 허구의 인물이라면 모든 것이 작가가 재구성하면 그만이지만 역사의 남은 인물은 그렇게 할 수 없다. 개연성과 허구성이 적절히 조화되어 사건의 사실성을 크게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자칫 잘못 쓰여지거나 주체할 수 없는 상상력은 이미 살다간 한 사람의 생을 통째로 뒤집어 버리고 땅바닥으로 내던지는 것이다. 무덤에서 일어날 일이다.

위에서 언급한 이유로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는 소설로 읽어야 한다.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삶은 잃어버린 조각이 많은 퍼즐이다. 퍼즐은 완전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 빈 퍼즐을 재구성한 것이 소설이 된 덕혜옹주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소설은 소설일 뿐 오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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