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에게는 사람됨을 배우고 조조에게 일하는 법을 배운다면 ...어떤 사람이 될지 궁금해지게 됩니다. 사실 어질어야 한다는
'인'을 강조하는 공자의 사람됨을 배운 사람이, 일할때는 남이 아프던 말던 나의 이익만 챙기면 될거같은 조조에게서 일하는 법을 배운다는
건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공자에게 배우는 사람됨의 도
37가지의 이야기와 조조에게 배우는 처세의 도 29가지의 이야기, 그리고 그 중간 중간에 놓인 일화와 우리가 알만한 이들의 행적들은 '지금의
나라면' 이란 상황대입을 해가며 공자, 조조, 그리고 알만한 이들이(찾아본다면...알만한 이들도) 한 선택을 따를 수 있을까란 생각을 주게
됩니다.
'세상을 바꾸기 전에 나부터 바꿔라' 편에 춘추 시대의 이리라는 사람에
대해 나옵니다. 아랫사람의 말만 듣고 판결을 잘못했는데, 이 사실을 알게된 후 이리는 모든 책임을 지고자 자신을 옥에 가두고 사형판결을
내렸다고 하는데요. "아랫 사람이 잘못하여 벌어진 일이니 그대의 죄가 될 수 없소."라며 말리는 이들에게 관리에게 직위를 양보하지도 않았고
많은 녹봉을 받는다 하여 그 돈을 아랫사람들과 나눈 적도 없는 내가 판결을 잘못내렸으니 자신의 판결을 따라야 한다고 했다는 겁니다. 조조의
이야기중에도 비슷한 일화가 나오는데요. 휘하 부하들이 자꾸 논밭을 지나가며 손해를 입히자 조조는 그런 행동을 용납치 않겠다고 했는데, 그의
말이 실수를 하게 됩니다. 다른 이들같으면 '말이 그랬으니" 나 "흠"으로 넘어갈 일을 그는 자신이 벌을 받겠다고 했고,
부하들은 간곡히 말려 조조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으로 간신히 넘어갔다는데요.
전혀 다른 이면서도 어떤 경우는 비슷하게,
그러다 어떤 경우는 완전히 다른 선택을 한 이유에 대한 이야기들이 재미도 주지만 말과 행동의 중요성을 다시 알려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아직도 기억하려하는 건 아는대로 행동해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때문 아닐까 하는데요. '관행'이란 말로 어물쩍하려는
이들에게, 그리고 그럴수도 있지...라고 고개를 끄덕이고 싶은 우리들에게 쉽게 풀이되어있는 짧은 이야기들이 내 안에 있어야 하는 '인성의
도'와 세상을 살아가며 지켜야 하는 '처세의 도' 사이에서의 행동에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같다는 걸 보게 하는데요. 우리가
원하는 사람이란 어때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