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걸린 할머니와 사건은 너무 어울리지 않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가게 됩니다. "호박 키운 적 있어?"는 생뚱맞은 질문을 해대는 모드
할머니는 우리에게 그녀만의 방식으로 과거와 어쩌면 현재에도 사건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왔다갔다 하는 기억에 의존해 이야기해주고 있는데요.
치매에 걸린 환자가 과거를 더 잘 기억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역시나 70년 전 수키언니의 실종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때
모드는 더 또렷한 기억을 보여줍니다.
모드 할머니는 딸 헬렌과 금방 이야기하다가도 "누구세요?"라는 질문으로 우리를 , 그리고 헬렌을 슬프게 만들지만 그런
깜빡거리는 일상속에서도 그녀가 기억하는 사건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녀의 절친 엘리자베스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모드 할머니는
그녀가 실종됐다고 생각하게 되는데요. 일정 시간이 되면 들리는 간병인이나 딸과 손녀의 너무 무책임하다 싶게 하는 노인들에게 생긴 사건
이야기에 엘리자베스의 모습은 겹쳐 보이고, 아무도 엘리자베스의 실종에 관심갖지않자 모드 할머니는 그녀를 찾아나서게 됩니다. 그 과정이
길지도 않은데 슬프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건, 친구 집을 찾아가면서도 자신이 지금 왜 길을 나서는지 잊어버리기때문입니다. 모드 자신도
기억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기에 매번 쪽지에 의지하지만 문제는 그 쪽지가 지금 쓴 건지, 아니면 과거 어느 때 쓴 건지, 그리고 왜 그런
글을 남겼는지조차 잊기에 문제가 되게 됩니다.
한숨을 쉬면서도 그녀를 돌봐주는 딸 헬렌과 손녀 케이티를 보면서 안도하게 되기도 하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엘리자베스의 아들 피터를
보면서는 절대로 저런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는데요. 자신이 얼마나 순진한 사람인지, 가족을 사랑하는지 우리에게 솔직히 기억을
보여주는 모드지만 순간적으로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폭발이 있을 수 있다는 것으로 또 우리를 슬프게 만들게 됩니다. 시간 흐름이 가져오는
어쩔수 없는 기억의 병이 사람을 달라지게 한다는 여러가지를 보면서 말이죠.
그렇게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할머니의 사건찾기는 그녀가 이제껏 던졌던 두서없는 말이 사건의 단서라는 걸 알게되면서 과거와 지금
무슨 사건이 있는지 정확하게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느릴것같은 할머니, 그것도 치매환자인 그녀의 사건보기는 의외로 우리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하는데요. 과거 푸릇했던 기억 속 그녀와 너무 달라진 현재의 그녀 모습이 나이듦에 대한 이해를 젊은이들에게 구하고 있기때문이기도 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들의 준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하기때문일겁니다.
기억을 잃어가는 자의 기억을 지키려는 노력은 가볍지않게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는데요. 사건을 풀어가는 이야기인줄 알았던 한 할머니의
이야기가 점점 나이들어가는 주변인들에 대한 생각과 거울속 보이는 나의 주름에 대해 한번더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