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치하야 아카네 지음, 박귀영 옮김 / 콤마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설령 내일 세상이 끝난다 해도......"

이 말이 왜 이리 매력적일까 싶었는데, 아마 이것이 우리 모두의 소원이기때문아닐까 싶네요.   내일 종말이 온다해도, 그 곳이 어디가 됐든,  너의 손을 잡으러 뛰어오겠다는 그 누군가와의 사랑을 꿈꾸는 거 말입니다.  그래서 연인이 되면  질문이 많아지는지도 모릅니다. 만일 내가 물에 빠지면부터, 내가 이뻐, 저 여자가 이뻐라는 유치하다는 걸 알면서도 해대는 질문까지...  "무조건 너"라는 답을 듣기 위해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상대의 입에서 원하던 답이 너무 술술 나오면 그 때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너무 익숙하고, 이제는 생각도 안하고 답하는 기계적 관계가 됐다고 말입니다.  


제 20회 시마세 연애문학상 수상작이라기에  무조건 아름다운 사랑을 꿈꿨는데, 그들이 보여주는 현실은 그렇지 않아 너무 씁쓸합니다. 5년을 동거했음에도  막상 결혼을 앞두게 되자 딴 남자를 만나게 된다는 '불꽃', 그 지나갈줄로만 알았던 딴 남자 구로사키의 회사 사람으로 그로 인해   자신의 가정을 돌아보는 남자 요헤이의 '손자국', 요헤이의  아내가 어떤 마음인지를 알 수 있는  '반지', 구로사키네  잠깐 얹혀살던 여자 후지모리의 아슬아슬한 사랑 찾기 '화상', 후지모리에게 다시 방을 빌려준 남자 마쓰모토의 마음을 볼 수 있는 '비늘', 후지모리와 인연이 있는 또 다른 여자의 사랑찾기 '음악'까지... [흔적]이란 책의 제목처럼 우연히 만나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일들은 다시 그 상대, 또 다른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며  흔적을 남기고 있다는 걸 볼 수 있게 됩니다. 비록 그들은 모르지만 말이죠.


처음엔 자신과 사귀고 있는 사람을 놔두고 다른 상대를 만나고 오히려 마음까지 더 터놓기에 마음에 들지않던 그들이 어느 순간 우리를 이해시키려하게 됩니다. 이제까지와 달라지는 건 없다는 남자의 말에 '지금 이 형태를 깨지 않도록 결혼이란 틀에 맞춰 두는 걸까? 무슨 일이 일어나도 되돌아올 수 있도록.'이라는 생각을 하는 여자가  의미없다면서 구로사키를 만날 땐 당신을 믿고 있을 데쓰야 입장이 되어보라고 왜 그의 마음을 물어보지 않는 거냐고 하고 싶고,   뭐든지 남에게 책잡히지 않으려 하는 강박에 사로잡혀 결혼도, 지금의 적당한 생활도 유지하려 하는 걸까 싶었던  여자가  상대가 준 반지에 목놓아 운다던지 할때는 이제 그녀의 선택은 뭐가 될지 궁금해지며  지금 상황이 맘에 안들어 박차고 나갈듯 행동하면서도  불편하더라도 이 자리에 머물기를 바라는   그녀들, 혹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부분도 생기기때문인데요.

 

 

 

"아마도 이 세상은 불안정하고, 뭐든 간단히 망가져 버려. 변하지 않는 것 따위 없고, 뭔가 남길수 있다고 생각한 게  한순간에 사라져 버릴지도 몰라. 그래도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게  얼마나 다양한 방식을 가진 건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누군가는 묵묵함이, 누군가는 표시하는 것이 사랑이라 하고, 또 누군가는 묶어두는 게, 또 누군가는 놔두는 게 사랑이라고 하니 말입니다. 그러다 우리는 나와는 생각이 맞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그럴때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지않을까 싶은데요. 


어쩐지 낯설고 정들것같지 않던 이들이  안쓰러워지는 건 우리도 절대적인 사랑, 변하지 않는 사랑을 꿈꾸는 평범한 사람들이면서도   무조건 주기만 하는 사랑이 싫은 사람들이기때문일겁니다. '흔적'에 나온 이들도 다 그런 이들이 아닐까 싶은데요. '우리'란 솔직한 내가 있어야 시작되는 거라는 걸 알려주는  '흔적',   내 맞은 편 그의 속마음이 뭘까 궁금해지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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