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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코의 날
미코 림미넨 지음, 박여명 옮김 / 리오북스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내 삶에 변화를 준 것뿐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그렇게 말하지 않는가. 인생에 변화를 주라고, 그 과정에서 나는 친구도 얻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여전히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물론
어디에 있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어쩌면 델마와 루이스의 마지막에서처럼 모든 걸 던진 듯 경찰들을 뒤에 두고 가는 여인이 있습니다. 생각과 다른 결말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단지 삶에 변화를 준 것뿐이라 말하지만 그 변화가 거짓말에서 시작된것이라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알기에, 그리고 소심한
그녀가 얼마나 당황하는지 지켜봐야 하기에, 우리는 곤혹스럽게 됩니다. 우연한 기회에 남의 집에 들어가 그 집 주부 이르야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된 이르마는 이르야와의 시간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그런 시간을 만들게 됩니다.
거짓말을 들킬까 싶은 두려움에 마음 반이 떨면서도 그녀는 나머지 반, 같이 있는 시간이 주는 행복을 누리고 싶다는 본능에
충실하게 되는데요. 현관에 적힌 누군가의 이름을 외우며 자신도 모르게 초인종을 누르는 그녀의 모습은 '제발'이라고 만류하고 싶게 됩니다.
나이 든 가까운 누군가의 외로운 모습이 될까, 시간이 흐른 후 나의 모습이 되는 건 아닐까 지레 겁을 먹어서일지도 모릅니다.
'외로움'때문이겠지만 조금씩 집착하는 그녀는 처음에는 우리를 당황하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턴가 점점 이해하게도 됩니다. 가끔 혼자
마시기 싫은 커피를 누구랑 마실까 고민하는 시간이 나에게도 있었기에 말입니다. 호응해주는 누군가와 같이 한다는 것만으로 행복해지는 시간이
그리울때 누굴 찾아야할지 고민하던 순간이 있었던 이라면, 그 시간을 너무 좋아하는 그녀를 어느정도는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래도 아직 50대의 그녀가 왜 그렇게 사람을 그리워해야만 하는걸까 하게 됩니다. 가족도 없는걸까 싶지만 매일 그녀에게 몇번씩이나 전화를
거는 아들이 있기에 더 그렇게 되는데요. 매일 하는 통화치고 아들과 엄마의 대화가 별 게 없기때문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그들 모자에게
표현하지 못하는 애정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기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것보다 충격적인건 아들에게서 전화가 끊기자 이르마가 아들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는 건데요. 매번 할 말이 있다는 아들의 말을 뒤로 하고 이제 바빠서 끊겠다는 엄마와의 대화가 제대로 됐더라면 어떤 이야기가
나왔을까 궁금해지는 건 이런 사연입니다.
그래도 그 거짓의 시간이 그녀를 변하게 만들게는 됩니다. 몇 번의 만남동안 동네 이웃들보다 아는 게 더 많이 생기면서 도와주고
싶어하고, 그들을 이해하게 되는 모습을 보이며 말입니다. 슬픔을 가진 가족을 보며 그녀가 무엇보다 아들을 떠올리는 건 그녀의 외로움이 어쩌면
상대를 너무 배려해 입을 꾹 다물었기때문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가족간에도 점점 그런 시대가 됐으니 말입니다.
먼저 변한 그녀때문인지 말을 건네받은 이들도 생각보다 그녀의 말에 반응하며 또 다른 이야기를 꺼내게 되는데요. 가벼운 사건을
일으키는데도 무거운 마음을 갖게 하는 그녀가, 외로움을 조금씩 잊어갔음 하는 마음이 간절해지는 건 그녀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기때문이고
그녀가 바라는 게 누구나 바라는 그런 간단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기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저 우리 모두가 함게이면 좋겠다고, 함께.
모두가 모두에게 친절하면 좋겠다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내게는 그것이 가능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