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평범한 사람의 일기
조지 그로스미스 지음, 위돈 그로스미스 그림, 이창호 옮김 / B612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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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제 일기는 아닙니다. 제 일기가 궁금하셨던 분이 계셨다면 말입니다. 이 책 소개글을 보면 1888년부터 주간 잡지 펀치에 연재된 이 소설은 그 당시에는 별로였으나 1910년도부터 명성을 얻었다는 말과 힐레어 벨록이(물론 누구인지 모르는 분입니다만...) 이 이야기를 '우리 시대에 몇 안 되는 불멸의 업적 중 하나'라고 일컬었다는 말, 그리고 1930년대 소설가 에벌리 워 역시 그의 에세이에서 '이 책이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는 글이 있는데요. 이 글을  못봤다면  '평범'과 '일기'라는 단어에 아마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가 이렇게 빨간채  욕조에 있는 이유가 있답니다. 겉멋만 잔뜩한  푸터씨...>

 

또 어떤 이는 이 소설이 저자인 형 조지와 동생 위돈 그로스미스 형제의 실제 가정생활을 소재로 했으며 밥 벌레같은 처지의 위돈이 루핀의 모델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까지 해 놓았는데요. 맞는 말이던 틀린 말이던 모욕적이라는 생각에   형제가 모두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으로 찰스 푸터씨는 누구며 그의 아들 루핀은 또 어떤 아들일까 궁금해지게  됩니다.


왜 내 일기를 출간하지 않는건지  끝도없는 자신감을  보이는 찰스 푸터의 유일한 회한은 젊었을 때 일기 쓰기를 시도하지 않은 것이라는데요. 아내 캐리는 그를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지 않지만 찰스씨의 일기내용을 보니 그래도 그는 캐리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아내 캐리는 이렇게 순진한 남편을, 더군다나 자신을 이렇게 사랑해주는데 왜 타박할까 싶었는데 자기 생각만 옳다고 하는데다  주변 사람들의 눈이나  사교계의 유명 인물이라면  꼼짝 못하는 모습을 보니 이미 따놓은 점수도 한순간에 까먹게 되는, 그런 사람 아닐까 해보게 됩니다.


착하지만 푼수끼가 있고, 친구들의 어이없는 장난에 순진하게 넘어갈만큼 아직은 세상사에 덜 찌들은 가장인 찰스씨는  스스로 발등찍는 일도 잘하고, 당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무엇 무엇이','그러므로','그래서' 라는 똑부러진 어휘구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 모든 일을 대충 마무리, 그러면서도 내가 눈감아준다 하는 마음 넓은 이인양 하는 귀여운 면도 보이는데요. 그렇게 애같은 면을 보이다가도   아들 루핀이 성실함이 최고라 여기는 그의  눈에는 일확천금만 노리는  못마땅한 짓만 저지르며 다니는 애송이로만 보여  남들 눈에 티나지 않게 애간장 녹이는 모습을 보일때는 역시 구세대의  모습도 보게 됩니다.


나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게 될 아들. 승합 마차로 출근도 같이하고 집에도 같이 오고........ 누가 알겠는가, 시간이 지나 저 녀석이 우리의 작은 집에 관심을 두게 될지. 집 안 구석구석 못질하는 나를 돕거나 벽에 그림을 걸려는 엄마를 도울지.  ... ...

그의 일기를 읽노라니  부모 세대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생각나게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아주 작은 일을 상상하며 즐거워하느라  늦은 밤 잠 못들며 뒤척였다는 그의 하룻밤이 얼마나 애틋한지, 성실성보다는 실적으로 일을 나누는 아들의 행동에 놀라는 그의 모습은 또 어찌나 짠한지, 나에게도 있었을 비슷한 하루 하루가 글로 보니 이야기가 되고 다른 일을 연달아 또오르게 하는 매개체가 된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요.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라는 그의 마지막 일기부분은 시대를 넘어 공감하게 되는 마음으로 그의 가장으로서의, 평범한 회사원으로서의, 성실한 친구로서의 일상에 감사해 크게 기뻐하는 그를 떠올리며  절로 흐뭇해지게 됩니다.


찰스라는 실존인물의 글이 아닐까 할만큼 일상을 그려갈수 있기에  1890년대를 이렇게 잘 대변하는 글은 없다는 말도 그래서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데요. 시대가 다른만큼 많은 어휘들을 뒤에서 찾아가며 무슨 뜻인지 찾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주변을 둘러싼 작은 소품 하나에 신경쓰며 아내의 바뀐 취향이며 습관에 눈길주는 남자, 그리고 변하고 있는 세태를 불평하며 자기 생활습관을 고집하려 하지만 남들 시선에 저절로 자신을 돌아보는 남자의  평범과 일상이 함께 하는 나날도  이렇게 보니 충분히 재미있고, 좋은 글이 될 수 있겠구나 하게 됩니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나 '브리짓 존슨의 일기' 가 후대에 이 이야기에 영향받아 나오게 됐다는 말은 또 얼마나 놀라운지요.


일상과 평범이 좋은 글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려준 오래전 글이  푸터씨가 보이는 주책을 나는 하고 있는 게 없는지, 그때부터도 세대가 다른 자식의 일은 역시나 내 생각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게 되는데요.  내 일상을 시간이 지나 글로 보게 되면  어떨지,  가끔 아이들 어렸을 적 일기를 보면서 내가  즐거워하듯 우리 아이들도 내 일기를 발견하게되면 즐거워할지, 혹은 부담스러워할지  궁금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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