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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중요성을 깨달은 달팽이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7월
평점 :
"그 동물이 빠르면 빠를수록 인간들은 더 탐을 내기 마련이라고
말이야."-46
달팽이는 왜 느릴까 란 생각을 한번쯤은 해봤던 것 같습니다. 덩치에 비해 집이 너무 무거워서일까 라는 스치는 생각으로 금방 접었던 것
같은데, 같은 질문을 우리 아이나 장차 생길 손주에게 받는다면 뭐라 대답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해보게 됩니다. 루이스 세풀베다에게 손자가 같은
질문을 했다 하니 비슷한 일이 나에게도 생길 수 있으니 말입니다. 당황한 그는 생각해 보고 답해주겠다고 약속했고 이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간단해보이면서도 복잡한, 알고자 하는 달팽이의 여행에서 우리는 왜 빠른 걸 좋아하는 걸까까지의 이야기는 아이들에게도 좋은
이야기가 되겠지만 어른들에게도 생각할거리를 주게 됩니다.
자신들이 사는 곳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믿고 사는 달팽이 무리가 있습니다. 좋아하는 민들레가 가득하고 평화롭기만 한
삶에 만족에 만족을 더하는 그들에게 질문을 가진 녀석이 나타나게 됩니다. 귀찮게시리 말입니다. 달팽이들은 왜 느린건지, 이름은 왜 또
없는건지 궁금한 녀석에게 모두들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고 핀잔을 주는데요. 세상이란 게 원래 그런거라는 그들에게 아직은 이름이 없는 달팽이가
말합니다. 이유를 알고 ,이름을 갖게 되는 날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그는 길을 떠나 수리부엉이도 만나고 거북이도 만나며 자신이 알지 못했던 바깥 세상이라는 걸 보게 되는데요. 그러면서 익숙함이라는
게 다른 걸 안 보이게 눈을 가릴 수 있다거나 오래된 관습으로 잘 따르고 있지만 터무니없는 것 일 수도 있다는 걸 우리에게
보여주게 됩니다. 그런 여행끝에 받은 이름은 또 하나의 달팽이였던 그를 달라지게 하는데요. 자신의 이름이 가진 의미까지 알게되면서 그는
책임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혼자가 편하지만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자신이 택한 길을 따라온다면 그 길에 어떤 고난이 있어도 끝까지 가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걸 보면 말입니다. '반항아'라는 이름과 전혀 반대로 보이는 책임까지, 묵묵함과 그가 알아낸 느림의 가치는 그에게 예전과는 다른
삶의 모습을 보이게 하는데요.
달팽이에게 생각지도 못한 존재,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종족입니다. 자신들이 살겠다고 동물들이 살 수 없는 땅을 만든다던가
소중하다면서 정작 그 소중한 거 대신 기억만을 선택하기때문인데요. 어쩌면 그 모든 이유가 빠름을 선택했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많은 일들을 후딱, 뚝딱이라는 말로 해내기는 하지만 손에 쥔 것 대신 잃은 게 뭔지 생각할 틈도, 그것이 주변에 주는
영향은 뭔지, 얼마큼 오래갈 수 있을것인가에 대한 먼 시야도 가지지 못한채 앞으로만 가면 된다는 생각이니까요.
"이것은 고통의 흔적이지만, 동시에 희망의 자취이기도
해"-92
어떤 게 의미를 갖고 살아가는 것인지 달팽이를 보면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고난과 용기를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생각해볼 수
있을텐데요. 어쩌면 우리 어른들에게 더 다가오는 이야기가 되지않을까 합니다. 고통이 있어야 가질 수 있는 희망이라면 차라리 지금의 그
자리, 안전한 곳을 선택한 이들이라면 더 말입니다.
계속 앞으로 갈꺼라는 달팽이의 말이 인간의 것과 다르게 들리는 이유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