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마더스
도리스 레싱 지음, 강수정 옮김 / 예담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어떻게 이렇게 근사한 일이 있을 수 있어?"-49

'릴'은 너무 행복해서 겁이 날 지경이라고 오랜 벗이자 연인인 '이안'의 엄마이고, 아들 '톰'의 연인인 '로즈'에게 말합니다.  전에는    자신에게도 거의 아들과 다름없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던 엄마들이였고,   레즈비언이라는 오해에도 쿨하게 웃어넘기는 대범한  두 집 한 가족같은  친구사이였는데 말입니다.  사랑이라는 아들들 고백에  놀라기는 했지만  오랜 시간 고민을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그들의 결정이 너무 빨라, 그랬으면서도  아들들이 결혼하게 됐을때는  포기도 빨라,  내가 그동안 알던 '사랑'이라는 의미가 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미 "투 마더스"라는 영화로도 나왔다고 하는 "그랜드 마더스"는 내가 알던  '사랑'이, 이 때도 같은 이름으로 불려도 되는 걸까와  실화라는 이야기에  놀라게 됩니다.   '사랑'이라는 게 어느날부터인가 오래 참고 온유하며가 아니라 '격정적'과 '뜨겁다' 라는 단어의 조합으로 바뀌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리고 '어려운 시련을 뚫고 넘어가는 게' 오래도록 기억되는 사랑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는 전혀 없는 나만의 이기심과 충동으로 시작됐는데도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것일까 싶기때문입니다.


아들들의 젊음에 눈부셔하던 그들이고, 자신들의 나이듦에 불안해하던 그들에게 젊은 아이들의 달뜬 맹목적인 사랑 고백은 이성은 답을 알았겠지만 감정은 그들과 동화되고 싶다는, 누군가에게  아름다움으로  잊혀지지 않았다는 위로가 되었을 것이고, 그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우리가 상식이라 여기는 선을 넘어선, 사랑으로 허술하게 포장됐다   싶으니  말입니다. 마지막 이야기 '러브 차일드'에 나오는 제임스가 자신을 돌봐준 대프니를 사랑한다고 믿었던 것 역시 그의 본질과는 절대 어울릴 수 없는 전쟁이라는 무게와 군인들이 겪었던 오랜 시간의 고통을 잠깐이라도 잊기위해  전쟁과 관계없어 보이는 그녀를 선택한 것이고, 사랑이라고 목을 맨 건 아닌가 싶어지기 때문인데요.    손주들을 기꺼이 봐주겠다는 할머니가 된 릴과 로즈의 태연한 친절이,  과일을 보면서 아내가 좋아하겠다  생각하는 제임스의 모습이 그들이  사랑했다고 믿는 순간이  정말 사랑이였을까란 의구심이 생기게 합니다.


사랑은 상대만 떠올리게 되는 특별한 추억도 함께 하는 것일텐데, 톰과 이안에게 그녀들과 같이 한 추억이란 너무 오랜 세월 같이 웃었기에 한 사람만 따로 생각나지 않을 것같고, 대프니가 뭘 좋아하는지 어느때 웃었는지 기억할 수 없는 제임스이기에 그 사람만을 사랑했다 말할수 있을까 싶기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랑이 뭘까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 2편 외에  빅토리아라는 흑인소녀가 스테이브니가라는 어느 정도 위치를 지닌 백인들과 알게되면서 생기게 된 일을 그려간 '빅토리아와 스테이브니가' 는 그녀가 처음 호감을 느꼈던 에드워드와 다시 만나게 됐더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라는 사랑에 대한 희망을 , 그리고 달라진 세상을 비통해하다가 드디어 그 원인을 알게된 현자의 이야기 '그것의 이유' 는 현자조차도 미혹된 '아름다움'의 존재를 생각해보게 하는데요.


 저자 도리스 레싱은 “작가의 일은 질문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바로 작가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게 우리의 기능이지요”라고 말했다고 하는데요.   인물들의 생김새나  어떤 표정으로 어떻게 서 있는지  그려갈 수 있을만큼 자세한 그녀의 글은 우리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할 수 있게 하는 자유를 주면서도 고민에 빠지게 합니다.  쏠림없이  모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기에  '그들이 어떻다.'라는 판단은 우리가 더 중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되는데요.  사람이 산다는 게 정확한 게 없는 것이라는 걸 알고, 사랑의 범위가 어떻다 말할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믿었음에도  생각보다 내가 매사에 한계를 분명히 해놓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되니  말입니다.


 아름다운 곳에서의 파격적인 이야기,   우연한 만남 몇번으로  인생이 얽힌 남녀의   백인과 흑인이 갖게되는  다르지만 같은 생각과 어쩌면 진짜 인연이였을지도 모르는 이들을 빗겨가게 하는 운명, 오래도록 수련했던 현자도 알아채지 못한 인간을 바라보는 우리들 시각의 비밀, 전쟁에 꽃핀 절절한 사랑이야기 모두가  사랑이 뭔지, 사람들의 인연이라는 게 어떻게 머물고 지나가게 되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바라보는 게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하는데요. 아내의 다정함, 충실함에 감사하게 느끼면서도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다면'이라고 잔인한 생각을 하는 제임스를 보면서 생각하게 됩니다.  그가 나중에 대프니를 만나게 되면 지금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았던 걸  후회하지 않을까 하구요. 세상에는 이런 일, 저런 일 다 있을 수 있다는 걸 덤덤히  알려주는 작가의 살아온 긴  세월이 사랑에는 환상적인 부분과 현실적인 부분이 같이 있을 수 밖에 없는데, 어떤 쪽에 내가 눈을 두고 있는 사람인지 알게 해서 그럴까요. 현실에 발을 두고 가끔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사람과 사랑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고 복잡하게 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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