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기다릴게
스와티 아바스티 지음, 신선해 옮김 / 작가정신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엄마의 눈길이 창밖으로 향했다. 그때의 나는 엄마가 그저 새 동네의 풍경을 살펴보는 것인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게 아니었다. 그 때 엄마의 먼 눈길은 가질수 없는 것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팔십 제곱미터 남짓한 집 안에 갇혀 쪼그라들, 자신의 남은 삶을 내다보았던 것이다"-320

 

가정 폭력이 무섭다 무섭다 해도 그렇게 무서울줄 몰랐고,  이렇게 많은 곳에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제 매일 터진다 싶게 자주 등장하는 가정 폭력 소식은   정말 아무도 몰랐을까 싶을 정도로 불행을 얼굴에 보이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등장합니다. 내 주변에 있었어도 나 역시 몰랐을까 싶을 정도로 얼굴에 써있다 싶은데 다들 그 때는 그정도일줄은 몰랐다고들 하지요.  제이스네 집도 그렇습니다.  겉에서 보기엔 너무 멀쩡한 아버지, 하지만 그에게는 가족을 불안하게 만드는 주기가 있습니다. 그 주기에 이르면  사소한 트집거리가 온 집안을 발칵 뒤집어놓을수 있는 갖가지 이유가 되고, 그 때 아빠 손에 들리는 건 뭐든지 흉기가 되어  엄마를 향하게 됩니다.  그걸  떨며 지켜봐야하는 아이들에게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끔찍한 밤이 또  시작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이웃 누구도 그들의 이런 고통을 모르고 지나간다는 겁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커갑니다. 자신에게 향하지 않는 분노지만 두려워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다, 아이들은 분노가 엄마에게 향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알게되지요. 확실한 방법, 아버지에게 다른 분노의 대상을 주는 겁니다. 바로 자신을 말입니다. 그렇게 엄마에게 향하던 폭력을 조금이라도 나눠주고 싶어했던   형 크리스천이 떠나고, 남은 작은 아들 제이스가 그 역할을 대신하다  아버지에게  쫓겨나게 됩니다. 떠나지 않겠다는 엄마를 아버지와 남겨두고요.


16살 제이스가 집을 떠나며 보고싶어하던 형을 드디어 만나게 되는데요. 집을 떠난지 오래되었고, 22살의   병원 인턴이라는 직업에  애인도 있고, 독립적인 생활을 잘 하고 있는 듯 보이는 형이지만 아직 폭력의 상처가 주는 그림자가 있다는 걸 예민한 제이스는 보게 됩니다.  아버지를 많이 닮은 제이스가 폭력이 싫다면서도 분노 폭발로 폭력을 쓴다는 것보다 놀라운 건, 성인이 된 형 크리스천이  엄마가 보이지 않은 끈에 묶여있다는 걸 알면서도 강제적 집행으로 엄마를 집 밖으로 보내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폭력 상황에 놓이는 걸 너무 두려워하고  과거를 덮어두고만  싶어하는 걸 보면 어쩌면  그 역시도   폭력에  묶여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분노를 누르려 몇 년을 노력해왔음에도 비슷한 상황에 놓이자 제이스보다도 더  극단적인 폭력에 의지하려고 했다는  걸 보면,  폭력이 주는 상처가 몇 번의 다짐이나 용기만으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자신이 너무 괴로운  16살 아이가 새로운 인생, 새로운 내가 되기를 고민하며 실수하기도 하고,  용기내기도 하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일들은   읽어가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고 크리스천도 제이스도  이제 그만 고통에서 벗어났으면 하게 됩니다.  서로 사랑하면서도 다치게 될까봐  묻어두는 비밀을 가지게 된 형제,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생겼음에도 마음을 보일 수 없는 아이들에게  소원은  남편을 선택한 어머니가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더 큰 사고가 있기전에 말입니다. 몇 번 탈출 시도를 했던 어머니가 아들들마저 떠나는데 남아있기를 선택했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아들들의 기억을 훑어 올라가며 그 안에서 보게되는 엄마의 고통은 그녀가 왜 더이상 새로운 시도를 하지 못하는지, 그냥 이대로이기만 바라는 두려움이 주는 자포자기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기도 합니다.  


'엄마를 기다릴게'는 폭력이 주는 무서움이 당장의 상처보다  영혼이 망가지는데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리고 왜 우리가 가정 폭력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도 알려줍니다. 아버지의 폭력이 결국 두 아이들의 삶에까지 좋지못한 영향을 끼치는데다, 그 영향이 주변에까지 퍼지게 된다는 걸 보면 말입니다. 이성적으로 보이고 사과가 뭔지도 아는 아버지가 시간이 지날수록 폭력이  강해지는데도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건 더 이상 그 사람의 애정이나 이성에만  호소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피해자인 아이들이   합당한 대처를 하지 못했다는 괴로움에 매사  자신을  비난하고  분노가 이유없이 누구에게나, 심지어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터지게 되고 그걸 후회하면서도   그들  안에서 끓고있다는 분노가 또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는 건  폭력이란  싫어한다고 해도  옮아가는 강력한 전염성을 가진 거라는 걸 보여주니 말입니다.


이 이야기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걱정을 끝까지 하게 한다는 것 자체가  폭력의 무서움을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기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가뜩이나 분노 조절이 안되는 사회라는 말이 많은 요즘  폭력과 분노, 그 안에서도  가정 폭력이 왜 남의 집이라며 쉬쉬 하기만 해서는 안 되는 일인지,  그리고 제일 큰 피해자일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지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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