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
류전윈 지음, 문현선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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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당신은 그 진 씨라는 분과 이혼 상태인데, 한바탕 생난리를 쳐서 다시 이혼을 하겠다는 거죠? 쓸데없는 헛고생아닌가요?"

"다들 그렇게 말해요.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15

이 이혼은 가짜이니 여전히 결혼중이라는 걸 증명하고 진짜 이혼을 하고 싶다는 '단호한' 리설련이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찾아다니기 시작하면서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던 작은 일이 점점 커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그녀는 남편을 죽일 사람과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하는데요. 도대체 이 여자를 이렇게 분노에 몸을 떨게 만든 이혼 사유가 무엇일까 싶었는데, 그녀는 둘째를 임신하면서 생긴 일이라는 알쏭당쏭한 이유를 댑니다.


이 모든 건,  중국이 35년간 고수하던 1자녀  정책때문이라는 겁니다.  지금이라면 괜찮았을 그녀는, 1자녀 정책을  고수하던 시대에 2번째 아이를 갖게 됩니다. 아이를 지키고 싶었던 그녀는 남편과 거짓 이혼을 하고 다시 합치면 되겠다는 교묘한 꾀를 내지만, 몇 달만에   남편이   결혼을 해버립니다.물론 딴 여자랑요.  이유를 듣고보니  그런 남편에게 당연히 리설련은 사과라도 듣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데요. 하지만 기가차게도 남편은  끔찍한 말을 사람들앞에서 하게되고, 소심한 그녀가 스스로 꺼버리려했던 분노라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맙니다. 남편이  말 한마디에 천냥빚 갚는다는 속담만  알았더라도, 아니면 어찌되었든 신의를 저버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만 했어도 끝났을 일이   이제 리설련에게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평생의 과제가  되고 맙니다.


어찌하다보니 그녀는  조금만 뭐라해도 '당신도 고소하겠어!'라 하는 고소의 아이콘이 되고마는데요.  그녀의 지나친 집착으로만 보였던 일이     '깨알같은 작은 일로 잘도 여기까지...'라며 민원이라면 민원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다가 자신에게 불똥이 튀자 몸을 사리는 공무원과 만나게되자   20년이 지나도록  중국 사회 공무원들에게 무시무시한 전설이 된다는 이야기는 우리를 쓴 웃음짓게 만들게 됩니다. 


도돌이표 찍듯, 그녀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들, 나오는 반응들이 반복적이라 이 이야기에 과연 끝이 있을 수 있을까 했지만 다들 무시했던 그녀의 고소가  윗 사람의 의도치않은 한마디에   정리된다든지  고소 안하겠다는 그녀를 못미더워 계속 뒤따라다니지만 제대로  쫓지 못하는 모습만 보여주는   관리들의 허술함과 무능함은 어떤 크기의 일이 되었든 일관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뜨끔함을 주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나도 어디선가 이 비슷한 일을 바람결에 듣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중국의 산아제한, 즉 무리한 정책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알겠느냐는 아우성, 세월이 지나도 자신들의 밥그릇이 어떻게 날아갔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우왕좌왕하는 공무원들의  모습이 계속된다는 헛웃음뿐 아니라 이 이야기는  분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에 대한 걸 그녀를 통해 보게 됩니다. 사건의 처음에 분명 그녀는  스스로가  아직 아름다우며 뭘 해도 할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대답없는 남편과 성의없다 느낀 사람들을 고소하느라 20년 세월이 지나서야  자신을 돌아보니    남은 게 별로 없다는 것, 그리고 이 일의 시작이였던 지키고 싶었던 딸과도 좋지 못한 관계가 된다는 건 내가 누구를 위해, 무엇때문에 분노하며  살아가야하는건지를 생각해보게 하는데요. 


"목을 매는 데 한 나무만 고집하지 마라. 다른 나무로 바꾸면 시간을 벌 수 있다."-383

는 말에 웃음을 터뜨린 그녀가 뭔가를 깨달았을까 싶은데, 그녀의 이 길고도 긴 이야기가 서론일뿐이고 진짜 본론은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녀의 고소가 영향을 미쳐 식당을 하게 된, 예순 살 사노인이 '내가 지치는 일은 하지 않고.' 라며 유유자적 살게 된 모습으로 말입니다.


긴 서론과 너무도 짧게만 느껴지는 본론은 고소에 긴 세월을 보낸 리설련과 그 역시 억울하다면 억울하게 공직사회에서 벗어났음에도 너무 잘 살아가는 사 노인의 대조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분노에 머리가 뜨거워질때  딴 곳에 눈 돌릴 시간과 여유를 잠깐이라도 갖는 거 라는 거 아닐까 하게 됩니다. 리설련이 이렇게 쫓아가도 되는걸까 주저하면서도 분노를 쫓았지만 결국 남는 게 후회뿐이라는 걸 보여주고,  사노인은 쉬고 싶다는 자신의 바람을 어찌되었든 실행해갔기에  지금 우리가  그의 웃음넘치는 삶을 보게 되는 것이니  말입니다.


중국 사회를 현실적으로 그린다 싶지만 또 어디선 안 그렇겠냐는  걸 확실히 보여주는 유머가득한 대목 대목이 저자 류전원님의 특징이라는데요.  무엇보다  분노의 크기는 스스로 조절할 수도 있는 것이고, 분노 그 다음에 오는 행동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분노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때문에, 왜 화를 내고 있는지 기억하고 있냐는 질문을 던져주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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