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만을 보았다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지음, 이선민 옮김 / 문학테라피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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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잘 살고 있었는지 정신이 번쩍 드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나에게 있는 상처가 다른 이들, 특히나 가까운 이들에게 더 큰 상처로 돌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려워지게 된다. 내가 그랬듯이  모든 세상의 아들들은 아버지가 되기 전에 난 저런 아버지가 되지는 않겠노라고, 아니면 나도 꼭 우리 아버지같은 아버지가 되겠노라는 다짐을 하고 또 딸들 역시 어머니에 대해 같은 생각들을 했었을 것이다.  저런 아버지 어머니는 되지 않겠다 하는 분류가 된다고 해서 모두 다 마음에  안드는 건 아니고  특정 부분, 하나의 기억이 마음에 안들기 때문이라 여겼는데, "레옹, 비겁함은 어디서 시작되는 걸까?"라고 물어보는 지친 아버지의 물음과 답은  섬뜩하기만 하다.


"꼭 비극이나 피를 봐야 하는 것도 아니야. 그저 하굣길에 선생님한테 들은 기분 나쁜 말 한마디, 애정이 담기지 않은 엄마의 입맞춤, 아무도 날 보고 웃어주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거야. 날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만 있으면 되는 거지. 나는 내가 비겁한 사람임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어."-32


밖에서는 다정하고 섬세하지만 집에서는 가족들과의 대화가 없는  아버지,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사는 어머니를 둔 아이는 외롭기만 하다. 동생들마저 쌍둥이라 왠지 늘 자신만 소외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러다 쌍둥이 하나의 갑작스런 죽음과 남은 동생의 언어장애로 외로운 아이와 동생은  친해지지만  투명한 아버지, 특히나  어머니의 부재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늘 가족 안에 빈자리를, 특히나 아이들에게 너무 큰 공간을 남기게 된다.


그래서일까. 늘  혼자가 싫었던 아이는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되어서도 자기가 원하는 바를 말하지 못한다. 아내의 외도를 바라보기만 하고, 아이들과 헤어지게 될지 모른다는 예감에 불안해하면서도 어떤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비겁한 자신의 모습에 진저리치면서   굴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게 너무 힘들었던  그가 선택한 일은 예전 자신이 되겠다던 아버지로써는 도저히 상상할수 없는 일, 그리고 가족의 행복을 최고라 여긴다는 자신이 했다고 본인도 믿을 수 없는 행동이다. 


"우리는 그토록 그리웠던 사람들을 그들과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마주치게 되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다고요?"-170

내가 어른이 되고나서보면  아이였을때 부모님이 하시면 싫어하던 행동을 하는 나를  보게 될 때가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빨리 상황정리가 된다는 생각에 그렇게 하지만 문득 아이들의 표정에서 예전 내 표정을 읽게 되면 내가 이래도 되는 걸까, 방법을 바꿔야 하는 거 아닐까  싶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그 때 부모님들이 그렇게 하신거구나 하는 걸 비로소 알게되기도 한다. 그 때 이 마음을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그리고 그런 순간을 같이 나누었다면  더 좋았을텐데...나중에사 후회하지만 지금 난 제대로  불만이였던 부분들을 짚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가족은 어디까지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것일까 란 의문도 던져주게 된다. 용서라는 걸 생각조차 할 수 없던 딸이  아버지를 찾아나섰다는 건 그가 그래도 노력했던 아버지여서였을까, 아니면 잠깐이라도  행복했던 어린 기억을 따라온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원래 가족이란 그런 것일까.  가족안에서의  나의 역할은 무엇인지가 무겁게 그리고 거칠게 다가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진실과 소통 부재라는 엄청난 말이 한순간에 넘겨버린  사소하게 보이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이야기가   난  가족들과 어떤 행복을 만들어가는지, 우린 진짜 행복한 건 맞는건지 물어보게 된다.

 

유년기의 일부를 간직하는 게 그나마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끈이였거든.-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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