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나가 있던 자리
오소희 지음 / 북하우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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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무엇인가 잃어라. 방문 열쇠를 읽거나,

시간을 허비한 낭패감을 순순히 받아들여라

잃어버리는 기술을 통달하기란 어렵지 않다."

                        -p.63 '하나의 기술(엘리자베스 비숍)중에서-

 

 해나에게 "잃어버리는 기술을 통달하기" 란  역시 너무 잔인한 말입니다.  더구나 그 잃어버린 것이  엄마가  최고인줄 알고 살아준 고마운 아이였을땐 더더욱이나 말입니다.  이 세상 어느 곳에도 마음둘 수 없는 해나는  무작정 떠나기로 합니다. 정신을 차려봐도 어느 새 떠난 아이에 대한 생각으로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녀는, 길을 잃었기에 떠난 길에서   사람을 만나게 되고 조금씩 변하는 자신을 마주하게 됩니다.

 

 

 

 

'아이와 여행다니며" 글을 쓰는 오소희님은  첫번째 장편 소설 '해나가 있던 자리'에서 "상실과 박탈은 지속적인데 그것을 채워줄 아무런 일들이 끝내 일어나지 않는 현실이 이 책의 시작이였다."라는 말을 남기고 있는데요. 해나의 슬픔에서  작년에 있었던 커다란 일도 떠오르고 오늘 뉴스에서 본 누군가의 사고와 눈물도 떠오르고,   우리 주변에 있고 나에게도 있는 '상실감'과  아직도 끌어앉고 살아가고 있다  문득 문득 떠오르는  내 안의 비어있는 공간에 대한 두려움을 떠올려보게도 됩니다.   


"선반의 비워진 것을 보는 게 아니라 남겨진 것을 봐야 했어요."-69

인생이란 선반을   뭘로 채울지 우리는 늘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일 이쁘게 아름답게  채웠다 싶은  자리가 비게되면  그 자리를 그리워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다시는 그 정성으로 그 공간을 채울만한 뭔가를 발견할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때문일겁니다. 하지만  해나가 만난 소중한  사람들, 생의 감각을 회복하기 위해 다리가 있든 없든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는 레오와 남편 라울과의 불편한 관계를 좋은 관계로 끌어가려는  이디, 그리고 해나에게   방안에 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란 걸 다시 하게 해 준 마디를 만나게 되면서 해나처럼 우리도   채울 수 없다 여긴 공간을 꼭 채워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간단한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무작정 또 떠난 해나는 우리가 꿈꿀만 한 아름다운 섬에 도착해서   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세상 근심이라고는 없는 곳에서 행복만 가지고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였는데,   밝고 명랑하기만 보이는 그들에게도 아픔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밝게 보이는 건, 잊고 살아가기때문이 아니라  누군가를 안아가며 자신이 내놔야 할것, 그리고 기다려야 할 것을 생각하고 있기때문이라는 것도 배우게 됩니다.


"내 첫 단추를 축하해주세요."(70)

 채워 넣을 자리에 대한 가능성보다 비워낸 자리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는 걸 이제사 알았다는 마리에게 레오가 말합니다. 첫번째 단추와 두 번째 단추까지의 간격이 떨어져있으면 좀 어떠냐구요.처음 단추를 잘 꿰어야  다음 단추가   이쁘게 맞아들어가는 것이고 그렇게 채우는 게 옳고 당연하다 여긴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추나 가다 비워진 단추가 그리 나쁜 것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꼭 슬픔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지만 지금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만으로도 우리는 첫 단추를 꿰어놓은 것이고 이제 서투르지만 시작이니 언젠가는 다 잠글것이고, 또  잘못 꿰었다 해도 아니면  어떠련가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것이 잃어버리는 기술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정답이 되는 위로가 있을 수는 없겠지만  현실과 꿈사이를 오고가는 듯 보이는  해나의 먼 길 떠난 이야기가  때로  한 가지만 생각나  아파하는 우리에게,   지금 그 자리를 떠나 자신이 꿈꾸던 다른 곳으로 떠난  느낌을 잠시나마 주는 시간이 되었으면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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