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긴 잠이여

안녕, 긴 잠이여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0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쓸쓸한 밤, 중절모, 그리고 고독을 날릴듯 피어오르는 담배연기... 왠지 이런  분위기의 탐정이라면 내가 맡긴 사건이 끝날때까지  사건의 중요하거나 중요하지 않거나에 상관없이  모든 것들을 샅샅이 알아내줄것만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런 생각은 아마도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때문에 생긴것이 아닐까 싶다. 몇 번의 사건에서 만나 본 그는, 자기보다 강한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를 지킬 줄  알기에     의뢰인이 억울한 정의의 편이건 혹은 살짝 본심을 숨긴 이이건간에 사건을 맡아 어찌되었든 까칠한 말과는 달리  본인을 희생하면서도 의뢰인에게 좋은 결론을 내주고 그리고 늘 혼자라는 쓸쓸함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파트너였던 와타나베를 찾기 위해 거의 사백일만에 도쿄로 돌아온 사와자키 탐정 역시 그런 분위기를 풍긴다. 겨울이 끝날 무렵, 비가 내리는 밤에  오랜만에 찾은 그의 사무실앞에서 그를 기다리는 노숙자라는 이야기의 시작부터 그리고 사건에 스스로 휘말리는데다가   그를 늘 주시하는 폭력배나 경찰에게 뻣뻣하기가 이루 말 할수 없는 그의 말솜씨가 또 다른 재미있는 사건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의뢰인을 찾아내는 끈기에다가  오랫동안 주저하고 있는 의뢰인 마음속 사건을 유도해 맡아내는 솜씨까지 가진 사와자키가   뭔가 미심쩍은 십 일년 전  사건의 진실을 캐러다니면서  그  사건에 관계된  의뢰인과 그  주변 인물들이 사고를 당하게 되고  그들을 잘 아는 누군가가(물론 이 때 누군가는  얼굴을 이미 보았을 인물인것이 틀림없는)  아직도  진실이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게된다.

같이 일하던 와타나베 탐정에 관한 비밀까지  그 어떤 협박에도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그가 이번 사건을 위해 던지는 와타나베에 관한 단서  역시나 지금은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단서라는,  말속에 뼈가 있는  함정이 언제나 들어있기에  힘으로 그에게서  비밀을 캐냈다 믿는 인물들의  뒷통수를 항상 치게 될꺼라는 추측와  그가 이번 사건도  완벽하게 풀어낼꺼라는 확신까지 가지게 된다. 그리고 늘 그렇듯 수많은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이야기는 듣게 되겠지만  그는 어두운 밤 사무실에 덩그라니 혼자만 있을거라는 결론과 함께 말이다.

'안녕, 긴 잠이여"를 쓴 하라 료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 시리즈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특히나 앞부분에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게된다.  상대방이 살짝 흘린 말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대단한 솜씨를 가진  사와자키가  다음에는 어떤 사건을 선택하게 될지,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이 남자의 솜씨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