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붉게 피던 집
송시우 지음 / 시공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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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흑백 사진을 보면서 갑자기 그 날의 일이 기억날때가 있다. '맞아, 이 사진을 찍은 날 나는 가족 중 누구와 여기서..'하면서  잊었던 그 날 주변 일들이  갑자기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하나씩 하나씩 풀리게 된다.  하지만 웃기는 건, 흑백 사진이 찾아내는 기억은  기억에서조차도  흑백이라는 사실이다.   가끔 한 장의 사진을 두고  서로 다른 그 날의 기억으로 누가 맞는지를 엄마나 동생과  강하게 이야기하다보면  사람의 기억이란 건,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한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하고 그렇기에  그다지 믿을 수 없는 거라는 걸  알게 되기도 한다.  

 

대중 문화 평론가이자 인기강사로 이름을 높이며 바쁜 나날을 보내던 수빈은 '대중문화 평론가 현수빈의 유년기행' 이라는 컬럼을  신문에서 의뢰받게 되고  1980년대 생활을   자신이 살던 라일락 하우스라 이름붙인 다가구 주택에 관한 이야기로 써가게 된다.  지금이라면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싶게,  다 합쳐야 스물 다섯 평 될까 싶은 집에 열 네명이라는 엄청난 사람들이 북적이며 살던 연탄과 요강, 줄서서 사용해야 하는 화장실이라는  일상의 일들을 꺼내던 그녀는   그 집에서 있었던 영달이라는 오빠의 사건 혹은 사고를 기억하게 된다.  자신을 찾아온 전직 형사의 의미심장한 이야기와   진실에 대한 호기심으로   수빈은  세월이 지나 이제는 다 잊고 살던 그 당시 사람들을 하나 둘 수소문끝에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취재는 묻었던 사람들의 아픔과 상처를 헤집는 일이 되고 생각지도 못한 일을 불러오게 된다. 

 

"손바닥만 한 셋집에서 오글오글 살다보면 서로 모르고 살고 싶은 것도 알게 되곤 했는데, 또 정작 알아야 할 건 모르고 넘어 가기도 하고......" 128

 

월급날이면 다른집 아이에게도 선물을 사오던 아버지, 취직을 위해 서울로 올라온 지방의 순박한 아가씨들, 얼굴뿐 아니라 마음도 이뻤던 신혼부부, 과일 행상일로 바빠 집을 비운 부부의 아이들을 데리고 잘 놀아주던 영달이 오빠 라는 애틋함으로 기억되는 수빈의 기억속 사람들의  삶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면서 그들 모두에게 비밀과 사연이 있었다는 게 드러나게 된다. 과연 누가 범인일지 혹은 말 그대로 사고일지를 쫓아 서로의 이야기로 기억을 맞춰가던 라일락 하우스의 이야기는   1980년대의  순박한 모습으로  우리의 추억을 끌어가는 게 아닐까 싶었던 이야기에서  점점 그들이 말하고 있는 게 진실일까라는 의구심으로 변해가게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극적인 전개는 비록 없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만으로도 우리의 과거는 다시 구성되어지기에 '건너편 파란 대문 집 둘째 딸이 그랬잖아' 라던가 ' 그 집 아들이 그 때..' 라는 한마디의 이야기가  얼마나 무서운건지, 시간과 공간이 지나며 멈췄던 사람들의 기억은 떠올린 순간부터 어떤 비밀을 쏟아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로   머릿속에서 순서없이 쏟아져 나오는   당신 기억의 파편을 조심할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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