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겐 찾아오지 않을 따뜻한 봄날

봄에 나는 없었다 ㅣ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기성 세대라 불리는 어른들의 재미없고 딱딱한 생활을 보고 누구나 한번쯤은 '난 저렇게는 살지 않겠다.' 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을것이다. 남들 눈에 좋아보일지 모르지만 기준에  매여있고  목적없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듯한 모양새를 보고들 말이다. 차라리 한적하고 볼거리 많은 꼬불꼬불 오솔길을 헤치며 나아가리라는 생각을 하며 굳은 다짐과 맹세를 해보지만  막상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볼거리는 없으면 어떤가, 빨리가는 고속도로도  괜찮네 하는 생각에 다들 그 쉬운, 남들보기에도 딱 적당한, 그래서 저렇게는 ..이란 길을 가고 있는 날 보게될때가 있다.

잠깐 가족들의 따뜻하고 견고한 품을 떠난 조앤처럼 말이다. 성공한 남편과 각자 잘 살고 있는 자식들,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자신의 모습, 여러 활동으로 늘 바쁘면서도 어느 하나 남들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자신의 삶에 꽤 만족하는 조앤은 한때 잘나가는 퀸이였다가 잘못된 선택으로 뻔한 길을 가고 있는 친구 블란치를 만나며 자신에게 더 만족함을 느끼게 된다.  

저자가 애거서 크리스티라는 말에 내용을 볼 필요도 없이 허겁지겁 읽게 된 '봄에 나는 없었다.'는 이전 그녀의  빛나는 추리물이 아니다. 아마도 이런 이들의 기대나 혼란을 의식해서인지 그녀 또한  몇 개의 이야기를 필명으로 냈다고 한다. 빛나는 추리물도 어떤 사건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도 아닌, 단순히 조앤이라는 여자의 뒤를 따라가며 그녀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이야기지만 읽다보면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차가운 추리를 해보게되니 글쎄 '혼자만의 심리 스릴러'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조앤이 사막에서 고립되어 이제껏 보고 있었으나 모른척 했던 가족들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 역시 뻔히 알면서 그냥 넘어가야 더 편하고 문제가 커지지않는다는 생각에 태연히 덮게 되는 몇 개의 일들을 떠올리게 된다.   "몇 날 며칠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자신에 대해 뭘 알게될까......" 란 블리치의 말이 마술처럼 조앤에게 통하게 되고 그녀는 자신의 삶을 안전하게  덮고있는 두툼한 담요밑에 깔려있던 여러 개의 진실을 들춰보게 된다.

그녀가 가슴을 두근거리며 몰랐다고 고백할때 용서를 바라겠다 할때 "제발 그랬으면"  싶었던 마음은 그녀가 남편 로드니에게 시간을 주겠다며 한발 물러설때 그 순간은 이미 지나갔음을,  로드니가 달라보이는 그녀의 눈빛에 희망을 보이다 "휴가가 끝났다."는 독백을 할때 다시 찾아오고 있었던 그녀의 봄은 그녀를 지나갔음을 알게 되고 어쩌면 영원히 그녀만 또다시 모를 그 봄의 비밀이 안타까워지게된다.

'사람들을 사랑하면 그들에 대해 알아야하는 건데'-202

익숙하기에 돌아봐지지않는, 그렇지만 사랑하는 이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지않을까.

애거서 크리스티이기에 이렇게 잔잔하면서도 서늘한 끝을 내지않았을까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