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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월담
누쿠이 도쿠로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 '누쿠이 도쿠로' 란 이름에 더해진, 뛰어난 재능과 빼어난 외모를 지녔다는 소설가 사쿠라 레이카의 "나도 누군가에게 한번은 말해 두고 싶었습니다." 라던가 "시시한 이유도 하나 있구요." 라는 비밀에 끌려 평소와 다른 누쿠이 도쿠로의 이야기임에도 끌려가게 된다.
마흔 아홉의 나이에 펜을 놓고 은둔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 사쿠라에게 다시 한번 글을 써보지않겠냐는 제의를 하러 간 도시아키는 예상외로 친근한 그녀의 환대에 놀라게 된다. 게다가 팬이기도 한 그에게 그녀가 사쿠라가 아닌 고토였던 시절부터 평범한 글에서 어둡고 날카로운 문장을 쓰는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더 이상의 글이 무의미해진 과거의 일들을 털어놓기까지 하니 말이다.
그제서야 "그러나 이것은 연애소설이다."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오게된다. 이게 진짜 누쿠이 도쿠로의 글이야? 라는 놀라움과 '그래서,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건데...' 라는 궁금함때문에 그 다음장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사실 고토였던 사쿠라와 기노우치의 이야기는 흔한 이야기들 중 하나일수도 있다. 능력있고 재미있는, 거기에 자신감으로 자신뿐 아니라 만나는 상대 누구라도 빛나게 할 줄 아는 바람둥이 기노우치와 못생겼다는 어찌할 수 없는 이유로 기가 죽은 여자 고토의, 사랑과 사랑의 환상 중간쯤의 이야기는 어쩌면 예정된 결말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질지, 그 끝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하지만 아이들이 이미 손에서 녹은 사탕을 몇번이고 돌아보며 손에서 놓지 못하듯, 몇 번이고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강단있는 선택을 해가는 고토가 막상 새 삶이다 싶은 순간에도 기노우치에 관해 주저할때는 연민도 느껴지지만 그만큼 답답함도 느끼게 된다. 물론 어떤 게 사랑이라고, 이런게 옳은 거라고 할수 있는게 아니라는 건 알지만, 내 온 생을 일부러 찾아야 보이는 희미한 달빛처럼 만들수 있는 걸까 싶어진다. 그런 절실함이 사랑이라 말할 이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녀가 평생을 믿었던 모든 게, 어쩌면 사랑을 기다린 글 잘 쓰는 그녀가 만든 예쁜 사랑의 동화는 아니였을까 싶다.
누쿠이 도쿠로는 아름답지 못한 여성이 가지는 자학에 가까운 심리, 그리고 재능있는 여류 작가가 되어가는 과정에 만날수 있는 여러 이야기들, 그리고 끝내 알수 없었던 사람의 마음을 여성의 눈으로 이야기해주고 있다. 때론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아파하는 고토의 이야기인가 싶다가도 여류 소설가로 이름을 날렸음에도 그녀의 진짜 소박한 꿈을 이루지 못하는 걸 보면 보이는 것만으로 모든 걸 판단하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이야기하는 듯 싶기도 하고, 나중에서야 자신을 돌아보는 고토를 보자면 자신의 어리석었던 인생을 그제서야 돌아보는 한 인간의 성장기같기도 하다. 소설의 커다란 틀은 예상과 그렇게 다르지 않지만 고토의 변해가는 심리 변화에는 동조를, 출판 업계에서조차 여자들에게 보내지는 여러 편견들에는 울분을 느끼게 된다. 달달한 사랑의 어구도 눈물 쏙 빠지는 이별도 없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건조하지 않게, 그리고 그럴수 있겠다라는 어느 정도의 이해가 가게 되는 건 이미 미스터리라는 장르에서 사건 주변에 있던 이들의 심리 변화를 이해가 가겠끔 그려갔던 누쿠이 도쿠로의 글 솜씨때문일것이다.
나중엔 더 이상의 시간이 무의미하다는 걸 알게 됐기에 고토는 마음이 편했을까 아니면 자신이 끝내 고토도 사쿠라도 아니였다는 생각에 허전했을까. 사랑을 시작한다면 이번 가을엔 상대의 따뜻한 마음과 자신의 행복한 웃음이 넘치는 사랑을 시작하시길, 서로를 위해주는 사랑이 아니라면 너무 쓸쓸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