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역로 ㅣ 모비딕 마쓰모토 세이초 단편 미스터리 걸작선 2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전혜선 옮김 / 모비딕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범죄의 사회적 동기를 드러내 인간성의 문제를 파고드는, '사회파 추리소설'로 이름을 날린 마쓰모토 세이치는 '역로'에서도 범죄를 일으킬 수 밖에 없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가고 있다. '잠복'에 이어 읽게된 그의 단편소설집 '역로'는 1950년대 당시 남성중심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있다. 부인외에 여자가 있었음에도 뻔뻔하게 둘 다 자기 곁을 떠나게 둘 수 없다는 남자, 퇴직후 사라진 남자에 대해 비슷한 나이때의 자신과 비교하며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 형사의 이야기등 일어난 사건 주변에 놓인 중년이라는 나이에 실패가 두려운 남자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옅은 화장을 한 남자' 편에서는 남편이자 애인이였던 남자가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조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며 고백하는 여인의 이야기로, '역로'에서는 "그만두면서 뭔가 큰 짐을 내려놓은 듯한 느낌이었어요." 란 전 직장 동료의 말로 정년 퇴직한 남자가 사라진 건, 유리한 조건의 취업을 제안받았음에도 거절한 것을 보아하니 인생을 일에만 바쳐온 사람의 최후의 선택이지 않았을까 며 이해한다거나 "고갱은 이렇게 말하더군. '인간이란 자기 자식에게 희생되는 존재다. 이런 바보 같은 일이 영원히 반복된다. 만약 모든 인간이 자식의 희생물이 된다면 대체 누가 예술이나 아름다운 인생을 창조할 수 있겠는가' 라고 말이야..... ... 고갱에게는 그림이 있었지. 하지만 고즈카에게는 없었어. 대신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을 거야." 라는 무책임할 수 있는 추측으로 , 인생의 쓸쓸함을 터무니없는 이유와 결론으로 늘어놓는 '역로' 요부노 형사의 사건 추리를 빙자한 고백은 저자의 생각이지 않을까 할 만큼 중년의 남자들이 "왜 나만..."이라거나 "왜 나는 ...." 이라는 절규로 가끔 딴 곳을 바라봐야 살것같다는 궤변을 내놓는 이야기도 전해주고 있다. '오차'에서 역시 자신은 죽을 수 밖에 없다는 남자의 고백을 '가족을 부양한 채 쉰 가까이 나이를 먹으면 투지도 체력도 없어진다.'는 해석으로, '짝수'에서는 회사에서 자기 앞길을 막은 겐이치 부장의 앞 길을 자신이 막아버리기로 한 조노의 야심찬 계획이 짝수라는 숫자에 의해 어떻게 파헤쳐지는지가 드러나고 있다. 미운 부장의 앞길은 막는다 치지만 계획의 성공을 위해 이유도 모르고 자신의 목숨을 잃게 되는 여인에 대한 일말의 감정도 보이지 않는 그의 계획을 하늘이 알아서 막아준것이 아닐까 싶어 드러난 증거가 고마워지게 된다. '어느 하급 관리의 죽음'에서는 부정부패 사건은 금품을 건넨 사람도 받은 사람도 이익을 얻게 되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가와 국민에게, 또 책임은 말단 직원들에게만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이렇게 단편 8개의 이야기는 연인에 대한 지독한 집착과 그 집착으로 지쳐가는 사람들, 인생의 쓸쓸한 뒷길에 원하지 않았지만 사라지게 된 사람들, 승진과 인정에 대한 욕심, 그리고 '출세'가 유일한 보람이라는 하급 공무원들의 지금과 비슷한 상황과 죽음이 말하는 인생의 허무함과 고단함이 옷차림과 거리의 모습, 그리고 그런 시대였으니... 싶은 남자와 여자의 차이라는 점만 뺀다면 지금의 우리가 뉴스란에서 읽게되는 소식과 다르지 않기에 오히려 더 쓸쓸해지게 된다.
사건 주변에 늘 있는 남자와 여자, 거기에 인생을 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중년의 나이가 주는 무게에 눌린, 고집스러움과 외로움이 ' 역로' 의 사건들을 일으킨 범인이 아닐까 싶다. 사건은 벌어지고 사건을 일으킨 이들은 결국은 벌을 받게 되지만 그 사건 이면에 놓여있는 인간들의 감정이 어땠는지, 이렇게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는 흔한 감정들의 소용돌이에 당신은 같이 휩쓸릴 것인지, 아니면 쓸쓸한 혼자라도 인생이란 길을 꿋꿋이 나아갈 것인지를 마쓰모토 세이치가 물어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