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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물 소리
황석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시의 '이야기꾼'이 어떤 사람이었을까에서 출발했다는 황 석영님의 '여울물 소리'는 오가다 만난 이 신과 연옥이라는 남녀의 이야기에서 구한말 외세에 시달리는 양반님네들의 권력다툼, 그래서 고생하게 되는 이들의 세상살이 슬픔, 그래서 나오게 되지않았을까 싶은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동학(여기에선 천지도)과 민심의 흔들림을, 천지도를 쫓아 신통 방통하다는 소문이 난 이야기 읽는 재주도 뿌리치고 떠난, 신통이란 이름이 된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연옥을 따라 그 당시 어지러운 세상 이야기가 꾸려지고 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의 아리랑 슬픈 가락속 여인들처럼 잠깐 스치듯 보낼수 있는 인연에 수줍은 듯, 질긴 운명을 더하는 연옥에게 한번쯤은 강하게 신통을 잡아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게 된다. 하지만 연옥뿐 아니라 이 신통이 만난 여인들은 모두들 떠나겠다는 그를 잡지 않는다. 옷고름 입에 물고 날지 안 날지 모르는 발병나기를 기다리는 여인들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연옥은 거기다 걱정되는 이 신통의 안위를 찾아 먼 길 마다않고 길을 떠나는 용감성도 가지고 있다.
진짜 이게 사랑인걸까 싶을 만큼의 짧은 순간 만남이었지만, 언제나 가슴에 걸리던 사람이고 기다림에 지칠때쯤에야 겨우 보게되는 그지만, 그래도 반갑기만 하기에 뒷모습마저도 아련한 이야기꾼 이 신통을 기다리는 운명을 선택한 연옥은 분명히 옷고름 입에 문 여자들과는 다르다. 소박을 스스로 택하던 배포 큰 여자이고, 오랫만에 본 엄마와도 역시나 구구절절히 말하지않고도 남들의 눈물바람 일으킬 이야기조차도 그럴 수 있지라고 이해하고, 엄마의 죽음마저도 아무렇지 않은 듯 받아들이는 여인이다. 그래서일까,가슴에 담아 놓은 이 신통이 있는 곳 어디라도, 바람결에라도 그가 언뜻 보였다는 이야기속의 장소를 따라 그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하긴 하지만 연옥은 어떤 어려움에도 언제나 담담하기만 하다.
"당신은 여전하구려.
여전하다니요.....
신통은 나직하게 웃고는 말했다.
어여쁘다고나 할까.....
나는 입으로 내어 말하지는 못했지만 에그 철부지야, 하고 말해주고 싶었다. 채운사 기슭에 애장한 이름도 없는 아기에 대하여 그에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어찌 할 말이 그 뿐이랴."(p.441)
아무렇지도 않게 이 곳에 오기까지의 풀어놓아야 살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를 가슴에 묻어놓겠다는 그녀는 같이 하고픈 신통에 대한 미련을 끊고 언젠가 그가 다시 그 마음을 따라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제는 먼저 떠나기로 한다.
천지도를 위해 길 떠난 이 신통, 그와 함께 하는 이들과 그들이 하는 일을 알게되며 그녀 또한 '사람이 하늘이다.'가 그들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희망이라는 걸 알게된다. 그런 연옥이지만 밤을 깨우는 여울물 가락은 혹시라도 연옥에게 답답하게 맺힌 이야기가 있다면 마음 속 편히 내려놓으라는 건 아니였을까 싶다. 연옥에게 들어오는 이 신통에 대한 이야기를 따라 작게는 서자였던 이 신통이 알아야 했던 세상에 느껴야 하는 슬픔에서 크게는 상인, 군인,농민 그렇게 자신과 하늘을 믿어야 했던 백성들이 원하지 않는 세상을 바람같이 떠돌아야 했던 이야기로 연옥이 그를 보내야만했던, 그리고 가슴에 묻었지만 묻어지지 않는 사연들이 세월을 흘러, 강물을 흘러 이 시대에도 오게된다.
우리네 삶 속, 강한 듯 혹은 담담한듯 살아나간 그녀의 이야기, 우리 어머니이기도 한 그녀의 혼자 버려둘 수 없는 이야기를 어두운 밤 흐르는 물소리가 나지막이, 때로는 시끄럽게 님과 사연을 단단히 가슴에 새긴 여인들의 강하고도 슬픈 세월이야기로 우리를 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