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고요한 노을이…
보리스 바실리예프 지음, 김준수 옮김 / 마마미소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만일 이동 중에 길이 나왔다. 그럼 어떻게 행동해야 하지?"

   ...

"그런 요령은 너만 알고 있어."(p.56)

 

술을 마시지도 않고 여자를 밝히지도 않는 진짜 군인다운 군인을 보내달라는 대피역 경비대장 바스꼬프 특무상사의 부탁 아닌 부탁을 받고 나타난 것은 잠에 취해 얼굴이 늘쩍지근해 보인다는 아가씨들이다. 이렇게 시작된 그들의 고된 훈련은 누구에게 더 고되었을까 싶다. 진지밖으로 절대로 나가지 말라는 명령에 딸기 따러도요?  수영은 괜찮죠? 라는 '진짜 민간인'인 내가 생각해도 철이 없어도 너무 없는 질문을 던지는 그녀들에게, 그렇다 하더래도 속으로는  별 욕을 다하기에 '이런...'싶은 황소고집의 상사가 첫 날부터 시작한 일은 깜짝 놀라 소리지르는 다섯 병사들을 위해 문에 노크하기이다.  각자의 과거에 상관없이 전쟁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모인 그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독일군의 전진을 막고 지원군이 오기까지의 시간을 버는 전투를 시작하게된다.

 

목숨을 내놓는  추격전을 시작하면서도  총을 잘못 쏘지않을까 불안한, 더군다나 발에 맞지 않는 군화를 덜거덕거리며  향수냄새를 풍기는 병사들의 느린 속도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바스꼬프, 그들이 총쏘는 법을 모를까봐, 그리고 받아야 하는 조언에 상처받을까봐 전투상황에서도 조심하는 그가 보이는 모습은  군대에 오고나서야 휴일을 알았다고 할만큼  열심히 일하기만 하던 농군이자 나무꾼의 모습 그대로이다. 다섯 병사는 또 어떤가? 오늘과 다른  빛나는 내일을 매일 꿈꾸는 다섯 병사는 예전 아가씨이거나 엄마였던 모습 그대로, 전쟁이 곧 끝나면이란 생각이나 이것도 잘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아직도 철부지들이다. 이런 이들이 무장한 16명 독일군과 전투를 벌여야 한다는 말이 안되는 상황은 서로가 서로를  막아야 하기에  시작이 된다.  

 

말도 안되는 상황, 그리고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그들에게 하나씩 일어나게된다. 아직까지도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인기리에 영화나 연극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하는  '여기에 고요한 노을이'는  현대 러시아 문학의 거장이라는 보리스 바실리예프의 1969년도 작이라고 한다. 아마도 그 역시 젊은 나이 전쟁을 겪었기에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지않았을까 싶다. 너무도 충실하고 정직한 특무상사와 말이 안되는 병사라는 가벼운 듯이 시작된 이 이야기는  전쟁이라는 특별한 때에도  내일과 사랑이라는 똑같은 일상을 꿈꾸는 사람들, 특히나 전쟁으로 달라진 세상에서 이미  상처받았음에도  예전과 같은  내일이 금방 올거라 믿는 , 너무도 순수한 여성들에게 일어난  이야기로 점점 색깔을 더해가며 이런 일은 왜 있어야했고, 왜 또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지금의 우리에게도  하고 있다.


예전 러시아 작답게 간결한 문체, 그리고 투박하고 소박한 말은  전쟁이라는 급박함 속에서도  여전히  한가로운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지금보다   순수했던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일을 담담하게, 그렇지만  점점 불안과 분노에 사로잡히게 되는 바스꼬프의 "난 뭐라고 대답해야하나 " 라는 울부짖음에는  슬픔을 더 담아두게 한다. 

 

 "알고 보니 여기도 전쟁터였대...


"노을이 질 때 여기는 죽은 듯이 고요하다네. 그동안 무심코 지냈는데 오늘에야 비로소 그걸 깨달았어..."   1969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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