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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엔젤
마가렛 로렌스 지음, 강수은 옮김 / 도서출판 삼화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가지 않는 거다.헤이거."
그녀의 아버지가 이 말을 했을때, 나 역시 그의 입장이 된다. 자신의 쇠고집을 닮아 오히려 더 사랑했던 딸이 시골 마을에서 평판이 안 좋기로 소문난 브램과 결혼하기로 했으니 누군들 그러지않았을까 싶다. 언제나 예의를 지키던 그녀가 언제나 무례한 그의 손을 잡고 고생이 뻔한 길로 들어서려한다면 나 역시 그들의 결혼을 말리기 위해 별 짓 다했으리라.하지만 보여지는 사랑이 아닌지라, 막무가내 청춘이 부리는 고집은 어떤 것으로도 꺾을 수가 없는 법이고 그것이 자유로운 선택이라 여기는 그녀는 역시나 고집스럽게 뒤돌아보지않고 최선을 다하게 된다.
"나중에 후회하지말고."
부모들이 자식에게 늘 하는 말, 어렸을 때는 그 말이 단지 위협용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살다보면 언제고 그 말은 돌고 돌아 다시 내 귓가에 들리게 될 때가 있다. 그제서야 다른 선택을 했더하면 달라졌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때이기에 단지 거기까지, 그리고 지금 선택한 것에서 열심히 밀고 나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될뿐이다. 고집스런 노력으로도 상황을 바꿀 수 없었던 그녀가 더 나은 삶을 포기하게 하는,심지어는 평판마저도 더 떨어진 쉬플리가 라는 가족에 억척스럽게도 익숙해졌다 싶었지만 둘째 존의 불평에는 그녀도 이런 후회를 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아들의 입에서 나온 말로 인해 이제껏 쌓았던 모든 걸 놓고 떠나 버리는 또 다른 고집을 부리게 된 걸 보면 말이다.
고집 하나로 일생을 밀고 나가던 그녀가 거울에 비친 세월과 고생이 가져간 흔적을 중간 중간 보게될 때, 물건의 진정한 가치를 잘 안다고 자부했던 그녀가 소중한 물건들을 우습게 보던 로티에게 팔아야만 했을 때 느꼈던 일들과 자신도 몰랐던 감정들을 치매에 걸린 90살이 넘은 헤이거가 이제서야 자신도 모르게 털어놓게 된다.
"이제서야 나는 일어날 일은 영영 늦출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p.312)
일생 후회없이 살았던 듯 행동하는 그녀이지만 흔들리는 몸 만큼이나 흔들리는 기억사이로 저 먼 가슴에 묻어 둔 남편에 대한 사랑, 아들 존에게 다해주지 못했던 후회, 그리고 큰 아들 마빈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따스함을 이제서야 두려워하며 꺼내놓는 헤이거에게서 우리는 지나가고 있는 우리의 일생을 보게된다. "너 만족하니?" 질문 하나로 손주가 고민이 있음을 알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나눠주고 싶고, 그리고 사랑하고 있음을 얘기해주고 싶지만 그러기가 쑥스러워 굳이 말하지 않겠다는 그녀에게서 자존심으로 마음을 굳게 다물기도 하던 내 순간을 기억하게 된다.어쩌면 헤이거처럼 남들의 눈, 평판이라는 굴레에 묶여 자신이 좋아하는 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나누지 못하고, 품어주고 표현하고픈 사랑을 이기적인 마음안에 묻어두고 있는 건 아닌지, 지금의 우리 바쁘게 사는 동안 진짜로 가져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무시무시한 분이죠"(p.374)
아들의 분노와 애정을 담은 이 말은 이들 모자에게 사랑과 용서를 주지않았을까 한다. 흔히 생각하는 막연히 보낸 세월만큼 지혜와 사랑으로 빛나고 있으리라 여겨지는 노인 헤이거의 지금 모습은 언뜻 언뜻 스쳐가는 예전 기억들의 고집스런 그녀와 그다지 다르지않다. 후회하면서도 바꿔지지않는 자신을 그대로 유지하고있는 무시무시한 그녀의 모습은 또한 지금의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알게된다. 그래서일까, 그런 그녀를 놀라워하면서도 이해하게 되는 우리는 그녀가 하지 못했던 삶의 지혜를 받게된다. 지금 사랑하고 마음을 보여준다면 덜 후회하리라, 그리고 지금 즐거워한다면 덜 후회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