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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세 기리코의 범죄일기
하라다 히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1월
평점 :
76세와 범죄일기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제목은 우선은 미스 마플을 떠올리게 했는데요. 좋아하는 미스 마플의 등장이 아닐까 했는데 생각과 너무 다릅니다. 진짜 범죄자가 되기 위해 나쁜 길로 걸어가려고 하는 기리코씨의 이야기거든요. 부모님 간병을 하느라 직장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던 기리코는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언니와 싸우게 됩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유산을 나누자는 말에 서운했던 건데요. 부모를 모셨으니 누구에게 알아달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힘든 시간을 누구든, 특히나 피를 나눈 언니나 가족이라면 당연히 고맙다는 한마디로 모든 걸 풀 수 있으려만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겁니다. 오히려 부모님 연금으로 편안하게 산거 아니냐는 말이나 듣구요. 얼마나 서운할지 짐작하게 됩니다. 그렇게 그녀는 혼자가 되어 아르바이트로만 살아가다 어느 새 늙은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제 진짜 혼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 남편을 잃은 도모가 같이 살자는 말을 건네고 그녀들은 함께 살게 됩니다.
나이를 전혀 알 수 없게 그녀들은 자신들의 시간을 가지고 재미있게 보냅니다. 그런 시간은 하지만 왜 영원할 수가 없는건지 도모가 먼저 세상을 떠나며 다시 기리코의 인생이 외롭게 되지만요. 그런 그녀가 어느 날 뉴스를 보게 되는데요. "노인 범죄"의 증가라는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두려워하고 남에게 폐끼치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지금의 그녀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보도였는데, 그녀는 그 뉴스 속 노인들이 범죄를 일으키는 이유를 듣고 남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걱정없이 하루 세끼와 잠들 수 있는 곳이 있고, 아프면 의사가 재까닥 올 수 있어서라는 범죄 동기를 들으니 말이죠. 그래서 그녀는 꿈꾸게 됩니다.
아픈 현실이다 싶은데요. 범죄자가 되려는 노인의 이야기는 "처음엔 뭐야?" 할 수 있지만 점점 끌려들어가게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노인이 된다는 게 당연해서 일수도 있고, 노인이 아니라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혼자 있는 삶의 내일이 어떨지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도저도 아니면서도 나 역시 기리코의 마음이 어떤지 충분히 알겠는 걸 보면 말이죠. 평생을 법없이 살아왔던 그녀가 이제는 남에게 피해는 안 주면서 제일 오랫동안 감옥에 있을 수 있는 범죄를 꿈꾸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그녀의 처지를 들은 이들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그녀를 도와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겁보이기도 한 그녀, 범죄를 저지른다는게 쉽지 않다는 걸 새삼 알게 되는 일만 자꾸 생기게 됩니다. 실패했지만 포기가 없는고로 계획하는 범죄가 커지게 되고, 우리도 그녀의 앞 날을 같이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 진짜 잘못된 일에 엮이지 않을까 해서요.
사람은 저마다 고독을 품고 있구나 -117
그녀는 그러다 알게 됩니다. 고독이란 것이 자기처럼 혼자만 사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는 걸요. 같이 있으면서도 나몰라라 하는 가족들과 있느니 마음맞는 이들과의 시간이 더 진짜라는 걸 알게 되고 그걸 우리에게 보여주는데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인간의 죽음... 특히 노인의 죽음이란 결국 지금껏 살아온 인생에 점수를 매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기리코도 어떤 죽음을 맞을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340
사람은 결국 자신을 받아주는 쪽으로 가게 되 있나봐... 라는 자조를 하던 그녀가 만난 형님의 고백도 가슴에 남을만합니다. 죽이지도 않으면서 아내는 먼저 죽어가는 자신을 괴롭히면서 그걸 즐길거라고 두려워하거든요. 야쿠자 형님이란 이름에 안 맞는 모습은 수십년을 아무말 없이 살아가던 아내들이 한다는 한마디를 떠올리게 합니다. 한맺힌 "나이들면 보자." 요. 그렇게 나이가 들어서야 자신이 해온 행동의 결과가 느껴지는 걸까 싶은데요.
그녀에게 찾아온 행운의 신인 구도나 유키나, 가도노등 좋은 사람들이 아직은 있다는 희망도 좋았지만 노년의 삶이란 아주 작은 바람에도 많은게 바뀐다는 걸 볼 수 있는 다카시같은 이를 보면 슬프기도, 불안하게도 되는데요.
이런게 웃픈게 인생의 진짜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하게 됩니다. 죽을 때쯤 점수를 스스로 매겨봤는데 나를 진심으로 아껴줄 이도, 그렇게 해주고 싶은 이도,그렇다고 나 혼자서라도 세상을 마주할 수단이 없다면 말입니다. 그런 수단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사람을 이렇게 위험한 순간에 찾은 기리코씨 인생의 점수는 꽤 높았던거 아닐까 싶은데요. 그녀같은 이들에게, 이제라도 부지런히 점수를 높여야겠다 싶은 나를 포함한 이들에게 응원박수를 쳐주고 싶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