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윤슬 에디션) - 박완서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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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간이 나를 치유해준 것이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소중한 경험이 있다면 그건 시간이 해결 못할 악운도 재앙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235

머리가 강제로 깎여 서울로 갈수밖에 없던 계집아이가 영원한 시골뜨기로 살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장편소설 모집이란 글에 가슴떨려 응모했게 되고, 그게 떡하니 당선됐다더라... 이거야말로 소설일거 같은데 소설이 아닌 진짜 박완서님의 이야기입니다. 그 기쁨도 사실 당시는 느끼지 못했다면서 무덤덤하게 친구들에게 상금 자랑했던 이야기도 해주고 어렸을 적 어땠는지, 지금은 어땠는지도 이야기해주시는데요.


왜 그녀가 40여년간 80여편의 단편과 15편의 장편 소설을 포함해 산문, 콩트등 그 많은 이야기들을 남겼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딸로 엄마로, 소설가로, 친구로, 다양한 생각과 시선으로 세상을 보지만 그 안 따뜻하고 중립적으로 세상을 보고자 하는 의지가 들어있음이 느껴져서인데요. 그녀의 책을 보면 엄마 만나러 얼른 가야겠다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래서일거같습니다. 나인채로 사는 것도 좋지만 사랑하는 이들과의 시간을 너무도 소중히하고 아끼는 우리네 엄마들의 마음이 이제는 어느정도 이해가 되니 더 말이죠.


'유쾌한 오해'에서 보면 어느 날 살맛이 나는지 알려주시는데요. '픽' 웃음이 나는 날이란 생각이 듭니다. 다 나보다는 착해보이는 날이 있다며 그런 날 살맛이 난다고 하는데요. 상대에게 뭐라 행동하기 전에 오해했음을 깨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기는 나의 비슷한 실수담 같은데서는 그 헛웃음속 하루가 가벼웠던 이유가 뭐였는지 이제 알겠다 싶고 (이미 마음으로는 충분히 째려받음에도 말이죠) 충분한 나이가 들었다 싶은데도 오판할 수 있음을 그리 솔직하게 알려주시니 아직 세상을 더 봐야겠다는 경계심을 나에게 불러주기도 하는데요.


인생 지나가는 길에 우리가 만나는 것들이 좋은 것만 있지 않아 슬프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게 어느 날은 지워지고 새로운 기분을 느끼는 나를 볼 수 있다는 잔잔하고 뭉클한 이야기들이 잘 사는 인생이란 받아들임을 할 수 있는 건가보다 하게도 되는데요. 잃어버린 줄 알았던 열쇠를 나뭇가지에서 발견하고, '네가 노래까지 잘하면 어쩌냐는 친구말에 단박에 기분 풀린것도, 소풍길 멀리 손녀를 찾아 온 외할머니의 보따리도, '예사로운 아름다움'이 사실 하나도 예사로운 게 아니라는 걸 보니.. 박완서님의 글이 오래 남는건 어떤 만남이건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는걸 겪었던 비슷한 일로 알려주시기 때문인걸까 하게도 됩니다.


새로운 이야기들을 들을 수 없어 많이 아쉽지만 그녀가 남긴 이야기들이 예전과 다르게 다가오면서 오늘은 어제와 다른 하루이고 그만큼 나도 달라져간다는 걸 알게 하는데요. 행복해질 능력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박완서님의 이야기가 힘이 된다면 그만큼 어려운 고개를 잘 넘어온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엄마, 아빠,  나와 아이들 주변을 흐르는 사람과 시간의 향이 얼마나 진한건지도 생각해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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