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 - 가장 민주적인 나라의 위선적 신분제
이저벨 윌커슨 지음, 이경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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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자신의 분수를 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로 돌아갈 때입니다."-23

대선 투표 결과 후 트럼프는 이런 말을 했다는 데, '분수를 알다'는 게 이렇게 충격적인 말이구나 싶습니다. 산책할 때 자유로이 길을 선택하는게 당연한건데 누군가는 사람들이 덜 다니는 길을 선택해야 하는 게 현재의 모습이라는 것만큼이나요.


저자 이저벨 월커슨은 미국 언론 역사상 플리처상을 받은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인데다 여성이라고 하는데요. 이런 걸 기억한다는 거 자체가 우리 안에 있는 차별을 인정한다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오랜전 노예제도가 생기게 된 배경이나 그 시대를 이어오면서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받은 고통, 유대인들이 받아야 했던 차별과 이해 안 되는 모멸 또한 시간이 지나 없어진 것들 아닐까 했는데 여전하다는 걸 보게 됩니다. '카스트'라는 건 인도에서나 있는 몹쓸 제도라 생각했는데 사회 곳곳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는 것도 말이죠.


인간의 가치를 미리 정해진 서열에 따라 구축하는 인위적 구조물인 카스트는 조상과 신체적 특징, 두가지만으로 한쪽은 우월, 그리고 다른 쪽은 열등으로 미리 나누어 놓은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요. 인류의 역사에 3개가 있다고 합니다. 나치 독일의 카스트와 인도의 카스트, 그리고 드러나지 않지만 늘 존재하고 있는 미국의 카스트까지요. 3가지 나라의 경우를 다 볼 수 있는데 많이 지우려 노력하는 독일과 달리 두 나라에서는 여전히 카스트라는 걸 공공연히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사화에서 어떤 대우를 받을 지, 어디서 살지,어떤 직책을 맡을지, 도시의 어느 구역에 머무를지, 어떤 주제에 대해 말할지, 병원에서 어떤 진통제를 투여받을지, 유독성 폐기물을 버리는 이웃들이 있을 확률, 수도꼭지에서 오염된 물이 나오는 곳에 살 확률, 아무런 잘못도 없이 경찰의 총에 맞을 확률등을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38

이렇게 구체적인 예를 보니 숨이 턱 막히게 됩니다. 많은 발전을 이뤘고 많이 평등해진거 아닐까라고 생각했는데 껍질만 바뀌고 속은 다들 여전했던건가 싶기도 하구요. 카스트 위쪽에 자리잡았다 생각한 이들은 그 자리를 내어줄 생각이 없어 투표에서 우월한 지위를 지켜야 한다는 딱 한가지로, 생각하지 못했던 대통령을 택했다는 것도 너무 슬프다 싶구요.


인간은 어디까지 이기적인걸까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카스트와는 다르다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계급'이라는 단어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구요. 자신이 만들어내지 않은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우월해지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런 이를 만나 분노해야하는 상황에서 내 행동은 과연 지금의 생각과 같을지 어떨지도요.


"신이 아무것도 구별하지 않은 곳에서 카스트는 인간을 차별한다."

독일은 지워가는데 '노예 해방'이라는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는 왜 카스트의 그림자가 지워지지 않는지 생각해보면 백인으로 태어났다는 신이 주신 우연한 기회를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이들이 많기때문일텐데요. 하나의 우연을 인정하면 다음 우연도 인정하고 따라올 차별도 받아들여야 할텐데, 그 때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어집니다. 한군데를 막아놓으면 다른 곳으로 압력이 더해지는 게 당연하다는 걸 알면서 말이죠. 먼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기에 나몰라라했던 에볼라 바이러스가 퍼지게 된 이유만 봐도 알 수 있을텐데요. 도미노처럼 퍼지는 차별의 폭력성이 어디까지든 갈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본다면 왜 멈춰야하는지도 알 수 있게 된다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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