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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
렌조 미키히코 지음, 양윤옥 옮김 / 모모 / 2022년 2월
평점 :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말을 들을 때 "그게" 도대체 뭘까 싶었는데요. "백광"이 그렇습니다. 치매기가 있는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 사토코는 무뚝뚝한 남편 류스케와 이쁜 딸 가요와 살고 있습니다. 매사에 자신이 없어보여 그런건지 남편과 알콩달콩한 분위기는 없겠구나 싶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부로, 엄마로, 며느리로, 아내이자 언니로 열심히는 사는거같기는 한데 재미는 없어보입니다. 뭐, 가끔 딸 나오코를 맡기러 오는 여동생 유키코를 못마땅해하는 거 정도 빼고는 다들 사는 게 비슷하다 싶기도 하구요. 이런 매일매일중 세상이 전부 녹아내릴듯 뜨겁던 어느 날 또 나오코를 맡기러 오겠다는 말을 듣게되는데, 가요와 치과가야 하는 사토코는 난감하기만 합니다. 데려가자니 일이고 놓고가자니 치매 노인이 신경쓰이구요. 하지만 잠깐이고 혼자도 괜찮다는 나오코 말에 둘이서 길을 나섰다 사건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 사이에 나오코에게 사건이 생기고 범인을 찾아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당연히 부쩍 예전 군에서 있었던 살인사건을 이야기하던 시아버지가 의심받는데요. 증거부족이랄까요, 그를 의심할 명확한 증거는 없습니다. 그리고 치매이기에 오히려 사건을 저지르지 못했을거라는 생각을 주기도 하구요. 그런데 저마다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하면서 한명만 이상한 줄 알았는데 그들의 묘한 가족관계가 드러납니다. 이게 뭐지 할 정도로요. 서로가 범인이라며 의심하기도 하고 자기가 범인이라는 고백을 하기도 합니다. 이 상황에서 범인이 중요한건지, 그들 서로가 가지고 있던 증오심이 무서운 건지, 혹은 그들 각자가 가진 착각이 허무한 건지 헷갈릴정도인데요. 그렇게 읽어가다보면 그들은 왜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유지하고 있는건지가 궁금해집니다. 어찌어찌 살다보니 그리 된건지, 혹은 오래전 한 인간의 배신의 결과가 이렇게 깊숙이 뿌리를 내리게 된건지가요. 어떤 이유로든 나쁜 일이 언젠가는 일어날거라면서도 피할 수 있는 결과를 기다리다 맞이한 한 아이의 운명만 안타깝다 싶은데요.
그녀를 사랑한 건 아니라는 류스케, 사실 내가 사랑한 사람은 다른 여인이라는 나오코의 아빠 다케히코, 치매를 연기했을뿐이라는 시아버지, 불경을 외우면서 남편에게 섬뜩한 일을 시켰던 시어머니 아키요, 언니의 모든 걸 도대체 왜 빼앗으려 한건지 도통 알 수 없는 유키코, 나쁜 여자라는 걸 알면서도 찾아오지 않을 수 없다는 히라타, 사실 모든 게 연기였던건가 싶은 사토코, 그리고 이 모든 어른들의 다른 겉모습을 읽었던 건가 싶은 가요와 나오코까지 모두 겉으로는 정상으로 보였지만 사실 정상은 하나도 없었던 거같아 사건의 전개는 그들의 입으로 담담하게 진행되어가지만 너무도 이기적이라 소름돋고 슬프다 싶은데요.
예기된 결과를 한 명도 멈추려하지 않았으니 그들 모두 범인이겠죠. 능소화와 모든 걸 받아들인 아이, 난무한 고백들, 그리고 사과라는 걸 모르는채로 너무 멀쩡하게 서로를 바라보고 나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무서운거라는 걸 그들에게서 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