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런 벽지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 내로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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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이걸" 읽는다면 미쳐 버릴것이 분명하며, 그렇기에 이런 소설은 절대로 출간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하셨죠.-13

저자인 샬롯 퍼킨스 길먼이 쓴 글을 읽고 의사가 이런 항의를 했다고 하네요. 그럴 정도인가 싶은데, 다른 의사 역시 연락을 해서 이 소설이 정신 이상의 발단 과정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포착하고 있는데 혹시 그녀의 경험담을 적은 것인지도 물아봤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 이 이야기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요. 본인의 이야기가 많이 들어갔구나 하게 됩니다. 그녀의 우울증에 관한 치료법 역시나 " 최대한 가정적인 삶"을 살고 "두뇌 활동을 하루 최대 두 시간으로 제한"해야 하고 "살아있는 한 절대로 펜이나 붓이나 연필 따위는 잡지도 말 것"이였다니 말이죠. 1887년, 석 달 동안 그 치료에 열중하다보니 정신적으로 파멸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는데요. 누런 벽지 속 그녀도 그렇습니다.

 

석 달 동안 요양을 위해 가게 된 곳에서 그녀는 기분좋아지는 아래층 방을 놔두고 통풍이 잘된다는 이유로 마음에 안 드는 방을 사용하게 됩니다. 의사이자 남편인 존은 그 방으로 정해놓고 그녀에게 무조건 쉬라는 처방을 내리는데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상상도 몸을 해칠뿐이니 하지말라는 겁니다. 하지만 그녀는 주위의 눈을 피해 몰래 몰래 일기겸 편지를 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마음에 안 드는 누런 벽지 무늬를 따라가기도 하구요. 첫번째, 두번째 일기로 넘어갈수록 그녀가 누런 벽지를 굉장히 신경쓰고 있다는 것과 조금씩 변해간다는 걸 알게 됩니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당연 스릴러가 되었을거다 싶은데요. 자신의 현실을 답답해하던 여인이 벽지 무늬를 쫓다 보게 된 사람, 그리고 점점 자주 나타나는 그 여인의 존재는 공포영화에서 흔하게 만나는 장면들이니까요. 남편에게 몇 번이고 나즈막히 열쇠가 어디있는지 말하는 고상한 부인과 놀라는 남편을 "지날 때마다 그 몸을 넘어서" 는 전혀 다른 여인의 마지막 장면은 대비만으로도 섬뜩하지만 그래도 그녀를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똑똑했던 사람이 그림자처럼 희미해져가는 자신의 존재감을 직시하면서도 아무것도 못한다는 건 "차라리"를 떠오르게 했을테니까요. 시대가 그래서인지 사랑한다면서 하루종일 그녀를 혼자 놔두거나 원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남편은 대세가 따르는 치료법이 그렇더라도 더 신경써야 했던 거 아닐까 하는 아쉬움을 주는데요. 그녀 역시 일기가 진행될수록 남편에게 에둘러 서운함을 말하다 분노하는 것으로 보이는 데  좀 슬퍼지게도 됩니다. 아마 실제 모습의 그녀도 남편이 딱 이렇게, 알아주기만 바랐던 거 아닐까 싶어서 말이죠

 

"여성적 사고란 존재하지 않는다,

뇌는 성별이 있는 기관이 아니니까.

간이 여성적이라 표현하겠는가!"

시대를 앞선다는 건 참으로 힘들고 슬프고 무서운 일이구나 하게 되는데요. 그래도 이 이야기가 "휴식 치료법"이라는 말도 안되는 의사들의 신경쇠약으로 힘든 여성들 치료를 그만두게 했다니 솔직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문학의 가치로서도, 변해가는 여인의 심리를 따라가게 하는 집중도로도 새삼 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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