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나무 아래 - 시체가 묻혀 있다
가지이 모토지로 지음, 이현욱 외 옮김 / 위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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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날리는 벚꽃아래에는 시체가 묻혀있을것이다 라고 단정하는 이와의 대화는 어떨까 절로 상상하게 됩니다. 무조건 사이코패스이지 않을까 했지만 이유를 듣고나니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그에게는 아름다운 것들에 어울리는 반대점이 필요한건데요. 스스로를 위한 합리적 논리이지 않을까, 다른 이들처럼 아무 생각없이 즐기지 못하는 게 내심은 억울했던건지도... 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자 가지이 모토지로는 일찍 폐결핵 진단을 받고 아팠다고 하는데요. 어느 시기부터 늘 아팠던 자신의 이야기들을 적어놓은 거 아닐까 하게 됩니다. 한 편 한 편, 일기와도 같은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어느 새 그를 이해하게 됩니다. 남아있는 이들을 보면서도 그리워하고, 떠나간 이들을 애도하는 자신을 안타까워한다고나 할까요. 이들이라고 해서 사람만을 뜻하는 건 아닙니다. 그의 시선과 생각안에 들어온 모든 것들에 호기심을 보이는데요. 열정이 빠진 호기심이라서인지 덤덤하게 풀어내는 데 그게 오히려 그의 이야기에 동행하도록 우리를 이끌게 됩니다.

 

"태평스러운 환자" 부터 "게이키치"까지 아픈 이가 나옵니다. 그렇지만 삶이나 죽음, 어느 순간에도 어느 쪽에도 호들갑스럽지 않은 모습을 보게 됩니다. 태평스러운 환자에서도 보면 "병이란 결코 학교의 행군처럼 견딜 수 없는 약한 사람을 행군에서 제외시켜주지 않는다. 마지막 죽음의 골로 갈 때까지는 어떤 호걸이든 겁쟁이든 모두 같은 줄에 서서 마지못해 질질 끌려가는 것이다.-41"라는 부분을 볼 수 있는데요. 어쩔 수 없는 받아들임이 뭔지를 약간이나마 알게 됩니다. 호들갑스럽지 않다는 게, 그렇다고 슬프다는 것도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같은 길이니까요. 다만 언제까지일지 모른다는 한계점이 더 잘 보이기에 오히려 묵묵히 담아두는 것 뿐이죠. 

 

그들은 모른다.-110

'어느 벼랑위에서 느낀 감정'에서 보면 남의 창문 안 비밀을 안다는 것에서 산다는 것의 재미나 장난스러움을 느낀다는 청년의 고백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바라던 인간의 최고 욕망일줄 알았던 모습도 보지만 다른 창문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모습도 보게 된 그는 인간의 기쁨이나 슬픔을 초월한 감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걸 '인생의 무상함'이라는, 감정을 넘어선 어떤 의지력이 느껴지는 무상함이라고 하는데요. 이걸 알게 된 자는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걸 볼 수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게 됩니다. 남들은 모르는 걸 알고 있다는 거, 그게 보통의 자들이 추구하는 반짝이는 햇빛의 눈부심쪽이 아니라 바람에 흔들리는 벚꽃 뿌리 아래라던가 북적이는 낮이 아니라, 아픈 몸을 끌고 어둔 밤을 소리없이 걷는 거라던가로 말이죠. 삶의 진짜는 기쁨과 슬픔이라는 단편적 의미로 나눌수 없고, 그건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는 걸로요.

 

생의 끝자락을 느끼는 자에게는 생각과 달리 어떤 나쁜 것도 별거 아닌걸로 털어낼 수 있음을, 생명이 갖는 생생한 아름다움에서 한 발 빗겨날 수 밖에 없다고 믿는 자의 시선은 오히려 모든 게 아름다움이란걸 보여주는 듯 한데요. 사람의 이중성이라는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보게 됩니다. 무거울거 같지만 사소한 걸로 가벼워지고 우울할거같지만 눈 앞의 작은 이야기에 집중하며 모든 걸 잊는 걸 보면요.

 

그렇게도 집요했던 우울이 이런 과일 하나로 풀리다니, 때로는 확실하지 않은 어떤 것이 역설적으로 사실인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얼마나 불가사의한가.147

굴러갈 수 있는 수레바퀴는 어디에 멈춰도 쉴수 있다는 걸까 싶어지는데요. 인간의 길을 잊어서는 안 되지만 굳이 생의 쓸쓸함쪽으로 올 것이냐며 왜 지금을 그렇게 살아가냐는 가지이 모토지로의 질문들은 아니였을까 싶어지기도 합니다. 잔잔하지만 직설적으로 자신과 같은 삶을 통해 보여주기에 세월이 지나도 여운이 남는다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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