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이야기의 힘 - 대담하고 자유로운 스토리의 원형을 찾아서
신동흔 지음 / 나무의철학 / 202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옛 이야기 좀 읽었는데요. 나는 왜 좋아했을까 새삼 궁금해지게 됩니다. "옛 이야기의 힘"에서 내가 읽었던, 지금은 많이 잊은 이야기들을 보면서 말이죠. 그림형제의 이야기들을 주로 해서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의 비슷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그것에 관한 해석을 해주고 있는데요. 이렇게 보니 비슷한 이야기들이 참 많구나 싶어집니다. 콩쥐와 팥쥐, 장화와 홍련, 신데렐라, 라푼젤(라푼첼이 잘못 붙여진 이름이라는,,,) 등등이 예전엔 착한 사람은 결국 복을 받는다,,라는 건 줄 알았는데요. 그들의 가혹하거나 아름다운 끝맺음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겁니다. 주인공들이 선택한 행동의 과정이 원인이 되어 자신에게 좋든 싫든 결과를 낳게됐다는 거죠. 선택에 따른 노력때문에요. 그 순간의 착한 행동을 보게 된 하늘의 도움이 아니라요. 그것도 물론 각자의 해석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우선은 이렇게나 이야기 끝이 잔혹했나 싶어집니다. 콩쥐를 괴롭힌 팥쥐는 콩쥐보다 못한 최후를 맞이했고 그것에 동조한 그녀의 어머니이자 콩쥐의 계모 역시 아주 비참한 결말을, 백설공주를 괴롭히던 계모 역시나 이 이야기의 끝이 이랬나 싶게 무서운 결말을 맞이했는데요. 그것들에 관한 해석을 듣노라니 뜨끔해서인지 더 무서워지게 됩니다. 어렸을 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던 여우 누이도 역시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여우가 사람으로 변해 온 집안을 다 잡아먹는다는 것 자체가 무서웠고 막내 오빠까지 잡아먹기 위해 쫓아가며 변해가는 그녀를 상상하는 게 오싹했는데요.

 

" 그 여우는 눈앞의 거짓 행동으로 사랑을 차지해 부모들을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는 아이들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중에 막내오빠가 집을 찾아왔을 때 부모나 진실을 말하지 못한 위의 두 형이 잡아먹인 건 당연한 것이다. 간이라도 빼줄것처럼 애지중지하던 이들이 실제로 간을 빼앗기게 된것이다" 라는데요, 받기만 한 사람은 그걸 당연히 여기게 되니까..라는 설명이 와 닿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컸고 그렇게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데 "이것이 옳은 일일까?" 싶을 때 새기면 좋을 말이다 싶은데요. 진실을 말한다고 왕들은 늘 세째딸이나 아들을 쫓아내는 데 나중에서 알게되죠. 사실 그들만이 자신을 기만하지 않았다는 걸요.그렇다고 그렇게나 많은 걸 가진 이들이(물론 헨델과 그레텔처럼 가난한 이들도 자식을 쫓아냅니다.) 자식을 내보내나 싶었는데 자식들에게 행동의 자유를 준것일수도 있다 싶으니 부모와 자식과의 올바른 관계로도 보게 되네요. 일정한 나이가 되기전에는 쓴소리도 하고 내가 원하는대로 하기를 바라지만 자식이 일정 나이가 되면 잘 되기를 바라며 보내주는 게 서로의 관계로 맞다는 건가 싶어서요.

 

"이게 이야기이고, 이게 삶이야"

그래서 이 이야기들이 오래가는 건가 싶어집니다. 이야기하는 이나, 듣는 이나, 자신의 입장에서 듣다 때로는 상대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으니까요. 세상에 왜 이야기가 많은지도 알겠네요. 각자의 삶마다 겪어온 나만의 이야기를 얼마나 하고싶고, 전해주고 싶겠습니까. 나는 시간이 좀 더 흘러 어떤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하고 있을지, 그 때도 여우 누이를 제일 기억하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죠. 이야기들이 워낙 많아 이야기만 봐도, 해석을 보면서 나만의 해석을 해보는 시간도 좋다 싶어지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