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 18세기 조선경제학자들의 부국론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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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조선의 관리들 하면 노론, 소론, 남인, 서인으로 갈려져 벌이던 무의미한 당쟁과, 고루한 내용에 파묻혀 현실과 거리를 두었던 유학이 생각났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 속에서도 현실을 개선하고자 노력했던 실학파들 몇 분이 떠오르기는 했다. 그러나, 토지 개혁을 주장하고 때로는 상업의 중요성을 보다 더 강조하며  부조리로 가득찬 현실을 개혁하려 했던 그분들의 존함은 알고 있어도, 실제 주장한 내용에 대해서는 피상적으로밖에 알지 못했었다. 이제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우리의 실학자들이 얼마나 앞서나가는 생각으로 나라를 위해 고군분투했었는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으며, 조선시대에 이러한 분들이 계셨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영의정이라는 높은 자리에 있었던 김육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뺏기기 싫어하던 관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동법의 전국적 시행과 화폐 유통을 추진하여 조선 후기 상공업 발달의 물꼬를 연다. 조선시대 최고의 경제 관료라 칭해지는 그는 직접 정책을 세우고 실행하는 자리에 있었기에 그 결과가 더욱 빛이 났다. 수많은 책을 집대성하고 놀랄 만한 학구적인 업적을 거두었어도 초야에 묻혀 자신들의 뜻을 펼 수 없었던 다른 학자들에 비하면, 관료라는 그의 자리가 정책의 실행 단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바람직한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그밖에도 조선 유일의 여성 실학자인 빙허각 이씨가 저술한 의식주에 대한 내용인 '규합총서'의 존재를 알게 되어 반가운 시간이었으며, 대역죄인의 누명을 쓰고 처형을 당하여 가문이 몰살되는 바람에 잊혀진 존재가 되고 만 유수원의 '우서'에 대한 평가는 새로웠다. 신분제가 엄격하던 조선 시대에 평등과 자유로운 직업 선택, 양반 상공인론을 주장한 내용이 무척이나 파격적으로 다가왔다.
13인의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각기 살고 있던 시대에 앞선 사고방식으로 조선의 나아갈 바를 제시했다는 점에선 동일했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다면, 조선의 인재들에 대한 기존의 인식에서 더 깊게 파고들어가며 뿌듯한 마음으로 읽어내려가게 될 것이다. 더불어 책의 초반에 나와있는 13인의 가상좌담은 tv에서 볼 수 있는 토론회의 형식으로 쓰여져 있는데, 각 학자들의 주장하는 바가 명료하게 드러나 내용 이해에도 좋을 뿐더러 그들의 연구결과를 현재에 접목시킨다면 어떤 결론이 나올지에 대해 흥미롭게 생각해볼 수 있는 코너이기도 하다. 

아쉬운 것은 정조대왕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개혁의 틀이 완성되기도 전에 뿌리뽑혀지고, 다시 예전의 수구세력인 노론들이 득세하는 정치판으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또다시 지나가는 숙청과 유배의 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참형을 당하신 분도 계시고, 유배의 긴 세월을 보낸 분들도 계시다. 정약용은 18년간의 유배생활 중 엄청난 양의 저서를 탄생시키는 소득을 얻기도 했지만, 이분들이 공직에서 실제 제도 개혁을 통해 이룩해냈을 결과물을 예상한다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13인의 경제학자들에 대한 내용 중 여기저기에 수시로 나오는 정조대왕의 이름을 확인하고 나니, 정조대왕의 사후 이렇다 할 제도적 개혁없이 근대적 틀을 갖추지 못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던 역사의 한 페이지가 참으로 아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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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펀드 직장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시리즈 1
박경회.이형관 지음 / 새로운제안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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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은행에 갔다가 직원의 권유로 아이 펀드에 가입하게 되었다. 매달 5만원씩의 소액을 적립하는 펀드였는데, 물론 그 전부터 아이 펀드 하나 만들어주면 경제관념도 익히고 돈이 쌓여가는 재미도 느낄 것이라는 생각에 하나 들고 싶던 마음이 있던 터였으니, 마침 그 직원의 권유는 한참 끌리고 있던 마음을 고삐매어 잡아당겨 준 격이었다. 그 펀드는 현재 주가 상승을 거치면서 꽤 쏠쏠한 재미를 안겨주고 있다. 소액이라서 큰돈을 벌거나 하진 못하지만, 똑같은 방식으로 적금을 들었을 때에 비하면야 통장 들여다볼 재미가 절로 생기는 펀드이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서서히 펀드에 관심을 갖게 되고 몇 개 상품에 가입을 하면서 이익도 보고 손해도 보는 일을 겪다 보니, 펀드에 대해 공부할 필요성을 정말 절실히,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관련 카페에 가입해서 정보를 얻는 방법도 좋고, 신문 기사를 철해놓는 것도 좋지만, 좀더 체계적으로 펀드의 모든 것을 정리할 수 있는 책이 필요했다. 최소한 가입을 하면서 기본적인 사항을 직원에게 묻지 않아도 될 정도를 갖추고 싶었고, 그동안 궁금해하던 선취나 후취의 개념을 확실히 하고 싶었으며, 환매시점이나 세금에 대한 것도 알고 싶었다. 이런 기본적인 사항들을 공부하기에 이 책은 그 목적을 충분히 충족시켜 주었다.

우선 적립식 펀드에 대한 기술이 잘 되어 있어, 은행 직원이 자꾸 적립식 펀드를 권유하던 순간을 되새기게 되었다. 지금에서야 코스트 에버리징 효과라는 걸 알고 보니, 적립식 펀드에 대해 매력을 느끼게 된다. 이제까지는 주가지수가 꼭 상향으로만 가야 이익이 나는 줄 알았는데, 아래로 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곡선을 그리는 것이 더 수익이 많아진다는 것은 적립식 펀드만의 매력으로 보인다. 그 밖에도 장기주택마련펀드나 변액유니버셜 보험에 관한 내용과 환매 시점을 포착하기에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 평소 알고 싶던 것이어서 만족스럽게 다가왔다. 전체적으로 펀드의 초보자들이 읽기에 무리없는 내용이지만, 5장 '주식의 이해' 편에 나온 주가수익비율(PER)과 PBR에 대한 내용은 한번 읽어서 쉽게 와닿지는 않았다. 이 부분은 다시한번 정독을 해야 이해가 될 것 같다.

일반원론을 말하는 다른 경제관련 책보다 훨씬 만족스러웠고, 앞으로 새 펀드에 가입을 할 때나 환매 시점을 고민할 때 항상 옆에 두고 참고하려 한다. 직장인이거나 아니거나, 편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만한 책이다. 부록으로 실려있는 운용사별 베스트펀드 20도 상품의 특징을 비교하며 볼 수 있는 좋은 참고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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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상의 혼 1
주슈하이 지음, 하진이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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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권으로 이루어진 '거상의 혼'은 청나라 말의 혼란한 시기에 몰락할 위기에 처했던 교가 집안을 당당하게 일으킨 상인 교치용의 일대기를 다루었다.
교치용, 그는 상인이지만 높은 기상을 가진 사람이다. 정치가이되 정치가답지 않은 사람, 높은 직위에 있으나 그 직위에 걸맞지 않은 사람이 허다한 것에 비해서, 교치용은 상인이되 그 마음은 고관대작과 황제의 기상을 넘어설 정도로 크다. 일반 사람들이 상인을 생각할 때 언뜻 생각하는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이란 말은 교치용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장발적의 난으로 막힌 비단길과 찻길을 목숨을 바칠 각오로 뚫어 판로가 막힌 농민들의 살길을 열어주고, 더 나아가 어음을 유통시키며 전국적인 근대 은행체계를 갖추어 모든 상인들이 보다 편리하게 상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한 사람이다.
또한, 근대적인 사고방식으로 점원에게까지 이익배당을 나눠주고, 나이와 경력보다는 능력 우선으로 인사이동을 하는 등 상업계의 구태의연한 관행을 뒤집는다. 다른 상인들의 반발을 사면서도 아랑곳없이 밀고 나간 것은 그가 돈을 벌려는 이유에서 장사를 한 것이 아니라, 사나이의 기상으로 세상을 의롭게 하고자 하는, 보다 더 높은 뜻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비스에 있어서도 고객이 우선이라는 정신 하에 거짓없는 상술을 펼쳤다. 자신의 가게의 분점에서 고가의 아마인유에 재고가 많던 목화씨씨기름을 몰래 넣어 팔아온 것을 발견하자, 사과문과 함께 아마인유를 원가의 십분의 일에 팔도록 하는 파격적인 행위를 함으로써 교가의 이미지를 높인다. 

또 하나의 재미는 풍지박산되었던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어릴 때부터의 사랑이었던 설영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부잣집 딸인 육옥함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애정과 배신에 관한 이야기이다. 해맑았던 설영이 변해가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은 사람을 파괴시키는 증오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고, 생각보다 현명하고 바르게 처신했던 육옥함의 슬기로움은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중반을 달려가면서 조금 어색했던 부분은 제갈공명이라고 불릴 정도로 머리를 잘 쓰며 똑똑했던 손무재가 변해가는 과정이 급박하게 진행되었던 점이다. 그는 꽤 호감가는 인물로 그려졌었는데, 중반부터 교가의 재산을 탐하며 교치용의 형수를 이용하려는 치졸한 모습을 보인다. 사람은 언제라도 변할수 있는 것이긴 하나, 그 갑작스러운 변화가 줄거리 전개 때문으로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나비를 쫓아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장자의 마음을 지닌 교치용은 그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넓은 대륙을 오가며 차 판매 길을 개척하고 근대 은행 시스템을 갖추는 위업을 달성했다. 시련과 역경을 거쳐 오면서도 한평생 후회없을 듯한 삶을 산 교치용의 정신은 오늘날 상도의 기본 마음가짐으로 삼아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앞서나갔다. 교치용의 삶의 족적을 따라가면서 그의 사랑에 아파하고 그의 업적에 찬사를 보내다보니, 오늘날 '나'의 모습은 어떠한지 되돌아보게 된다.

tip : 교치용이 살았던 저택 교가대원은 313개의 방을 가진 웅장한 건축물로 장이모 감독의 '홍등'도 이곳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다음에 '홍등'을 볼 기회가 생긴다면 유심히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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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통행권에 복권을 붙이면 정말 좋겠네 - 유쾌한 인생 반전을 가져다주는 생각습관
희망메이커.박원순.전유성.박준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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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생각이 모이고 모여 우리가 사는 사회가 보다 살만한 곳으로 바뀌어나가는 모습을 볼 때, 매우 뿌듯함을 느낀다. 바른 생각과 꿈을 꾸어나가며 밝은 사회를 만드는 사람들의 존재감은 소수이더라도 그 힘은 크다. '희망제작소'라는 곳 역시 원하는 대로 세상을 디자인하여 우리 사회의 어둠을 밝히는 곳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박원순씨의 명함에는 'social designer'란 직함이 찍혀 있다고 한다. 사회를 디자인한다는 의미가 멋지다.

책의 앞쪽에 있는 두 장의 큰 그림을 들여다보니 이 책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알겠다. 앞장의 그림과 뒷장의 그림은 얼핏 보면 똑같지만, 자세히 보면 뒷장의 그림에서는 책의 여러 사례에서 볼 수 있었던, 놀이공원에서 전동휠체어 대여해주기, 시각장애인을 위한 말하는 내비게이션, 어두운 심야광역버스에 불 밝히기와 같은 제안들이 현실화되어 그려졌음을 볼 수 있다.

전유성씨와 박준형씨는 책의 곳곳에 감초처럼 나와 여러 제안을 한다.
전유성씨는 메모를 잘 활용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문득 생각이 났는데 옆에 종이가 없으면 방바닥에라도 메모를 해놓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일반 사람들이 무심코 여기고 지나갈 만한 일들에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발산한다. '농산물 운반차에 현수막을'과 같은 아이디어는 괜찮게 다가왔다. 상품이 좋다고 알아서 사주는 시대가 아니며, 마케팅이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는 세상에 장소를 가리지 않고 광고란 꼭 필요한 법이니까.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광고를'과 같은 아이디어도 좋았다.
박준형씨의 '세금을 잘 내게 하는 방법, 선행권'이나 '저소득층도 문화를 즐길 권리가 있다', '용서의 날'과 같은 아이디어도 긍정적으로 다가온 아이템이다.

여러 사람의 제안으로 불편함이 해소된 경우도 있다.
은행의 자동화기기로 출금전 수수료가 공지되는 시스템 은 누군가의 제안으로 금융감독원을 움직여 은행들이 사전에 수수료를 알려주는 시스템으로 보완하게끔 만들었다. 주민등록증도 예전엔 주민등록지 동사무소에서만 발급이 가능하여, 증을 분실했을 때 주민등록지에서 먼 곳에 거주하고 있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것도 앞으로는 전국 어디서나 가능하게끔 바뀐다고 하니 그것 역시 누군가의 제안 덕분이다.

아직 실행이 되지 않은 제안 중에서도 좋은 의견이 많았는데, 먼저 우산 탈수기가 개발되어 나왔으면 좋겠다. 비가 올 때마다 관공서 등에서 나눠주는 우산 비닐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을 보고 사실 찜찜했었다. 외국에 이미 우산 탈수기란 것이 있다는데, 우리 기술로 만들지 못할 리가 없다. 화장실의 가방걸이도 좋은 의견이다. 공공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려다가 마땅히 가방을 놓을 데가 없어 불편했던 경험이 있었다면, 가방걸이와 같은 작은 것 하나로 편리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또한, 독일의 훈데르트 바서 학교의 사진을 보면서 화장실의 팻말조차 특별한 그 곳과 획일적인 사각 형태의 개성을 찾아볼 수 없는 공간인 우리 학교의 모습을 비교하게 되었다. 외국의 개성을 살린 놀이터와 우리 나라의 놀이터의 비교 사진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몇 장의 사진은 사진 이상의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사진들이 교육정책을 입안할 때 영향력을 발휘하여, 우리 사회가 변화해 나가는 초석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가 사는 사회이다. 사회를 보다 편하게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적극적인 의사 표현과 제안이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론, 이기적이거나 특수 단체를 위한 것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제안이어야 하겠다. 작은 제안과 실천이 모여 사회를 변화시키는 큰 물결에 모두가 동참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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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 일 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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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사랑...
이런 것들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고 삶의 활력과 기쁨의 전부였던 때도 있었지만, 시간은 흘러가며 이런 마음을 서서히 변화시킨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는...그래서 나보다 그 또는 그녀를 사랑하는 희생적인 사랑은 원래의 순수한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신을 병들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씁쓸한 깨달음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에로스라 불리는 남녀간의 사랑은 가치면에서 오래전의 화려한 왕좌를 내주고 서서히 추락한다. 이제는 남녀간의 사랑보다 다른 사랑이 한차원 위에 있다는 것을 믿는다. 가족간의 사랑, 모성애, 또는 인류애, 봉사정신 등등...

20대 초반, 친구가 말했다. "난 존경할 수 있는 남편과 결혼할 거야."
그땐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웬 존경? 사랑이면 되지.'
그러나, 이젠 그 친구 참 똑똑했다는 생각을 한다. 이성으로서 끌리는 사랑보다 존경심을 갖고 우러러볼 수 있는 사랑이 더 커보이는 것은 한때의 열정보다 인간 자체에 대한 인정과 신뢰가 밥을 오다지게 꽉꽉 채워담을 수 있는 넓직한 그릇처럼 우리 마음도 더 풍족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연애소설을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지만, 프랑수아즈 사강이기 때문에 이 책에 관심을 가졌다.
그녀의 작품에 대한 호감도보다 개인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고 할까? 그녀의 작품 속에서 사랑은 어떻게 표현될까 하는.

부유한 집안의 조제는 자유분방하면서도 열정을 갖고 있는 여성으로, 유부남 베르나르와 사귀다가 연하의 의대생 자크를 사귄다. 베르나르는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아내 니콜을 두고도 조제에게로 향하는 마음을 돌리지 못해 방황한다.
출판사에 다니는 오십대의 남자 알랭 말리그라스는 베아트리스라는 아름답고도 난폭한 여배우를 사랑하고, 그의 조카인 에두아르 또한 베아트리스를 맹목적으로 사랑한다.
베르나르의 아내 니콜은 글을 쓴다는 핑계로 오랫동안 떠나있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외롭게 유산을 했고, 알랭의 부인 파니는 남편의 바람을 알고 초최하게 말라가면서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상황을 좋게 만들려 애쓴다.

사랑은 나이에 관계없이 다가오고, 그 대상은 일정하지 않다. 아름다운 외모의 아가씨일수도 있고, 진정한 사랑보다 야망에 사로잡힌 화려한 여성일 수도 있으며, 유부남일 수도 있고, 연하의 대학생일 수도 있다. 그리고, 오로지 함께 사는 남편 외에 다른 사람은 사랑할 수 없을 수도 있으며, 때로는 습관화된 정으로 바뀌어져 자신의 소유가 아니면 안되는 불안감의 존재일 수도 있다.
그들은 한 달 후, 일 년 후 지금의 사랑이 계속되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래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현재는 사랑이 움직이는 대로 놔둘 수밖에 없어 미래를 불안해하면서도 사랑 속에 갇혀 있다.

'당신들 왜 그러고 있어요?' 라고 외치고 싶었다.
지금 진정 목매며 그리워하는 대상을 한 달 후, 일 년 후에는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 앞에서 휘청대는 사람들이여.

20세기 중반, 파리의 남녀들의 사랑 얘기는 현기증이 나도록 얽혀 있었고, 그 속내 또한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그중 순수한 사랑을 한 것은 에두아르이지만,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순수한 사랑은 간혹 방향을 잃고 상처를 받게 되기에 잘 하는 일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조제처럼 마음가는 대로 사랑을 시작하는 것은 감정에 충실한 것이긴 하더라도, 니콜과 같이 연결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견딜 수 없는 아픔을 주는 결과를 가져와 역시 잘 한다고 할 수가 없다.

이들의 사랑 앞에서 무엇이 가장 바람직한 사랑인가 생각해 보다가 사랑은 흑백의 장단점이 있는 골칫덩이이자 이성을 마비시키는 묘약이라서,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을 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 뿐이니, 정작 사랑을 돌아보고 판단해야 할, 사랑 중에 있는 사람은 그럴 능력도 힘도 없다는 아이러니에 빠진다.

사랑을 찬미하는 온갖 시구들과 창작물들을 보면 사랑의 에너지는 대단하다. 그러고 보니 인류의 생육과 보존도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사랑을 연구하는 골치아픈 작업은 이만 끝내고, 그들을 이해하기로 하자.
지금 내 눈에 급해보이는 것은 사랑 연구보다는 밀린 청소와 설거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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