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후, 일 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연애, 사랑...
이런 것들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고 삶의 활력과 기쁨의 전부였던 때도 있었지만, 시간은 흘러가며 이런 마음을 서서히 변화시킨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는...그래서 나보다 그 또는 그녀를 사랑하는 희생적인 사랑은 원래의 순수한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신을 병들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씁쓸한 깨달음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에로스라 불리는 남녀간의 사랑은 가치면에서 오래전의 화려한 왕좌를 내주고 서서히 추락한다. 이제는 남녀간의 사랑보다 다른 사랑이 한차원 위에 있다는 것을 믿는다. 가족간의 사랑, 모성애, 또는 인류애, 봉사정신 등등...

20대 초반, 친구가 말했다. "난 존경할 수 있는 남편과 결혼할 거야."
그땐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웬 존경? 사랑이면 되지.'
그러나, 이젠 그 친구 참 똑똑했다는 생각을 한다. 이성으로서 끌리는 사랑보다 존경심을 갖고 우러러볼 수 있는 사랑이 더 커보이는 것은 한때의 열정보다 인간 자체에 대한 인정과 신뢰가 밥을 오다지게 꽉꽉 채워담을 수 있는 넓직한 그릇처럼 우리 마음도 더 풍족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연애소설을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지만, 프랑수아즈 사강이기 때문에 이 책에 관심을 가졌다.
그녀의 작품에 대한 호감도보다 개인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고 할까? 그녀의 작품 속에서 사랑은 어떻게 표현될까 하는.

부유한 집안의 조제는 자유분방하면서도 열정을 갖고 있는 여성으로, 유부남 베르나르와 사귀다가 연하의 의대생 자크를 사귄다. 베르나르는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아내 니콜을 두고도 조제에게로 향하는 마음을 돌리지 못해 방황한다.
출판사에 다니는 오십대의 남자 알랭 말리그라스는 베아트리스라는 아름답고도 난폭한 여배우를 사랑하고, 그의 조카인 에두아르 또한 베아트리스를 맹목적으로 사랑한다.
베르나르의 아내 니콜은 글을 쓴다는 핑계로 오랫동안 떠나있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외롭게 유산을 했고, 알랭의 부인 파니는 남편의 바람을 알고 초최하게 말라가면서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상황을 좋게 만들려 애쓴다.

사랑은 나이에 관계없이 다가오고, 그 대상은 일정하지 않다. 아름다운 외모의 아가씨일수도 있고, 진정한 사랑보다 야망에 사로잡힌 화려한 여성일 수도 있으며, 유부남일 수도 있고, 연하의 대학생일 수도 있다. 그리고, 오로지 함께 사는 남편 외에 다른 사람은 사랑할 수 없을 수도 있으며, 때로는 습관화된 정으로 바뀌어져 자신의 소유가 아니면 안되는 불안감의 존재일 수도 있다.
그들은 한 달 후, 일 년 후 지금의 사랑이 계속되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래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현재는 사랑이 움직이는 대로 놔둘 수밖에 없어 미래를 불안해하면서도 사랑 속에 갇혀 있다.

'당신들 왜 그러고 있어요?' 라고 외치고 싶었다.
지금 진정 목매며 그리워하는 대상을 한 달 후, 일 년 후에는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 앞에서 휘청대는 사람들이여.

20세기 중반, 파리의 남녀들의 사랑 얘기는 현기증이 나도록 얽혀 있었고, 그 속내 또한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그중 순수한 사랑을 한 것은 에두아르이지만,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순수한 사랑은 간혹 방향을 잃고 상처를 받게 되기에 잘 하는 일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조제처럼 마음가는 대로 사랑을 시작하는 것은 감정에 충실한 것이긴 하더라도, 니콜과 같이 연결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견딜 수 없는 아픔을 주는 결과를 가져와 역시 잘 한다고 할 수가 없다.

이들의 사랑 앞에서 무엇이 가장 바람직한 사랑인가 생각해 보다가 사랑은 흑백의 장단점이 있는 골칫덩이이자 이성을 마비시키는 묘약이라서,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을 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 뿐이니, 정작 사랑을 돌아보고 판단해야 할, 사랑 중에 있는 사람은 그럴 능력도 힘도 없다는 아이러니에 빠진다.

사랑을 찬미하는 온갖 시구들과 창작물들을 보면 사랑의 에너지는 대단하다. 그러고 보니 인류의 생육과 보존도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사랑을 연구하는 골치아픈 작업은 이만 끝내고, 그들을 이해하기로 하자.
지금 내 눈에 급해보이는 것은 사랑 연구보다는 밀린 청소와 설거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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