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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상의 혼 1
주슈하이 지음, 하진이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총 3권으로 이루어진 '거상의 혼'은 청나라 말의 혼란한 시기에 몰락할 위기에 처했던 교가 집안을 당당하게 일으킨 상인 교치용의 일대기를 다루었다.
교치용, 그는 상인이지만 높은 기상을 가진 사람이다. 정치가이되 정치가답지 않은 사람, 높은 직위에 있으나 그 직위에 걸맞지 않은 사람이 허다한 것에 비해서, 교치용은 상인이되 그 마음은 고관대작과 황제의 기상을 넘어설 정도로 크다. 일반 사람들이 상인을 생각할 때 언뜻 생각하는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이란 말은 교치용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장발적의 난으로 막힌 비단길과 찻길을 목숨을 바칠 각오로 뚫어 판로가 막힌 농민들의 살길을 열어주고, 더 나아가 어음을 유통시키며 전국적인 근대 은행체계를 갖추어 모든 상인들이 보다 편리하게 상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한 사람이다.
또한, 근대적인 사고방식으로 점원에게까지 이익배당을 나눠주고, 나이와 경력보다는 능력 우선으로 인사이동을 하는 등 상업계의 구태의연한 관행을 뒤집는다. 다른 상인들의 반발을 사면서도 아랑곳없이 밀고 나간 것은 그가 돈을 벌려는 이유에서 장사를 한 것이 아니라, 사나이의 기상으로 세상을 의롭게 하고자 하는, 보다 더 높은 뜻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비스에 있어서도 고객이 우선이라는 정신 하에 거짓없는 상술을 펼쳤다. 자신의 가게의 분점에서 고가의 아마인유에 재고가 많던 목화씨씨기름을 몰래 넣어 팔아온 것을 발견하자, 사과문과 함께 아마인유를 원가의 십분의 일에 팔도록 하는 파격적인 행위를 함으로써 교가의 이미지를 높인다.
또 하나의 재미는 풍지박산되었던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어릴 때부터의 사랑이었던 설영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부잣집 딸인 육옥함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애정과 배신에 관한 이야기이다. 해맑았던 설영이 변해가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은 사람을 파괴시키는 증오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고, 생각보다 현명하고 바르게 처신했던 육옥함의 슬기로움은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중반을 달려가면서 조금 어색했던 부분은 제갈공명이라고 불릴 정도로 머리를 잘 쓰며 똑똑했던 손무재가 변해가는 과정이 급박하게 진행되었던 점이다. 그는 꽤 호감가는 인물로 그려졌었는데, 중반부터 교가의 재산을 탐하며 교치용의 형수를 이용하려는 치졸한 모습을 보인다. 사람은 언제라도 변할수 있는 것이긴 하나, 그 갑작스러운 변화가 줄거리 전개 때문으로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나비를 쫓아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장자의 마음을 지닌 교치용은 그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넓은 대륙을 오가며 차 판매 길을 개척하고 근대 은행 시스템을 갖추는 위업을 달성했다. 시련과 역경을 거쳐 오면서도 한평생 후회없을 듯한 삶을 산 교치용의 정신은 오늘날 상도의 기본 마음가짐으로 삼아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앞서나갔다. 교치용의 삶의 족적을 따라가면서 그의 사랑에 아파하고 그의 업적에 찬사를 보내다보니, 오늘날 '나'의 모습은 어떠한지 되돌아보게 된다.
tip : 교치용이 살았던 저택 교가대원은 313개의 방을 가진 웅장한 건축물로 장이모 감독의 '홍등'도 이곳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다음에 '홍등'을 볼 기회가 생긴다면 유심히 살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