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18분 TED처럼 소통하라
이민영 지음 / 비즈니스맵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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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얼마전에 누가 나더러 재미있고 감동적인 강의라고 들어보라고 하며 카카오톡으로 보내주었다. 아버지의 가족에 대한 사랑에 대한 강의였는데 본인의 경험담을 얘기해주는데 마치 개그맨처럼 웃겨서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여러차례 웃었다. 나도 듣고 있으면서 어떻게 저렇게 재미나게 말을 할 수 있을까 놀라웠다. 개그맨처럼 몸으로 웃기거나 말을 유창하게 잘하는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었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재미나게 풀어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졸거나 딴청 피우지 않고 강연에 집중할 수 있었다. 강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단 하나 무뚝뚝한 아버지의 가족사랑 표현 방식이었다. 어머니로 부터 항상 핀찬만 듣고 가족들을 돌보지 않던 아버지였지만 마음만은 항상 가족을 생각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아버지의 표현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의사소통 방식도 많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중 하나라 TED가 아닐까 싶다.

 

  신제품이 출시된다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데 기업의 CEO라는 사람이 정장이 아닌 청바지에 터틀넥 셔츠를 입고 등장하더니 서류가방에서 아이패드를 꺼내는 깜짝 쇼를 보여준다.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우리는 독창적이라며 열광한다. 그리고 프리젠테이션을 할때 무조건 정장을 입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 언제쯤 깨질까라며 걱정아닌 걱정을 하기도 한다. 사실 신제품 출시나 제안 발표를 하기 위해 프리젠테이션을 할때 빔 프로젝트와 노트북 외의 장치를 사용하는 것은 반칙이나 혹은 정신나간 짓이라고 오인받기 좋다. 발표자 뿐 아니라 청중들도 그런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꼭 프리젠테이션이나 강연 뿐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TED가 필요할 때도 있다. 남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말을 하고 때로는 행동을 섞어서 소위 말하는 바디랭귀지로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적절하게 잘 활용한다면 아주 효과적일 수도 있다. 반대로 말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소통이란 한 방향이 아닌 양방향인 것이다. 기브앤 테이크 인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설득하기 위해 말을 한다면 필요에 의해 당신의 의견에 적극 찬성합니라고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이러이러한 이유로 반대라고 말하고 역으로 상대를 설득시킬 수도 있어야 한다. 믿도 끝도 없이 들이대면 납득이 가지 않겠지만 충분한 Back Data를 바탕으로 때로는 솔직하게 때로는 감정을 억누르며 이야기를 전개해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적절한 유머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하며 진솔되게 이야기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예전에는 영업사원이라고 하면 물건에 대한 장점에 대해 주저리 주저리 숨쉬지 않고 유창하게 늘어놓은 것이 좋은 판매전략이었다면 지금은 오히려 약간 어눌해보이지만 인간적으로 믿음이 갈 수 있게 진실되게 말하는 사람이 더 훌륭한 영업사원으로 평가받는다. 자신도 모르게 TED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TED란 평범한 사람을 명 강사로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달변으로 만들어주는 기법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런 방법에 대해 가이드를 해주는 것이다. 그런 방법론을 터득하고 실제로 활용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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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메이드 아이스바 - 색소 첨가물 없는
박지영 지음 / 청출판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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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지나고 물놀이와 휴가의 계절 여름이 돌아왔다. 올해는 작년보다 일찍 찾아온 더위에 작년보다 일찍 선풍기를 찾게 되었지만 전력 대란에 대비해 회사에서도 실내 온도를 작년보다 높게 하도록 정부에서 권장을 하고 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더울때 더운대로 지내는 것도 건강을 위해 나름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더운 것은 어쩔수가 없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찾게 되는 것은 아이나 어른이나 공통인 것 같다. 근데 시중에 파는 아이스크림을 보면 색소니 첨가물이니 하는 것을 떠나 저 엄청난 칼로리가 내 뱃속으로 들어가면 모두 나의 살이 될 것을 생각하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 밖에 없다. 2년전에 집에서 팥빙수 만들어 먹으려고 제조기를 샀는데 만들기가 번거로워 제대로 활용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팥빙수는 한번에 많이 만들어야 하고 한번 만들어 모두 먹어치워야만 한다. 아이스크림 처럼 냉동실에 얼려두었다가 두고두고 먹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예전의 기억을 되살려 우유와 계란, 얼음을 이용하여 아이스크림 만들기를 시도하였다. 사실 아이스크림이라기보다 얼린 우유라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락앤락 큰 통에 가득 담아 냉동실에 두고두고 한달을 먹었다. 아이스크림이라기보다 얼린 우유였기에 먹는 것도 어렵고 엄청난 인내를 요했다. 아이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조르고...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홈메이드 아이스바] 만들기.

 

  게다가 재료도 마트에서 아이스크림 구입하는 것 만큼 쉽게 구할 수 있다. 팥빙수 만들어 먹으려고 냉장고에 층층이 쌓여있는 연유, 코코아에 타서 먹는 우유, 건강을 생각하여 항상 비치해두는 꿀, 마트에서 5+5해서 파는 요플레, 치매 예방에 좋다고 해서 식탁위에 올려놓고 먹는 견과류 등등 모두가 훌륭한 재료들이다. 이러한 재료들을 이용하여 집에서 간편하게 여러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아이들에게 과자나 아이스크림 대신 과일과 야채를 먹어라고 얘기하지만 항상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졸라대는 아이들을 어떻게 설득시킬까는 이제 필요하지 않는 것 같다.

 

  아이스크림 만드는 자세한 방법은 책에 나와 있고 우리 아이들이랑 아이스크림 만드는 장면. 집사람이 요리배운다고 계량컵은 이것저것 장만한게 있어 황금비율을 맞추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졸라대는 아이들에게 가장 가혹한 고문은 바로 '밥먹고 사줄께'이다. 근데 집에서 만다는 아이스바는 그런 고민을 훌훌 털어 주었다. 준비를 하고 냉동실에 넣고 8시간은 얼려야 하니 아이들은 싫으나 좋으나 아이스크림을 먹기위해서는 8시간을 기다려야만 한다. 그동안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 엄마는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이 만들어 질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며 아이들이 밥 먹기를 기다린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나서 만들어진 메이드인 우리집 아이스바. 연유로 만든 아이스바는 날씨가 더우니 잘 흘러내려서 아이들이 손을 받치고 먹어야만 했다. 연달아서 요플레로 만든 아이스바는 단가가 조금 비싼게 흠이지만 맛도 좋고 흘러내리지 않아 훨씬 먹기가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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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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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사람에게도 그 평범함을 돌파하는 길이 있다. 자기 능력의 한계를 냉철하게 따져보고, 자기
혼자 모든 일을 하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했을 때 그 길이 열린다.

 

  세상에는 다른 사람에게 권해야 할지 권하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게 되는 일이 세가지 있다. 첫째가 결혼, 둘째가 전쟁, 그리고 셋째는 성지순례다.
- 본문 중에서-

 

 

  십자군 이야기 1권에 이어 2권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프로젝트 지원하느라 야근에 시달리는 나에게 재미를 주었다. 소설도 아니면서 더 흥미롭고 나를 책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우리는 십자군 원정이 처음에는 성지 예루 살렘을 회복하였지만 점차 타락되어 갔고 원래의 취지를 잃었다고 배웠다. 그 이상은 알 필요도 없었다. 십자군과 이슬람군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든 공격하는 십자가를 초생달이 어떻게 반격을 했는지 궁금해하는 것은 사치였으니 말이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힘의 균형은 항상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느꼈다. 간혹 영웅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한쪽이 너무 강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리기도 했다. 십자군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나보다. 1차 원정때에는 애송이라고 불리던 인물들까지도 빼어난 기량을 발휘했기에 쉽사리 예수살렘을 해방시키고 십자군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지만 1권에 나왔던 인물들이 사라져갈 무렵 이슬람 세계 쪽으로 힘의 균형이 서서히 기울어져가고 있었다. 누레딘과 살라딘이라는 영웅이 등장하였음에도 지도를 원상태로 돌리지는 못했다. 오리엔트 세계의 특징이었는지 아니면 겉으로 보기에는 이슬람교라는 같은 종교이지만 수니파와 시아파로 서로 대립하고 있었기에 반드시 이슬람과 그리스도의 전쟁만은 아니었다. 이슬람과 그리스도교 그리고 유대교도 따지고 보면 그 뿌리는 하나이지 않는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유일신으로 모신다는 것. 하지만 그 해석에 있어 각기 다르기에 서로 이교도로고 부르고 있는 것이니...우리 인류도 원래 조상은 하나인데 여러 인종과 민족으로 나뉜것과 같은 이치인지도 모르겠다.

 

  뛰어난 인물들도 사라지고 Home을 떠나 Away에서 만성적인 병력 부족으로 수세에 몰렸음에도 꿋꿋이 버틴 것을 보면 참 대단하다. 아무리 중무장한 기병을 보유하였다고 하지만 인해전술로 밀어 붙이는 이슬람을 소수 정예로 잘 막아낸 것을 보면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나보다. 중학교 영어 시간에 배웠던 마라톤의 기원에서도 대규모로 몰려오는 페르시아군을 소수의 그리스 군이 막아내었고  알렉산더 대왕도 많지 않은 병력으로 오리엔트를 정복하지 않았던가? 로마를 쑥대 밭으로 만들었던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이나 후세의 나폴레옹의 경우 처럼 전쟁을 밥 먹듯이 해와서인지 그런 전략 전술에 강한가 보다. 그와 달리 오리엔트 세계는 주로 집안 싸움이나 반역등에 강했기에 근대에 들어와서는 서양에 밀려 식민통치를 받는 신세로 전략하였던 것일까?

 

  현재는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영토이지만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어 왔다. 이슬람교, 유대교, 그리스도교 모두에게 중요한 곳인데 로마인 이야기에서 저자가 말했듯이 유일신을 믿는 이 세 종파는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기에 대립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리스나 로마 신화에는 여러 신들이 등장하는데 유일신을 믿지 않고 신화처럼 다신교를 믿었더라면 이런 전쟁이 발발하였을까 상상도 해보았다. 그런데 아마 어떤 형태로도 전쟁은 일어났을 것 같다. 인간이란 원래 욕심이 많아 하나라도 더 갖고 싶고 그래서 남을 것을 빼앗지 않은가? 그것도 하늘의 뜻이라거나 신이 바라시다라는 것으로 그럴싸하게 포장을 잘해서 말이다. 많은 사료들을 참고하고 박식한 저자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서슴없이 풀어나가는데 어떤 대목에서는 분명히 역사적 사실을 밝히기도 하고 작가의 상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독자들도 소설과 같은 흥미를 느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역사적 사실 뿐 아니라 인간의 심리까지 정확하게 묘사하였기에 2권을 덮음과 동시에 3권을 다시 펼칠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십자군 시대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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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간적인 인간
브라이언 크리스찬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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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때 선생님이 이런 질문을 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차이점은 무엇인가?' 여러가지 대답들이 나왔다. 동물들과 달리 도구를 사용한다. 감정을 표현할 줄 안다. 언어로서 의사소통을 한다. 생각를 하며 산다. 등등...진화론을 배웠고 생태학을 공부하고 난 지금 생각해보면 많은 대답들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침팬지들도 간단한 도구를 사용할 줄 알고 분노, 두려움, 기쁨 등을 표현할 줄 안다. 또한 다양한 언어가 아니지만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생각? 근데 생각은 어떨까? 요즘 유행하는 말중 하나가 '생각 생각 생각 좀 하고 말해'인데 과연 이 생각이란게 뭘까? 이 생각이란 것으로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할 수 있을까?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남들에게 해를 끼치는 줄도 모르고 생각없이 말하는 부류들이 있게 마련인데 그렇다면 인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컴퓨터가 발달하여 수많은 경우의 수를 기록하고 있다가 필요에 의해 이런 저런 방식으로 사람과 대결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것도 생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얼마전에 아이폰에 새로운 앱을 장착하였는데 말그대로 인공지능이다. 사람이 뭐라고 말을 하면 적절한 대답을 하는 것이다. 혁신이라고 우리는 부르는 것이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이제 기계에 까지 심어준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이렇게 기계들에게 많은 기억들을 심어준다고 해서 영화에서 처럼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날이 올까? 어짜피 기계를 만드는 것도 인간이고 기계에 기록을 심어주는 것도 인간의 역할이니 우리가 악당이라 부르는 인간들이 기계를 조작해서 인류를 파멸시키려고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생각한다. 사람은 생각을 하고 사실을 자신만의 기억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기계들은 이를 기억이라 부르지 않고 기록이라 불리는 정보로 저장하는 것이다. 인간의 기억과 가장 큰 차이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과 인공지능과 가장 차별화되는 점이 아니겠는가? 지금 밖에는 104년만의 최악의 가뭄을 해결하려는 단비가 일기예보와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내리고 있다. 슈퍼컴퓨터를 이용하여 계산을 하여 일기 예보도 예전보다 정확히 해주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계산을 빠르게 해주는 것이지 정확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가? 오랜 경험에 의해 달무리나 별의 빛나는 정도를 알고 혹은 허리가 쑤시는 것을 보고 날씨를 예보한다. 오히려 정확할 때도 많다. 그렇다면 인간도 결코 기계에 뒤지지 않는 계산 능력을 가진 것이다.

 

  가끔씩 나는 헷갈릴 때가 많다. 가장 인간적인 사람과 가장 완벽한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매력적인가? 혹은 우리가 바라는 이상형인가하고 말이다. 인간적이라 함은 보통 정에 이끌려서 매몰차게 하지 못하는 감성에 치우친 반면 완벽한 사람이라 함은 아무래도 이성적인 면에 더 치중할 것이다. 어느쪽이 더 인간에 가까운 것인지는 사실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인간적인 인간이라 함은 인가의 특징을 그대로 지니고 있으면서 생각도 할 줄 알고 감정도 느끼는 사람일 것이다. 생각을 한다는 것은 사고를 한다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남을 배려한다는 것도 포함되지 않을까? 그래서 가장 인간적인 필요는 없어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인간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 주위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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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 북미 최후의 인디언이 천 년을 넘어 전한 마지막 지혜
위베르 망시옹.스테파니 벨랑제 지음, 권지현 옮김 / 흐름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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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겠다고 말하는 친구들은 모두 돈만 밝히는 속물로 보였다. 나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남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또한 자연과 어울려 살고 싶었는데 이런 나를 보고 친구와 선배들은 '너는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라고 핀찬을 주었다. 그런 나도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가진 후에는 똑같이 돈을 밝히는 속물이 되어 버린 느낌이 들었다. 물질 만능인 사회에 살고 있으며 돈만 있으면 핵전쟁이 일어나가나 운석 충돌 등으로 인류가 멸망하는 한이 있어도 살아 남으리라 생각한다. 지하 깊은 곳에 벙커를 만들고 극지방에 거대한 창고를 만들어 씨앗을 보관했다가 나중에 활용하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자연과 어울려 살기보다 어떻게는 돈으로 살아남으려는 것인데 혼자서 살아 남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은...

 

  가끔씩 생각을 해본다. 투자를 잘하여 돈을 벌게된다면 그 다음에는 큰 집을 장만하고 또 그 다음에는 무엇이 기다리는가? 멋지게 은퇴하고 여유있게 살 수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도 많은 돈은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충분히 행복하고 여유있게 살고 있지는 않은가? 뒤는 생각지도 않고 현실에만 급급해서 나만 잘 살겠다는 것이 결국은 우리 모두 자멸하는 길인지도 모르고 달려가는 인간들이 더 어리석은것 같다. 공장을 짓기 위해 마구잡이로 벌목을 하고 개간을 하지만 원자재가 있어야 생산을 하고 인간들도 농사를 지어 밥을 먹어야 살 수 있고 공기중에 산소가 20%는 되어야 제대로 호흡을 할 수 있는데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런 평범한 진리를 잊고 지내는 것 같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발견했다고 역사책에서 배웠지만 그 이전에 중국인들이 배를 타고 자유로게 왕래했다고는 하지만 훨씬 이전에 인디언들이 이미 살고 있었다. 자연과 어울어져 함께 공존하고 있었는데 침입자들이 나타나서 인디언들을 한쪽 구석으로 내몰고 차지해버렸다. 자연과 어울어져 살았기에 백인들이 가지고 온 질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는데 이방인들에게 옥수수와 같은 농작물 재배법을 가르치고 금과 같은 귀금속의 존재를 알려준 결과가 자신을 파멸로 이끌어버린 것이다. 지금에 와서 우리가 이런 인디언들을 보면 그렇게 쉽게 속아 넘어 갈 수 있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연과 어울려서 사는 지혜를 발휘했기에 질병이란 모르고 살았으며 소유니 정복이니 하는 것은 사전에도 없는 단어였을 것이다. 자연은 인간이 관여하지 않으면 스스로 회복을 하고 또 인간이 원하는 모든 것을 제공할 의향이 있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이용하는 인간들이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 공존 대신 소유를 택한 결과 경쟁이라는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이다. 어쩌면 가장 순진해보이는 인디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인디언들 뿐 아니라 우리 선조들도 그러햇을 것이다. 좁고 불편한 길을 넓히면 훨씬 편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짐을 운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공존해야 우리도 영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은 우리가 파괴하더라도 우리를 파멸시키지는 않는다는 것을. 다만 인류가 스스로 그 길을 택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언제쯤 알게 될까? 아마도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나 알 수 있지 않을까? 조금만 덜 욕심을 냈더라면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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