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범죄실록 - 조선을 뒤흔든 범죄, 수사, 재판 이야기
정명섭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범죄는 한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자, 인간의 본성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엄격한 유교 질서와 성리학적 명분에 가려져 있던 조선 시대의 입체적인 민낯을 범죄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게 해준다. 책 속에는 도박, 살인, 대리 시험, 조직폭력배, 납치와 유괴 등 현대 사회에서도 익숙하게 들려오는 다양한 범죄 사건들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수백 년이라는 시간적 격차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발생했던 수많은 사건·사고는 오늘날의 뉴스면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다가온 사실은, 시대와 제도가 아무리 변해도 통제되지 않는 인간의 욕망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 많은 부와 권력을 가지려는 탐욕, 순간의 격정을 참지 못한 분노, 신분적 한계를 뛰어넘으려다 벌어지는 비극은 예나 지금이나 수많은 범죄자를 양산해냈다. 일부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죄를 저질렀고, 또 누군가는 사회적 모순과 가난 속에서 본의 아니게 범법자의 길로 들어섰다.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과거 조선의 사법·치안 체계와 현대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 조직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비교해 보게 만든 점이다. 과학 수사 기법이 전무했던 조선 시대에는 주로 정황증거와 고문, 제보에 의존해 범인을 추적했다. 이로 인해 엄격한 신분제적 한계와 한심할 정도의 수사적 허점이 결합하면서 수많은 무고한 이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희생되기도 했다. 현대인으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비극과 억울함이 일상처럼 벌어졌던 셈이다. 조선의 법의학서가 활용되었다고는 하나, 과학적 기술과 엄격한 적법 절차를 갖춘 현대 시스템과의 격차는 매우 컸다.

이러한 과거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나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치안과 안전의 가치를 다시금 새기게 된다. 수많은 시민이 납부하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현대의 경찰 조직과 공공 치안 시스템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역사의 비극을 거쳐 발전해 왔다. 밤거리를 비교적 안전하게 걸을 수 있고, 법적 절차에 따라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으며 수사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치안 현장에서 묵묵히 땀 흘리는 경찰관들의 노고와 사회 안전망 구축을 위한 비용이 합쳐져 비로소 유지되는 소중한 결실이다.

단순히 과거의 자극적인 사건들을 재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범죄를 매개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회 시스템의 중요성을 깊이 있게 반성하게 해준다. 신분제와 한계 상황 속에서 무력하게 마주해야 했던 조선 민중의 비극적 삶을 추적하는 동안, 시공간을 초월해 작동하는 인간의 야만성과 이를 통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인간의 변하지 않는 욕망에 대한 쓸쓸한 기록이자, 안전하고 공정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어떤 제도와 노력을 지켜나가야 하는지 일깨워주는 뜻깊은 역사 보고서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에 보이지 않는 국경의 지도책 - 국제 정세의 흐름을 읽는 데이터 지리학
델핀 파팽.브뤼노 테르트레.세마르탱 라보르드 지음, 이수진 옮김 / 윌북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지도 위 국경선들이 제국주의의 탐욕과 정치적 타협으로 그어진 인위적인 결과물임을 데이터를 통해 폭로한다. 관광 수익을 위해 방치된 기형적인 월경지의 이면을 살피며, 오늘날의 국경이 안전을 위한 울타리인지 혹은 새로운 분쟁의 씨앗인지에 대한 묵직하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표지 문구처럼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왔던 지도 위의 선, 즉 국경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데이터 지리학 서적이며 역시나 책을 읽고 나니 늘 보던 세계 지도가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학창 시절 사회나 지리 시간에 무심코 외웠던 세계 지도 속 국경선들은 마치 태초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자연의 섭리처럼 보이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그것이 철저히 인위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인 역사의 산물임을 깨닫게 된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대체 국경은 누가 이렇게 마음대로 정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산맥이나 강 같은 거대한 자연적 지형을 경계로 삼은 곳도 존재하지만, 아프리카나 중동의 지도처럼 자를 대고 반듯하게 그은 듯한 인위적인 직선 국경들은 제국주의 열강들의 이권 다툼과 식민 지배가 남긴 뼈아픈 흉터다. 그들은 그 땅에 뿌리내리고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고유한 문화, 종교, 민족적 배경은 철저히 무시한 채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탁상공론 식으로 마음대로 선을 그었다. 그 오만한 펜대 놀림은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유혈 사태와 영토 분쟁의 멈추지 않는 원인이 되고 있다. 북위 38도 선으로 분단되었던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일것이다.

특히 흥미로우면서도 무척 생소했던 부분은 '월경지(Exclave)'에 대한 이야기였다. 월경지란 특정 국가의 영토지만 다른 나라의 영토에 완전히 둘러싸여 섬처럼 뚝 떨어져 있는 기형적인 땅을 말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행정적, 군사적으로 관리하기가 매우 불편하고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주변국과 서로 영토를 교환하거나 병합하여 국경을 단순화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월경지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지되는 기막힌 이유는 정치적 자존심이나 해묵은 역사적 앙금 때문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독특한 지리적 형태를 무기 삼아 관광객 유치라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이고 경제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복잡한 국경을 굳이 방치하고 심지어 즐긴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인간의 탐욕과 실용주의가 빚어낸 한 편의 블랙코미디 같은 현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국경의 모순을 마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묵직한 질문 하나에 도달하게 된다. '과연 국경은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인가, 아니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또 다른 분쟁의 씨앗인가?' 과거 세계화 시대가 도래하며 국경의 의미가 점차 희미해질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지배적이었지만, 작금의 현실은 정반대의 길로 흘러가고 있다. 난민 문제, 감염병의 전 지구적 확산, 희소 자원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각국은 오히려 물리적 장벽을 더 높게 쌓아 올리고 국경 통제를 매섭게 강화하고 있다. 자국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국경을 폐쇄적으로 운용할수록, 역설적으로 그 경계선 주변에서는 배타적 민족주의가 싹트며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결국 저자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영토의 구획 정보가 아니다. 다채로운 시각 자료와 데이터를 통해 그어진 선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의 이기심, 권력의 작동 방식, 그리고 세계 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입체적으로 조망하게 해 준다. 우리는 국경이라는 단단한 선에 갇혀 타인을 우리와 그들로 너무도 쉽게 구분해 온 것은 아닐까. 단절과 혐오의 벽이 아닌, 소통과 공존을 위한 경계로서 국경을 재정의할 수 있을지 깊은 고민을 안겨준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한 차원 넓혀주는 훌륭한 나침반 같은 책이다.

#눈에보이지않는국경의지도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 - 지친 영혼을 위한 동심 처방 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 적 우리는 동화 속 인물들의 일탈과 모험에 가슴을 졸이며 책장을 넘겼다. 짝짝이 스타킹을 신은 채 말 한 마리를 번쩍 들고 자유분방하게 들판을 누비던 말광량이 삐삐를 보며 마음속 깊이 엉뚱함과 자유를 동경했고,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던 피노키오의 방황과 시련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 시절 동화는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였고, 잠들기 전 들려오는 신비로운 옛날이야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회의 틀과 책임이라는 무게를 짊어진 어른이 되어 다시 펼쳐본 동화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지친 어른들의 영혼에 나지막한 위로를 건네는 책이라 생각한다.

어릴 때 보았던 동화의 주인공들은 단지 이상하고 재미있는 캐릭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수많은 규칙과 타인의 시선 속에서 살아가는 어른의 눈으로 바라본 그들은, 사실 우리가 은연중에 열망하고 갈망하던 가장 순수한 자아의 형태였다.사회가 정해놓은 질서와 격식에 매이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삐삐의 모습은, 매일 톱니바퀴 같은 일상을 버텨내는 현대인들에게 묵직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유혹에 넘어지고 방황하는 피노키오의 여정은, 완벽하지 못한 채 매번 시행착오를 겪으며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삶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작가는 이처럼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동화 이야기를 현실의 삶과 촘촘히 연결 짓는다. 그저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만 치부했던 인물들의 행보 속에서 어른이 된 우리가 잊고 지낸 가치—자유, 진정성, 그리고 실수를 포용하는 용기—를 찾아내어 잔잔하게 일깨워준다.

책의 표지에 적힌 지친 영혼을 위한 동심 처방이라는 문구처럼, 이 책은 쉼 없이 달려오느라 마음에 과부하가 걸린 이들에게 따뜻한 쉼터를 제공한다. 어른의 세계에서는 감정을 숨기는 것이 미덕이 되고, 상처를 받아도 아무렇지 않은 척 털어내야만 한다. 하지만 저자는 동화라는 가장 무해하고 따스한 창구를 통해 우리가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외로움과 불안, 상처를 가만히 어루만져준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동화가 단순히 재미였다면, 지금 읽는 동화는 나를 되돌아보는 거울이자 마음을 치유하는 처방전이다. 어릴 적 꿈꾸었던 자유로운 삶에 대한 동경이 단지 아련한 추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다정한 응원이 되어 다가온다.

[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는 복잡하고 거창한 삶의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가장 쉽고 단순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잊고 살았던 본질적인 질문들을 건넨다. '나는 지금 참된 나의 모습 혹은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삐삐처럼 조금은 엉뚱해도, 피노키오처럼 조금은 넘어져도 괜찮지 않은가?'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마음이 사막처럼 건조해졌을 때, 혹은 어릴 적 보았던 주인공들의 자유로움이 문득 그리워질 때 책장을 넘겨보길 권한다. 잊고 있던 동심의 처방전을 통해 당신의 지친 영혼도 따뜻한 위로와 가벼워진 마음을 되찾게 될 것이다.
#어쩌면동화는어른을위한 것2 #리텍콘텐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I 반도체 구조 교과서 - 한 권으로 이해하는 인공지능 반도체의 밸류 체인과 미래 기술 지적생활자를 위한 교과서 시리즈
세렌딥 지음 / 보누스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공지능 산업의 급격한 팽창과 함께 AI 반도체는 기술 생태계와 글로벌 시장을 흔드는 가장 뜨거운 화두가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HBM, NPU, CUDA, 데이터센터에 이르기까지 AI 산업 생태계를 지탱하는 핵심 개념과 밸류체인을 한 권으로 집대성하고자 기획된 책이라 생각한다. 제목에 '교과서'라는 단어가 명시된 만큼, AI 반도체의 물리적 아키텍처와 작동 메커니즘을 체계적으로 다루려는 저자의 의도가 돋보였다.

책은 단순히 반도체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이나 테마주 형태의 겉핥기식 정보에 그치지 않는다. 인공지능 연산을 처리하기 위해 왜 기존 CPU나 GPU만으로는 한계가 있는지,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신경망처리장치(NPU)가 어떤 방식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는지, 그리고 엔비디아 독주의 핵심인 쿠다(CUDA) 생태계가 데이터센터와 어떻게 연동되는지 그 내부 동작 원리를 밀도 있게 설명한다. 반도체 하드웨어 설계에서부터 소프트웨어 인프라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생태계의 톱니바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직접 읽어 내려가면서 느껴진 가장 솔직한 소회는 높은 진입장벽이었다. AI 반도체의 밀도 높은 작동 원리를 본격적으로 파헤치는 만큼, 입문자를 위한 친절한 다리 역할은 다소 부족했다. 특히 컴퓨터 구조나 빅데이터 처리 메커니즘, 데이터베이스 및 컴퓨팅 인프라에 대한 기본적인 바탕지식이 결여된 독자라면 페이지를 넘길수록 깊은 난해함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연산 처리 방식이나 데이터 병렬화, 메모리 병목 현상 등 핵심 개념들이 상당한 수준의 사전지식을 전제로 전개된다. 따라서 빅데이터 작동 원리나 기초적인 IT 인프라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가벼운 교양서로 생각하고 집어 들기에는 부담이 매우 크다. '교과서'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나, 이는 초등·중등 수준의 입문서가 아니라 전공 서적이나 실무자용 참고서에 가까운 난이도를 보인다. 기본 개념에 대한 이해 없이 접근했다가는 수많은 전문 용어의 홍수 속에서 전체적인 맥락을 놓치기 십상이다.

AI 산업의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밸류체인을 깊이 있게 통섭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밀도 높은 가이드를 제공하는 책인 것은 사실이다. 관련 분야의 엔지니어나 데이터 및 컴퓨터 공학적 지식을 갖춘 독자, 혹은 이미 반도체 관련 기본 개념을 숙지한 이들에게는 기술의 뼈대를 세우는 데 훌륭한 자산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기초 지식이 부재한 일반 독자나 입문자라면, 이 책을 바로 읽기보다는 빅데이터 및 컴퓨팅 아키텍처에 대한 기초 교양을 먼저 쌓은 후 도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준비된 독자에게만 비로소 진가를 드러내는, 명확한 호불호의 기술 서적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악 곤충 빌딩의 위기 제발돼라 놀라운 곤충 시리즈 2
김지균 지음, 이정수 그림, 제발돼라 원작 / 서울문화사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159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명 곤충 유튜버 ‘제발돼라’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학습 스토리북 [제발돼라 놀라운 곤충 시리즈 2권 - 최악 곤충 빌딩의 위기]는 표지부터 특이하다. 빌딩을 장악한 거대한 곤충들과 이에 맞서는 주인공의 역동적인 모습은 성인과 아이를 막론하고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곤충의 놀라운 능력과 생태계를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카피 문구는 일상에서 흔히 접하기 힘든 곤충들의 흥미진진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막상 책장을 넘겼을 때 마주한 결과물은 기대했던 방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이 책은 본질적으로 성인이나 깊이 있는 곤충의 생태를 원했던 고연령 독자층보다는 유아 및 초등학생을 명확한 타깃으로 삼고 있다. 곤충에 관한 깊고 흥미로운 서사를 기대한 독자에게는 내용의 깊이나 전개 방식이 지나치게 직관적이고 단순하게 다가온다. 특히 텍스트와 삽화가 결합한 '학습 스토리북' 형태를 취하고 있음에도, 차라리 몰입감이 높은 완전한 만화 형식으로 풀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곤충의 기괴하면서도 역동적인 움직임이나 빌딩이라는 한정된 공간이 주는 긴박감은 단순한 글과 삽화의 병치보다 만화적 연출 속에서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글과 그림이 유기적으로 융합되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을 주다 보니, 만화가 가진 시각적 직관성과 텍스트가 가진 깊이 중 어느 것도 온전히 잡지 못한 어정쩡한 포맷이 되었다.

가장 큰 몰입 방해 요소는 스토리와 과학적 지식의 어색한 결합이다. 곤충의 생태적 특징과 생태계에서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녹여내기보다는, 특정 곤충의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상황을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인상이 강하다. 빌딩을 장악한 곤충 지배자들과 맞선다는 극적인 설정에 비해, 위기를 탈출하거나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곤충의 특징이 소개되는 방식이 다소 어색하다.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 혹은 '설명을 위한 사건'이 반복되다 보니, 독자는 자연스러운 서사의 흐름에 올라타지 못하고 삐걱거리는 전개를 묵묵히 지켜봐야 한다.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겠다는 교육적 강박이 완성도를 망쳤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책이 가진 순기능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곤충을 무서워하거나 전혀 관심이 없던 유아 및 초등 저학년 아이들에게는 시각적인 자극과 쉬운 텍스트를 통해 생태계의 기초적인 개념을 심어주는 입문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다. 유튜브 채널 '제발돼라'의 팬인 어린이들이라면 친숙한 캐릭터와 감성 덕분에 가볍게 읽어 내려갈 만하다.

하지만 조금 더 밀도 높은 과학적 재미나 유기적인 서사 구조를 기대한 독자에게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선택이다. 지식 전달과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스토리가 성급하게 직조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음 시리즈가 이어진다면, 정보를 억지로 주입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만화적 연출과 탄탄한 인과관계를 통해 곤충의 매력을 더욱 유기적으로 보여주기를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