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세 김부장의 늦지 않은 연금 공부 - 은퇴 후 500만 원을 만드는 연금 포트폴리오
이영주.배한호 지음 / 원앤원북스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제목을 마주했을 때, 대한민국에서 '부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혹은 그 연배를 살아가며 가족을 건사해 온 50대 남성이라면 누구나 시선이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표지에 적힌 "은퇴 후 500만 원을 만드는 연금 포트폴리오"나 "서울 자가 김부장보다 더 당당하다!"라는 문구는, 평생 일에 파묻혀 살다 이제야 비로소 일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자신만의 여유를 찾으려는 우리 세대의 가장 현실적인 열망을 정확히 찌른다. 연금이라는 안전판이 있어야 마음 편히 취미도 즐기고 진정한 의미의 하프타임을 누릴 수 있다는 저자의 문제의식에는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현실의 묵직함보다는 다소 들뜬 낙관론이 불편하게 다가온다. 책이 묘사하는 은퇴 후의 삶은 지나치게 장밋빛이다. 50대 이후의 삶이란 단순히 직장을 떠나 여유롭게 취미를 즐기는 온화한 시간만은 아니다. 예기치 못한 건강의 적신호, 여전히 보살핌이 필요한 자녀들에 대한 지원 문제, 그리고 평생 몸담았던 조직을 떠난 뒤에 찾아오는 지독한 심리적 상실감 등 은퇴는 훨씬 복잡하고 서늘한 현실의 연속이다. 저자는 연금만 든든하게 준비되면 이 모든 노후의 파도를 유유자적하게 넘을 수 있을 것처럼 서술하지만, 이는 은퇴가 가진 다층적인 삶의 무게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미화한 감이 있다. 일선을 물러난 현실의 '김부장'들이 마주할 노후는 책 속의 긍정적인 묘사처럼 마냥 평화롭고 계산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의 가장 아쉬운 점은 연금이라는 제도 자체를 지나치게 맹신하고 찬양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알맹이를 놓치고 있다는 데 있다. 물론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으로 이어지는 3층 탑을 쌓는 것은 은퇴 준비의 기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물가 상승률이 가파르고 거시 경제의 불확실성이 큰 시대에, 단순히 연금 계좌를 개설하고 돈을 묶어두는 것만으로는 절대적인 노후의 방패가 될 수 없다. 독자들이 진정으로 목말라하는 것은 '연금이 좋다'는 당위성이 아니라, 그 제한된 연금 자산의 '수익률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높일 것인가' 하는 실전 전략이다. 연금저축펀드나 IRP 계좌 내에서 어떤 상품을 담아야 하는지, 상승장과 하락장에서 자산 배분을 어떻게 리밸런싱해야 하는지에 대한 치열하고 구체적인 '하우투(How-to)'가 턱없이 부족하다. 연금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데 지면의 대부분을 할애하다 보니, 정작 내 피 같은 돈을 어떻게 굴려야 인플레이션을 방어하고 실질적인 가치를 지켜낼 수 있는지에 대한 핵심 기어는 빠져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노후 준비에 손을 놓고 있던 4050 직장인들의 등짝을 때려 깨우는 훌륭한 알람시계의 역할은 충실히 해낸다. 당장 내 연금 계좌를 열어보고 점검하게 만드는 동기부여 측면에서는 분명 가치가 있다. 다만, 일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고 단단하고 고요한 두 번째 인생을 설계하려는 50대의 입장에서는 이 책의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하며 읽을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은퇴 준비의 출발선으로 삼되, 부족한 수익률 관리 전략이나 실전 투자법에 대해서는 더 냉철하고 전문적인 시각을 길러 스스로 빈칸을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 진정한 노후의 여유는 막연한 긍정이 아니라, 치밀하고 구체적인 전략 위에서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원앤원북스 #50세김부장의늦지않은연금공부 #연금 #노후준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험한 그림들 - 세계사를 바꾼 결정적 순간
이원율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소 역사의 흐름을 좇는 것을 즐기지만, 미술관에만 가면 왠지 모를 거리감을 느끼곤 했다. 화가의 의도나 미학적 기법을 알지 못하면 유명한 명화도 그저 '잘 그린 그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험한 그림들』은 나처럼 미술에 문외한이면서도 역사적 배경에 깊은 흥미를 느끼는 독자들에게 훌륭한 가이드북이 된다. 철저히 역사적 순서에 따라 서술되어 있다. 머릿속에 이미 자리 잡고 있던 고대부터 근현대까지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뼈대가 되어주니, 그 위에 그림이라는 살을 붙여 나가는 과정이 무척이나 자연스럽고 흥미로웠다. 파편화된 명화 감상이 아니라, 역사라는 큰 줄기 속에서 미술의 변천사를 읽어낼 수 있었다. 학창 시절 배웠던 미술의 변천사까지는 알 필요가 없었다.


책의 진가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감정과 시대의 비극을 탁월하게 묘사한다는 데 있다. 책 속에 수록된 '루이 16세와 국왕 가족의 체포'를 다룬 대목이 대표적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외로 도주하려다 바렌에서 붙잡힌 왕실 가족의 절망적인 순간이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생생하게 담겨 있다. 텍스트로만 읽었을 때는 그저 '실패한 도주극'으로 치부했던 사건이, 혁명군 앞에서 절망적으로 호소하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몸짓과 공포에 질려 우는 루이 샤를의 얼굴을 통해 핏기가 도는 생생한 비극으로 다가온다. 권력의 정점에서 하루아침에 단두대에 오를 운명으로 전락한 자들의 처절함이 캔버스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며 감탄했던 부분은, 화가의 내면을 상상하며 그림 속 비유와 상징을 섬세하게 해독해 내는 저자의 필력이다. 화가들은 서슬 퍼런 시대의 검열을 피하거나 자신만의 강렬한 메시지를 남기기 위해 그림 곳곳에 고도의 은유를 숨겨두었다. 저자는 마치 그 그림을 그리던 순간 화가의 옆에 서 있었던 것처럼, 그가 왜 이런 구도를 선택했는지, 인물들의 시선과 배치에 어떤 정치적·사회적 은유가 담겨 있는지를 한 편의 심리극처럼 풀어낸다. 절망에 빠진 루이 16세 일가를 극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한 화가의 붓끝에 역사의 비정한 수레바퀴를 바라보는 어떤 감정이 서려 있었을지, 저자의 상상력을 곁들인 친절한 서술 덕분에 비로소 그 깊은 의도를 읽어낼 수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가장 매혹적인 역사 수업을 받은 느낌이다. 책을 덮고 나니 미술품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역사를 아는 만큼 그림이 보이고, 그림 속 은유를 깊이 읽어낼수록 역사의 이면이 더욱 입체적으로 살아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미술은 결코 역사와 동떨어진 고상한 장식품이 아니라, 가장 당파적이고도 치열한 역사의 최전선이자 기록이었다. 건조한 활자로는 다 담아낼 수 없었던 시대의 광기와 슬픔, 인간의 숨겨진 욕망을 시각적으로 확인하고 싶은 역사 애호가들에게 이 책은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다. 역사라는 든든한 배경지식을 무기 삼아, 화가들이 남긴 은밀하고도 '위험한' 은유의 세계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 보길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요하고 단단하게, 법정의 말 - 내려놓음의 마음 공부 고요하고 단단하게
권민수 엮음 / 리텍콘텐츠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한민국의 50대 가장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쉼 없이 이어지는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하는 일과 비슷할지 모른다. 가정을 건사해야 한다는 묵직한 책임감 하나로 30대와 40대를 그야말로 앞만 보고 달렸다. 치열한 직장 생활 속에서 내 이름 석 자보다는 '누구의 아빠', '어느 부서의 책임자'라는 타이틀이 더 익숙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지천명(知天命)의 고개를 넘고 있는 지금, 무조건 높이 오르려던 성취의 계단에서 조금씩 힘을 빼는 법을 배우고 있다. 주말이면 하천변을 따라 뛰고 고요한 풍경을 느껴보는 소박한 취미들이 일상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고요하고 단단하게, 법정의 말』은 바로 이렇게 삶의 여유를 찾아가는 인생의 하프타임에 만난, 단비 같은 책이었다.

​ '소유'의 트랙에서 내려와 '존재'의 숲길로
​이 책은 "비움으로써 나를 나에게로 되돌리는 마음공부"라는 부제처럼, 무소유의 철학을 일상적인 언어로 잔잔하게 풀어낸다. 과거의 나는 더 많은 것을 쥐기 위해 발버둥 쳤다. 회사에서의 돋보이는 성과, 더 나은 보상, 꽉 짜인 목표들. 그것들이 내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밧줄인 줄 알았다. 하지만 법정 스님은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을 쓰게 된다"며 소유의 짐을 내려놓으라 권한다. 일터에서의 강박과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는 요즘, 이 말은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꽉 쥐고 있던 주먹을 펴니 오히려 시원한 바람이 손바닥을 스치고 지나간다.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 대신 자연의 소리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일선에서 한 걸음 물러나며 가장 낯설었던 감정은 '혹여나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옅은 불안이었다. 일에 대한 열정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낄 때면, 묘한 허탈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글을 읽으며 내가 겪고 있는 변화가 결코 쇠퇴나 체념이 아님을 깨달았다. 표지에 그려진 겹겹의 푸른 산등성이 위로 떠오르는 둥근 달처럼, 삶의 번잡함을 걷어낸 뒤에 찾아오는 '고요함'은 그 자체로 내면이 단단해지는 성숙의 과정이었다. 젊은 시절의 단단함이 부러지지 않기 위해 잔뜩 힘을 준 긴장 상태였다면, 50대에 접어들어 배우는 단단함은 비바람에 자연스럽게 흔들리면서도 뿌리를 깊게 내리는 법을 아는 여유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껍데기의 삶이 아니라, 오롯이 내 마음이 즐거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바로 그 고요함에서 나온다는 것을 책장을 넘기며 다시금 확인했다.

​법정 스님의 맑은 글귀들은 복잡했던 머릿속을 정갈하게 씻어주는 세신(洗身)의 시간 같았다. 직장 생활의 후반부, 그리고 자녀들의 독립을 서서히 지켜봐야 하는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려야 할까. 이 책은 삶의 모든 것을 팽개치라는 비현실적인 조언을 하지 않는다. 다만 나 자신을 잃어버릴 만큼 불필요한 과시와 욕망의 배낭을 이고 갈 필요는 없다고 따뜻하게 다독여준다.

​ 책에서는 대단한 성공 비법이나 처세술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의 속도에 발맞추느라 헐떡이는 우리에게 잠시 멈춰 서서 가쁜 숨을 고르라고 말한다. 치열했던 청장년기를 지나, 이제 막 일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자신만의 소박한 취미와 삶의 여유를 가꾸기 시작한 50대 중년 남성들에게 이 책을 곁에 두라 권하고 싶다. 무거웠던 어깨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스님의 맑은 언어들을 마주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 한구석에 외부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고요하고 단단한 나만의 작은 암자 하나가 지어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경의 시선으로 세상을 걷다 - 성경적 세계관과 일상
라영환 지음 / 피톤치드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성경의 시선으로 세상을 걷다』는 겉보기엔 신앙인들을 위한 지침서 같지만, 기독교를 학문적 대상으로 탐구하는 이들에게는 고대 중동의 종교적 텍스트가 21세기 최첨단 과학 문명 속에서 어떻게 '인문학적 나침반'으로 기능하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 연구라 생각한다. 과학 기술이 세상을 주도하는 오늘날, 이 책은 역설적으로 가장 오래된 인문학적 사유의 틀인 '종교'를 통해 물질세계 이면의 가치를 묻고 있다. 물론 나도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가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과학과 인문학으로서의 종교가 어떻게 융합할 것인가에 대한 지적 호기심 때문이었다.


현대 과학은 우주의 기원부터 유전자의 구조까지 세상이 '어떻게(How)' 작동하는지 눈부시게 밝혀냈다. 과학은 물질의 법칙을 설명할 뿐, 우리가 그 안에서 '왜(Why)' 살아야 하며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 답해주지 않는다. 다신교적이고 다원적인 시각에서 성경을 절대적 '과학 교과서'로 읽어서는 안되겠지만, 서구 문명의 근간을 이룬 거대한 인문학으로서 성경을 읽어야 할 이유는 수만 가지에 이를 것이다. 일상의 소소한 문제부터 사회 구조적 모순까지, 과학이 계량할 수 없는 인간 삶의 영역에 성경의 시각으로 해석하다. 효율성과 물질적 풍요만을 좇는 현대 사회에 도덕적, 실존적 질문을 던지는 전형적인 인문학적 성찰의 과정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과학과 종교는 흔히 대립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인식의 층위를 분리하면 가장 완벽한 상호보완적 관계가 된다. 진화론이나 양자역학 같은 과학적 성취를 인정하면서도, 그 경이로운 물리적 세계 속에서 인간 존엄성과 윤리적 책임을 고민하는 데에는 인문학적 상상력이 필수적이다. 여태껏 나는 종교란 과학자들이 설명하기 어려운 난제에 대해 '신'이라는 존재를 대입하여 살짝 피해 가기 위한 수단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책에서는 '어떻게(How)'와 '왜(Why)'의 조화로운 교차점에 대해 논하였다. 책에서 말하는 '성경적 세계관'의 적용은, 맹목적인 교리 주입이 아니라 과학적 합리성이 놓치기 쉬운 타자에 대한 연민, 공동체의 회복, 그리고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한 경외심을 일깨우는 촉매제가 된다. 절대적인 유일신의 교리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더라도, 물질의 언어를 넘어 의미의 언어로 세상을 해석하려는 시도는 과학적 이성과 인문학적 감수성이 어떻게 조화롭게 융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책 표지에는 거대한 빌딩 숲을 배경으로 뷰파인더 안에 홀로 걷는 사람의 모습이 담겨 있다. 저 멀리 보이는 스카이라인은 이성, 수학, 공학 등 인간의 과학적 성취가 쌓아 올린 경이로운 물질적 현실이다. 그 풍경 속에서 한 인간의 걸음에 초점을 맞추는 뷰 파인더는 다름 아닌 '인문학적 시선'이다. 거대한 구조와 시스템(과학)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나침반(종교/인문학)을 쥐고 주체적으로 걷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표지에 고스란히 묻어나는 듯하다. 세상을 이해하는 수많은 렌즈 중, 저자는 성경이라는 오래된 렌즈를 선택해 차가운 과학의 도시에 인문학적 온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성경의 시선으로 세상을 걷다』는 과학과 이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어떻게 고대의 지혜를 빌려 삶의 의미를 재구성하는지를 관찰할 수 있는 훌륭한 텍스트이다. 특정 종교의 배타성을 넘어, 과학적 사실 위에 인문학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인간의 지적 투쟁을 엿볼 수 있다. 지식의 파편화가 가속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물리적 세계(과학)와 내면적 가치(종교/인문학)를 연결하려는 이러한 사유의 훈련은 누구에게나 깊은 통찰을 선사한다. 종교를 초월하여, 다원적인 세계 속에서 인간다운 삶의 방향성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든 지성인들에게 이 책은 훌륭한 대화 상대가 되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챗 GPT나 제미나이와 대화하면 보다 만족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의 왜곡 측면에서는 전자와 후자 어디가 더 유용할지는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론 머스크의 소름돋는 미래 예측 50가지
최경수 지음 / 메이트북스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매서운 눈빛을 한 일론 머스크의 초상 아래로 '당신은 살아남을 준비가 되었나?'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단순한 실리콘밸리 억만장자의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인류 최고의 혁신가이자 집행자인 머스크가 가장 강력하게 경고하고 또 가장 앞장서서 개발하고 있는 AI 혁명에 대한 현실적이면서 서늘한 보고서이다. 머스크는 조만간 인간의 지능을 완전히 뛰어넘는 범용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끊임없이 예견해 왔다. AI의 발전은 단순한 챗봇이나 업무 보조 도구의 진화를 넘어, 인류의 경제 구조와 사회 시스템을 뿌리째 흔드는 특이점으로 묘사된다. 단순 반복 업무를 넘어 창작과 추론, 심지어 코딩과 과학적 발견의 영역까지 AI가 대체하는 시대에 인간의 노동은 어떤 가치를 지니게 될까? 이는 앞으로 글로벌 시장의 자본 흐름과 산업 재편을 읽어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화두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 글로벌 빅 테크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AI 패권 전쟁의 본질과 미래 시장의 향방을 머스크의 날카로운 시각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소프트웨어 형태의 AI가 우리의 두뇌를 위협한다면, 로보틱스와 결합한 물리적 AI는 우리의 육체를 대체한다. 테슬라의 옵티머스로 대표되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또 어떻게 발전하게 될지 궁금하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판단하고 물리적인 세계에 직접 개입하게 되는 영화 같은 일이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제조, 물류, 서비스 현장에 AI를 탑재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투입되면 생산성의 한계는 사라지겠지만, 동시에 인류는 전례 없는 대규모 일자리 소멸이라는 서늘한 위협과 마주해야 한다. 기술이 가져다줄 유토피아적 풍요와 디스토피아적 생존 위기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그리고 노동이 사라진 자리에는 최저 시급의 개념도 존재하지 않아 지금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공산품을 만나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통제할 것인가, 융합할 것인가 아니면 반대가 될 것인가. 가장 소름 돋는 대목은 초지능 AI의 위협에 맞서는 일론 머스크의 파격적인 해법이다. 그는 AI가 인간을 지배하는 비극을 막기 위해, 아예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직접 연결하는 뉴럴링크 프로젝트를 현실화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압도적인 연산 능력을 통제할 수 없다면, 우리 뇌에 칩을 심어 인공지능과 결합한 신인류로 진화하겠다는 발상인데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자아낸다. 기술이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마저 뛰어넘으려 할 때, 우리는 어디까지를 인간으로 정의할 수 있는지 무거운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정말로 영화에서 보던 사이보그와 인간의 공존이 현실이 되는 것일까?

일론 머스크를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위인전이 아니라, 그가 주도하는 인공지능 기술이 얼마나 폭발적이고 위험한 잠재력을 품고 있는지 냉철하게 해부하는 책이다. 그의 예측이 100% 적중하지 않을지라도, 가리키는 방향을 주시하는 것은 미래 사회의 흐름과 새로운 부의 이동을 파악하는 데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압도적인 인공지능의 해일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휩쓸릴지 기술의 흐름을 읽고 그 파도에 올라탈 것인지는 각자의 영역이다. AI 발전 속도가 두려우면서도 그 이면의 거대한 경제적·사회적 기회를 포착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가장 강렬하고 직관적인 생존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다. 물론 책을 덮으면서도 소름 끼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