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9 : AI가 만드는 25년 후 세상
케빈 켈리 지음, 우천 엮음, 김도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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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연일 쏟아지는 생성형 AI와 기술 혁신에 관한 뉴스를 접하다 보면, 세상이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믿었던 창작과 분석, 의사결정의 자리마저 AI가 대체할 것이라는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전망도 적지 않다. 이처럼 과열된 공포와 불안의 한가운데서 기술의 궤적을 25년이라는 현실적인 호흡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저자는 기술 발전의 파급력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이 느끼는 체감 속도와 실제 사회적 적용 사이에는 상당한 시차가 존재함을 짚어낸다. 신기술이 프로토타입으로 등장해 일상과 산업 전반의 인프라로 안착하기까지는 물리적인 시간과 제도적 조율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저자는 AI 혁명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파괴하는 파멸적 단절로 이어지기보다는,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확장의 과정이 될 것이라 전망한다. 기술의 급격한 도약에 가려져 있던 속도의 완급을 이성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AI를 인간의 대체재가 아닌 새로운 가능성의 확장 도구로 규정한다. 인간의 노동을 단순히 빼앗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직군과 협업 모델, 그리고 이전에 없던 기회의 장을 열어젖힐 것이라는 논리다. 증기기관과 컴퓨터의 등장이 초기에는 수많은 혼란을 낳았지만 궁극적으로 인류의 생산성과 삶의 지평을 넓혔듯, AI 역시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강력한 엔진이 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이러한 온건하고 낙관적인 통찰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안도감에 머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생각만큼 빠르지 않다’거나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는 말이 결코 ‘가만히 있어도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술이 서서히 침투한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체질 개선의 골든타임을 놓칠 위험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새로운 기회 역시 그 변화의 파도를 읽고 능동적으로 학습하며 대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보상이다.

맹목적인 낙관도, 무기력한 비관도 아닌 치밀한 준비를 해야한다. 기술이 인간을 압도하는 속도를 두려워하기보다, 기술과 공존하며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재정의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2049년이라는 시점은 먼 미래의 공상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내리는 선택들이 차곡차곡 쌓여 도달할 현실이다.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막연한 공포를 걷어내고, 냉철하게 현재의 위치를 점검하며 미래를 설계할 단단한 기준점을 세우게 만드는 책이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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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는 결코 손해 보지 않는다 - 최선의 선택을 만드는 노벨 경제학자의 11가지 아이디어
한순구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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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수식과 데이터, 명확한 인과관계를 중시하는 이과의 시선에서 경제학은 늘 흥미로우면서도 아리송한 분야다. 자연과학처럼 통제된 실험실에서 명확히 증명하기 어렵고, 예측 불가능한 인간의 심리와 행동이 끊임없이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매 순간 마주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던 경제학적 원리를 노벨 경제학자들의 정교한 통찰을 빌려 명쾌하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책이라 생각한다. 예전에 커피를 하루에 세잔 이상 마시면 행복 지수가 올라간다는 말을 들었는데 하루에 세잔의 커피를 마실만큼의 여유가 되는 사람은 이미 행복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개인 풀에서 수영하면 역시나 행복 지수는 올라간다고 하는데 이렇게 인과 관계는 없어 보이지만 풀어내는 것이 경제학자의 역할(?)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복잡하고 난해한 경제 이론을 나열하는 대신,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세계적 석학들의 핵심 아이디어 11가지를 우리 삶의 현실적인 선택 문제와 연결한다. 저자는 국내 대표적인 게임 이론 권위자답게, 경제학을 단순한 돈 버는 기술이나 거시적인 통계가 아닌 인간의 전략적 상호작용과 합리적 의사결정의 학문으로 재정의한다. 진입장벽을 대폭 낮춘 유쾌한 스토리텔링과 구체적인 일상 사례를 든 것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좋은 제품은 사라지고 저급품만 남게 되는 레몬 마켓, 타인의 선택을 예측하며 최선의 수를 찾는 내시 균형, 인간의 비합리적 편향을 역이용해 올바른 선택을 유도하는 넛지와 행동경제학의 개념들이 생생한 비유와 함께 펼쳐진다.

추상적인 가설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에서 마주하는 중고차 거래, 연봉 협상, 자산 배분, 조직 내 인센티브 설계 등 피부에 와닿는 문제들에 적용되는 원리를 짚어주어 지적 쾌감을 준다. 엄밀한 논증을 중시하는 독자에게도 노벨상을 통해 검증된 지적 프레임워크가 일상의 불확실성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통제해 주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경제학이 과학처럼 완벽한 예측을 보장하지 못할지라도, 왜 우리가 경제학적 사고를 장착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이 이 책에 담겨 있다. 현실 세계는 불완전한 정보와 감정이 뒤섞인 복잡계다. 이때 노벨 경제학자들의 11가지 아이디어는 손해를 최소화하고 최선의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사고의 알고리즘 역할을 한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한 발짝 물러서서 상황의 구조와 상대방의 인센티브를 파악하는 안목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깊이와 대중적인 재미 사이의 균형을 훌륭하게 잡아내었다고 본다. 복잡한 현실 속에서 논리적이고 손해 보지 않는 선택을 내리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학창시절 경제학과 다니던 선배들이 미시경제, 거시경제 하면서 어렵게 이야기하였는데 어려운 것을 쉽게 설명하지 못했기에 감히 접근할 생각을 못했는데 얼마든지 쉽게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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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을 읽는 40가지 이야기 - 중동으로의 첫 발걸음
박현도 외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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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중동(Middle East)은 우리에게 지리적 거리감보다 심리적 거리감이 훨씬 더 멀게 느껴지는 곳이다. 아시아의 일부를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보다 더 낯설고 때로는 두렵기까지 한 미지의 땅으로 여겨진다. 매스컴을 통해 접하는 중동의 이미지는 대부분 전쟁, 테러, 난민, 여성 억압, 극단주의 같은 부정적인 키워드에 매몰되어 있다. 경험해보지 못했거나 깊이 공부해본 적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중동은 그저 위험한 지역이라는 거대한 편견의 벽에 갇혀 있다.

단순히 정보를 나열하는 백과사전식 구성을 따르지 않는다. 제목처럼 역사, 종교, 정치, 문화,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40가지의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통해 중동이라는 거대한 퍼즐 조각을 하나씩 맞춰 나간다. 박현도, 이수정, 양정아라는 세 명의 전문가가 각자의 전문 분야를 바탕으로 깊이 있으면서도 대중적인 시각을 잃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책은 중동의 고대 문명부터 시작해 이슬람교의 탄생과 전파, 오스만 제국의 흥망성쇠, 그리고 오늘날의 복잡다단한 국제 관계와 사회 문제까지 폭넓게 다룬다.

중동을 바라보는 기존의 서구 중심적 시각을 탈피하려 노력했다는 것이 책을 읽다보면 느껴진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중동의 역사는 서구의 시선으로 재단되고 왜곡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저자들은 중동 고유의 가치와 역사적 맥락을 존중하며, 그들의 입장에서 사건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예를 들어, 흔히 종교 전쟁으로 치부되는 십자군 전쟁을 중동의 시각에서 바라보거나, 현대 중동의 비극이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에 의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파헤치는 부분은 매우 흥미로웠다. 이를 통해 우리는 중동을 단순히 비극의 땅이 아닌, 오랜 역사와 찬란한 문명을 지닌 곳으로 다시 인식하게 된다.

물론 40가지 이야기 중에는 낯선 용어와 복잡한 국제 정세로 인해 읽기가 다소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특히 이슬람교 내부의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갈등,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그리고 수많은 무장 단체의 얽히고설킨 관계는 한 번에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은 이러한 복잡함을 40가지라는 짧은 호흡의 이야기로 나누어 제시한다는 데 있다. 막히는 부분이 나오더라도 잠시 숨을 고르고 다음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이전 내용이 이해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저자들은 지도와 사진, 도표 등 풍부한 시각 자료를 활용해 독자의 이해를 돕고, 복잡한 사건들을 핵심 위주로 명쾌하게 정리해준다.

과거 이야기 뿐 아니라 현대 중동 사회의 변화와 도전에도 주목한다. 여성 인권 문제, '아랍의 봄' 이후의 민주화 운동, 그리고 석유 중심의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려는 새로운 시도 등 중동이 직면한 역동적인 현실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이를 통해 우리는 중동이 정체된 공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살아있는 땅임을 깨닫게 된다.

​ 내가 경험했던 중동은 위험하거나 폐쇄적인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오랜 역사와 풍부한 문화를 품고 있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이 책은 나의 그런 경험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준다. 저자들은 시종일관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며, 편견과 오해로 가득 찬 중동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로잡으려 노력한다. 중동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필요한 독자는 물론, 중동의 복잡한 현실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를 옭아매던 중동에 대한 편견의 벽이 조금은 낮아진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벽 너머에 우리가 몰랐던, 하지만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진짜 중동의 모습이 펼쳐져 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낯선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편견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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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범죄실록 - 조선을 뒤흔든 범죄, 수사, 재판 이야기
정명섭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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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범죄는 한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자, 인간의 본성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엄격한 유교 질서와 성리학적 명분에 가려져 있던 조선 시대의 입체적인 민낯을 범죄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게 해준다. 책 속에는 도박, 살인, 대리 시험, 조직폭력배, 납치와 유괴 등 현대 사회에서도 익숙하게 들려오는 다양한 범죄 사건들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수백 년이라는 시간적 격차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발생했던 수많은 사건·사고는 오늘날의 뉴스면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다가온 사실은, 시대와 제도가 아무리 변해도 통제되지 않는 인간의 욕망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 많은 부와 권력을 가지려는 탐욕, 순간의 격정을 참지 못한 분노, 신분적 한계를 뛰어넘으려다 벌어지는 비극은 예나 지금이나 수많은 범죄자를 양산해냈다. 일부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죄를 저질렀고, 또 누군가는 사회적 모순과 가난 속에서 본의 아니게 범법자의 길로 들어섰다.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과거 조선의 사법·치안 체계와 현대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 조직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비교해 보게 만든 점이다. 과학 수사 기법이 전무했던 조선 시대에는 주로 정황증거와 고문, 제보에 의존해 범인을 추적했다. 이로 인해 엄격한 신분제적 한계와 한심할 정도의 수사적 허점이 결합하면서 수많은 무고한 이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희생되기도 했다. 현대인으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비극과 억울함이 일상처럼 벌어졌던 셈이다. 조선의 법의학서가 활용되었다고는 하나, 과학적 기술과 엄격한 적법 절차를 갖춘 현대 시스템과의 격차는 매우 컸다.

이러한 과거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나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치안과 안전의 가치를 다시금 새기게 된다. 수많은 시민이 납부하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현대의 경찰 조직과 공공 치안 시스템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역사의 비극을 거쳐 발전해 왔다. 밤거리를 비교적 안전하게 걸을 수 있고, 법적 절차에 따라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으며 수사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치안 현장에서 묵묵히 땀 흘리는 경찰관들의 노고와 사회 안전망 구축을 위한 비용이 합쳐져 비로소 유지되는 소중한 결실이다.

단순히 과거의 자극적인 사건들을 재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범죄를 매개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회 시스템의 중요성을 깊이 있게 반성하게 해준다. 신분제와 한계 상황 속에서 무력하게 마주해야 했던 조선 민중의 비극적 삶을 추적하는 동안, 시공간을 초월해 작동하는 인간의 야만성과 이를 통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인간의 변하지 않는 욕망에 대한 쓸쓸한 기록이자, 안전하고 공정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어떤 제도와 노력을 지켜나가야 하는지 일깨워주는 뜻깊은 역사 보고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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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국경의 지도책 - 국제 정세의 흐름을 읽는 데이터 지리학
델핀 파팽.브뤼노 테르트레.세마르탱 라보르드 지음, 이수진 옮김 / 윌북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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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지도 위 국경선들이 제국주의의 탐욕과 정치적 타협으로 그어진 인위적인 결과물임을 데이터를 통해 폭로한다. 관광 수익을 위해 방치된 기형적인 월경지의 이면을 살피며, 오늘날의 국경이 안전을 위한 울타리인지 혹은 새로운 분쟁의 씨앗인지에 대한 묵직하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표지 문구처럼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왔던 지도 위의 선, 즉 국경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데이터 지리학 서적이며 역시나 책을 읽고 나니 늘 보던 세계 지도가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학창 시절 사회나 지리 시간에 무심코 외웠던 세계 지도 속 국경선들은 마치 태초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자연의 섭리처럼 보이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그것이 철저히 인위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인 역사의 산물임을 깨닫게 된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대체 국경은 누가 이렇게 마음대로 정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산맥이나 강 같은 거대한 자연적 지형을 경계로 삼은 곳도 존재하지만, 아프리카나 중동의 지도처럼 자를 대고 반듯하게 그은 듯한 인위적인 직선 국경들은 제국주의 열강들의 이권 다툼과 식민 지배가 남긴 뼈아픈 흉터다. 그들은 그 땅에 뿌리내리고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고유한 문화, 종교, 민족적 배경은 철저히 무시한 채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탁상공론 식으로 마음대로 선을 그었다. 그 오만한 펜대 놀림은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유혈 사태와 영토 분쟁의 멈추지 않는 원인이 되고 있다. 북위 38도 선으로 분단되었던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일것이다.

특히 흥미로우면서도 무척 생소했던 부분은 '월경지(Exclave)'에 대한 이야기였다. 월경지란 특정 국가의 영토지만 다른 나라의 영토에 완전히 둘러싸여 섬처럼 뚝 떨어져 있는 기형적인 땅을 말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행정적, 군사적으로 관리하기가 매우 불편하고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주변국과 서로 영토를 교환하거나 병합하여 국경을 단순화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월경지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지되는 기막힌 이유는 정치적 자존심이나 해묵은 역사적 앙금 때문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독특한 지리적 형태를 무기 삼아 관광객 유치라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이고 경제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복잡한 국경을 굳이 방치하고 심지어 즐긴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인간의 탐욕과 실용주의가 빚어낸 한 편의 블랙코미디 같은 현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국경의 모순을 마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묵직한 질문 하나에 도달하게 된다. '과연 국경은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인가, 아니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또 다른 분쟁의 씨앗인가?' 과거 세계화 시대가 도래하며 국경의 의미가 점차 희미해질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지배적이었지만, 작금의 현실은 정반대의 길로 흘러가고 있다. 난민 문제, 감염병의 전 지구적 확산, 희소 자원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각국은 오히려 물리적 장벽을 더 높게 쌓아 올리고 국경 통제를 매섭게 강화하고 있다. 자국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국경을 폐쇄적으로 운용할수록, 역설적으로 그 경계선 주변에서는 배타적 민족주의가 싹트며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결국 저자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영토의 구획 정보가 아니다. 다채로운 시각 자료와 데이터를 통해 그어진 선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의 이기심, 권력의 작동 방식, 그리고 세계 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입체적으로 조망하게 해 준다. 우리는 국경이라는 단단한 선에 갇혀 타인을 우리와 그들로 너무도 쉽게 구분해 온 것은 아닐까. 단절과 혐오의 벽이 아닌, 소통과 공존을 위한 경계로서 국경을 재정의할 수 있을지 깊은 고민을 안겨준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한 차원 넓혀주는 훌륭한 나침반 같은 책이다.

#눈에보이지않는국경의지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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