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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숲에 갔다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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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묘한 소설이다.

   처음은 있으되 끝이 없고, 끝을 향해 나아가는 듯 했던 길은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채 정신차려 보니 난 서쪽 숲에 와있더라 하는 식.

 

 

2.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일식에서 유난히 기억 남는 한 문장이 있다.

   태양 때문인가 하는 것.

   아마도 그 출발점은 카뮈의 이인(이방인)에서 찾을 수 있지 않나 싶은데

   뭐 그에 대한 담론을 펼치고자 하는 게 아니라

   그 두 소설이 태양 때문인가 하는 의문을 은연 중에 내비췄다면

   이 소설은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이 숲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는 것.

   그와 동시에 내가 미스터리물이라 불리는 것들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을

   다시금 점검해보게끔 하였다.

 

 

3. 나라는 사람은 알기 쉽기도 하고, 알기 어렵기도 하며

   맺고 끊는 게 분명한 직선적인 성격이라 착각하기도 하지만(나조차도)

   실제로는 많은 부분을 얘기하지 않으며

   그 얘기하지 않고 있음을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 하고 있기까지 한다.

   이러한 애매모호한 인간성은 그대로 취향에까지 영향을 미쳐

   난 끝이 분명하지 않은 것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열린 결말을 표방하며 나레이션으로 때우는 드라마와 영화를 혐오하며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다 보니 끝이 나 있는 식의 만화와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생각했고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했지만 범인이 명백히 드러난 것들 역시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제 어쩌라는 거지 라는 생각이 대부분이었을 뿐.

   끝이 명확한 소설을 좋아한다 느꼈는데 정말 내가 좋아한 것이 끝이 명확한 것이었는지.

   끝이 명확하다 함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는지

   새삼스레 따져보게 되었다.

 

 

4. 이전의 기준을 따져본다면 이 소설은 나한테 있어서는 몹시도 좋지 않은 소설이 될 것이다.

    (숲은 있지만 범인은 없기에)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유는 아마도

    숲으로 시작해서 숲으로 끝나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한 사람이 숲으로 왔다. 사라졌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숲으로 왔다. 사라졌다.

   이 소설은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그 접점의 어딘가를 응시할 뿐

   사건 자체를 조망하고자 함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숲의 시선이

   음습한 이 책의 분위기를 버티어 낼 수 있게 한 게 아닐까 싶다.

 

 

5. 이 책을 계기로 한동안 편혜영이라는 이름에 관심이 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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