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직톤의 초상 이승우 컬렉션 1
이승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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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먼저 말해두어야 할 것.

   책에 나오는 종교와 철학에 대한 부분은 전혀 이해하지 못 했다.

 

2. 너무 이해가 되지 않은 나머지

   에리직톤과 나무, 종교와 신을 '목표' 로 치환하여 읽기 시작했다.

 

3. 목표. 삶의 목표. 꿈이라고 표현되기도 하는 것.

   목표를 떠올리면 청소년기가 떠오른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어떨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청소년이던 시절은 뚜렷한 목표가 있는 아이들이 드문 편이었다.

   막연히 대학은 가야지 하는 생각만 갖고 '어느 대학' 을 갈지조차 정해두지 않았다가

   막판에 벼락치기로 공부하여 나온 성적에 맞춰 갈 수 있는 곳 중에서

   가장 좋은 곳을 선택하여 가는(전공은 중요하지 않다)

   아이들이 태반이었다. 지금은 어떨런지 모르겠지만.

 

4. 물론 목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쫓을 자유가 주어지는 건 아니었다.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모 잡지사에서 개최하는 공모전에 당선된 적이 있었다.

   이를 가족들에게 말했을 때 내가 들을 수 있었던 말은 

   "그래서 어느 회사에 취직된다니?" 가 전부였다.

 

5. 어쩌다보니 이야기가 신세한탄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한탄을 하고자 함은 아니다.

   난 꿈이 없는 청소년기를 보냈고, '뭘'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보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붙잡은 것이 '그림' 이었고 '창작' 이었다.

   그러나 필사적으로 붙든 나의 '목표' 는 서서히 나에게 침투하여

   나의 정서 전반부터 시작하여 성격과 말투, 인간관계, 심지어 식성까지 바꿔버렸다.

   목표가, 꿈이 나를 잡아먹어 버린 셈이다.

 

6. 우울증 치료를 받으러 다니고서야 꿈이 나를 잡아먹었다는 것을 인정했더랬다.

   물론 가족의 영향도 있겠고 회사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 기반에는 나의 꿈, 나의 목표가 깔려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바로 그 점이 아이러니 하다는 거다.

   그냥 되는 대로 살아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필사적으로 목표를 찾고 꿈을 찾았는데

   도리어 그 꿈이란 것이 나를 잠식하고 잡아먹어 버리다니.

 

7. 여기까지가 에리직톤의 초상을 보면서 내내 떠오른 생각이었다.

   간결하고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 해 아쉽지만

   내 이해력이 미치는 범위가 여기까지 인 것을 어쩌겠는다.

 

8. 다만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형석의 우울의 이유이다.

   물론 '에리직톤의 초상' 이 씌여졌을 그 시기에는

   그런 류의 우울한 사람이 많았겠노라고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지금 20대들은 어쩐지 우울과 권태에 빠질 틈도 없어 보이는지라

   형석의 이유가 뚜렷하지 않은 채 넘어가는 점이 적잖이 눈에 거슬린다.

  지금의 20대들이 과연 형석의 우울을 인정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난 모르겠다.

 

9. '생의 이면' 이나 '지상의 노래' 만큼 좋지는 않다.

   (많은 부분에서 흐릿하고 추상적이기에)

   허나 이 책이 작가의 원형처럼 느껴지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다.

 

p.s. 이것 참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미약한 리뷰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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