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안녕, - 제1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이종산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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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득 떠오르는 기억 하나. 말에 대한 배신감을 뼈저리게 느꼈던 때.

   정확히는 그 말에 부합하지 못 하는 나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던 일.

   누군가에게 '난 이것을 싫어해' '난 어떤 사람이야' 라고 말해도

   그것이 평생 갈 정도로 영원히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상하리만치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인식 또는 자각이 낮았던 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내가 되고자 하는 모양을 만들어두고

   거기에 부합하려 무던히 애를 썼다.

   애를 쓰는 동안은 줄곧 5가지 결심 중 1~2가지를 지키지 못 하는 식이었고

   종내 나는 나를 ~할지도 모르는 사람

   으로 모르는 사람으로 내버려 두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 이후로 내가 쓰는 일련의 글들에서는 ~한 듯 했다. ~한 것 같다는 말이 늘었고

   확신하는 말을 믿지 못 하게 된 듯 했다.

 

   

2. 기억 둘. 지금도 이어지는 것.

   부모님은  종종 '너는 내가 뭔 말을 해도 듣질 않냐' 고 하신다.

   왜 말을 따르지 않느냐 가 아닌 말 그대로 '귀담아 듣지 않는다' 는 뜻이다.

   그러나 내가 지난 시간 동안 익혀온 것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자기 좋을 대로 판단하고 자기 좋을 말만 기억하는' 부모님이었다.

    더욱이 안 좋은 점은 '자신이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는 말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게 매우 흔하게 있는 일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편의대로 상대의 말을 기억한다.

   그래놓고 자기의 말은 모조리 다 귀담아 들어주길 바란다.

   한 해, 두 해 그런 사람들을 안팍으로 겪다 보니 종국에는 사람들 말도 싫어져 버렸다.

   더 정확히는 사람들을 향해 말하는 게 싫어져 버렸다.

   기억 하나에서는 내가 지키지 못 할 나의 말들이 싫어졌고

   기억 둘에서는 어차피 기억하지도 못 할 위인들에게

   내가 왜 말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3. 물론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는 게 일반론이긴 하지만

   한 번 말하고, 두 번 말하고, 세 번 연달아 같은 내용을 그대로 전하여도

   듣는 척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4. 적다 보니 책에 대한 감상문이라기보다는 요즘 하고 있는 생각에 대해 적어놓은 것 같은데.

   읽는 내내 책의 내용에 대한 생각보다는 '말' 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던 책 같다.

   이야기 구조가 탄탄하고 휘몰아치는 듯이 격정에 빠져 읽었다 고는 할 수 없으나

   독특한 감각을 발휘하고 있는 책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5. 그저 그렇게 스쳐갈 뿐이니 일일이 안타까워 하지 말고

   오면 받아주고 가면 놓아주는 그런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인지

   어차피 말 따위 기억에도 잔상에도 남지 않을 허황된 것이니까

   말을 아끼는 자세로 일생을 살아야 할는지

   갑자기 헷갈렸다.

 

 

6. '허언증' 까지는 아니더라도 글 중

    마리가 느끼는 '말' 에 대한 생각에는 상당수가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이다.

    그리고 그 말에 대한 생각이 사람, 사람 관계에 대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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