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제3판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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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으로 날아든 민들레씨 – 아버님께, 1979.5.6>

P159 절실한 일이 없으면 응달의 풀싹처럼 자라지 못하며, 경험이 편벽되면 한쪽으로만 굴린 눈덩이처럼 기형화할 위험이 따릅니다. 어려운 환경속에 살면서 성격의 굴절을 막고 구김살없이 되기란 무척 어려운 것 같습니다.

<슬픔도 사람을 키웁니다. – 부모님께, 1979.5.28>

P162 기쁨과 마찬가지로 슬픔도 사람을 키운다는 쉬운 이치를 생활의 골목골목마다에서 확인하면서 여름나무처럼 언제나 크는 사람을 배우렵니다.

<피서 (避書)의 계절 – 아버님께, 1976.6.20>

P163 출석부의 명단을 죄다 암기하고 교실에 들어간 교사라 하더라도 학생의 얼굴에 대하여 무지한 한, 단 한명의 학생도 맞출 수 없습니다.

‘이름’은 나중에 붙는 것, 지식은 실천에서 나와 실천으로 돌아가야 참다운 것이라 믿습니다.
지식은 책속이나 서가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리된 경험과 실천 속에, 그것과의 통일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추성만정 충즉즉 (秋聲滿庭 蟲喞喞, 庭 뜰 정, 喞 두런거릴 즉) – 아버님께, 1979.10.30>

P169 글씨는 갈수록 어려워 고인(古人) 들이 도 道자에 담은 뜻이 그런 것이었구나 하고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길’이란 그 ‘향’하는 바가 먼저 있고 나서 다시 무수한 발걸음이 다지고 다져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붓끝처럼 스스로를 간추리게 하는 송연하리만큼 엄정한 마음가짐이 아니고서 감히 무엇을 이루려 하는 것은 한마디로 ‘탐욕’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타협과 유행, 모방과 영합이 흔천해진 시류 속에서 어느덧 적당하게 되어버린 저희들의 사고 속에서 조상들의 대쪽같던 정신을 발견해내기란 영영 불가능하지나 않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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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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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얼굴 – 아버님께, 1977, 9.1>

P132 어느 특정기에 관한 지속적인 관심과 계통적인 독서는 대부분의 독서가 실족하기 쉬운 그 파편성, 현학성을 제거해준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매우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짧은 1년, 긴 하루 – 아버님께, 1977, 9.7>

P134 우리는 거개가 타인의 실수에 대해서는 냉정한 반면 자신의 실수에 대하여는 무척 관대한 것이 사실입니다.

자기 자신의 실수에 있어서는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처지,우여곡절, 불가피했던 여러 사정을 잘 알고 있음에 반하여, 타인의 그것에 대하여는 그 처지나 실수가 있기까지의 과정 전부에 대해 무지하거나 설령 알더라도 극히 일부밖에 이해하지 못하므로 자연 너그럽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P135 우리는 오랜 시간과 노력으로 모든 것을 열어놓은 자기 속으로 타인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이 열려있는 타인의 내부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타인을 자신만큼 알기에 이릅니다.

우리는 타인에게서 자기와 많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남은 차이를 이해하게 됩니다. 이 ‘차이’에 대한 이해없이 타인에 대한 이해가 충분한 것이 될수는 없으며, 그 사람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이 그의 경험을 자기 것으로 소화할 수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저희들은 이 실패자들의 군서지에서 수많은 타인을 만나고, 그들의 수많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가능성 속에 몸담고 있슴을 깨닫게 됩니다

<거두망창월 (擧頭望窓月) – 아버님께, 1977.9.19>

P136 지난 12일 어머님께서 혼자 빗속을 다녀가셨습니다. 입석 기차표를 끊고 "비가 오기에 생각나서" 찾아왔다고 하셨습니다.

<옥창 獄窓속의 역마 驛馬, 계수님께, 1977.10.4>

P137 하늘높이 바람 찬 연을 띄워놓으면 얼레가 쉴 수 없는 법, 안거(安居)란 기실 꿈의 상실이기 쉬우며 도리어 방황의 인고 속에서 상당한 분량의 꿈이 추구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창랑의 물가에서 – 아버님께, 1977.10.15>

P139 천수고 불감불국 (天雖高 不敢不局 ,雖 비록 수, 敢 감히 감, 局 판 국) 하늘이 비록 높아도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으며,
막견어은 막현어미 (莫見於隱 莫顯於微 , 莫 없을 막, 隱 숨을 은, 顯 나타날 현, 微 작을 미), 아무리 육중한 벽으로 위요(圍繞, 圍 둘레 위, 繞 두를 요)된 자리라 하더라도 더 높은 시점에 오르고 더 긴 세월이 흐르면 그도 일식처럼 만인이 보고 있는 자리인 것을…

저에게 주어진 이 작은 일우 (一隅, 隅 모퉁이 우)가 비록 사면의 벽에 의하여 밀폐됨으로써 얻어진 공간이지만, 저는 부단한 성찰과 자기 부정의 노력으로 이 닫힌 공간을 무한히 열리는 공간으로 만들어감으로써 벽을 침묵의 교사로 삼으려 합니다. 필신기독 (必愼其獨, 愼 삼갈 신) 혼자일 수록 더 어려운 생각이 듭니다.

<자신을 가리키는 손가락 – 부모님께, 1978.3.2>
P147 언청이가 밤중에 그 자식을 낳고서는 급히 불을 들어 비춰보았다. 서두른 까닭인즉 행여 자기를 닮았을까 두려워서 였다.
장자에서 읽은 글입니다. 비통하리만큼 엄정한 자기응시, 이것은 그대로 하나의 큼직한 양심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가르친다는 것은 희망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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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체온 – 계수님께, 1976,2.11>

흉회쇄락 胸懷灑落, 광풍제월 光風霽月 (胸 가슴 흉, 懷 품을 회, 灑 뿌릴 쇄, 霽 비 갤 제): 가슴속이 맑고 깨끗하기가 눈비 갠뒤의 맑은 바람이나 밝은 달과 같다네.
*쇄락: 무더운 여름에 덥고 답답한 공기로 가득찬 허공에물을 뿌리고 나면 느낄 수 있는 상쾌함과 시원함을 의미한다.

염려하는 사람이 한 사람 더 늘었다는 기쁨은 흡사 소년들의 그것처럼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고 보이고 싶고

<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 아버님께, 1976. 5.3 >

P110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修身齊家 治國平天下
이 대학 장구의 진의는 그 시간적 순차성에 있지 않고, 오히려 그 각각의 상호연관성, 그 전체적 통일성에 깊은 뜻이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바깥의 修身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있다면 그것은 수신이 아니라 기실 소승의 목탁이거나 아니면 한낱 이기의 소라껍데기에 불가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치국 앞선 제가란 결국 부옥의 맹견과 그 높은 담장을 연상케 합니다. 평천하를 도외시한 치국, 이것은 일제의 침략과 횡포를 그 본보기의 하나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고한 경험 – 아버님께, 1976.6.2>

P111 잡초를 뜯어서 젖을 만드는 소처럼 저는 간고한 경험일 수록 그것을 성장의 자양으로 삼으려 합니다.
*간고한: 艱 어려울 간, 苦 괴로울 고

<비행기와 속력 – 계수님께, 1976.6.2>

P112 하늘의 비행기가 속력에 의하여 떠 있음에서 알수 있듯이, 생활에 지향과 속력이 없으면 생활의 제측면이 일관되게 정돈될 수 없음은 물론, 자신의 역량마저 금방 풍화되어 무력해지는 법입니다.

<인도와 예도 – 아버님께, 1976,7.5>

P113 인도 人道는 예도 藝道의 장엽을 뻗는 심근인 것을, 예도는 인도의 대하로 향하는 시내인 것을, 그리하여 최고의 예술 작품은 결국 ‘훌륭한 인간’, ’훌륭한 역사’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신행 기념여행을 기뻐하며 – 아버님께, 1976.9.13>

P114 겨울이 또 다가오고 있지만 이곳의 저희들은 여전히 건강합니다. 다만 ‘여전한’ 생활 속에 ‘여전한’ 내용이 담기면 담긴채 굳을까 걱정입니다.

고인 물, 정돈된 물, 그러나 썩기 쉬운 물, 명경같이 맑은 물, 얼굴이 보이는 물, 그러나 작은 돌에도 깨어지는 물입니다.

<꽃과 나비 – 영석에게, 1977.5.20>

P121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반드시 요구되는) 인간적 신뢰를 받지 못하면서 단지 ‘형’이라는 혈연만으로서 ‘형’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나는 내가 너의 형이 되기를 원하는 한, 나 자신의 도야를 게을리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해 본다.

<버림과 키움 – 아버님께, 1977.6.8>

P123 10년, 저는 많을 것을 잃고, 또 많은 것을 버렸습니다. 버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조금은 서운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버린다는 것은 상추를 솎아내는, 더 큰 것을 키우는 손길이기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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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자>
P101 미 美자는 양 羊 대 大의 회의로서 양이 크다는 뜻이다. 우리 선조들은 큼직한 양을 보고 느낀 감정을 그렇게 나타낸 것이다. 그 고기를 먹고 그 털을 입는 양은 당시의 물질적 생활의 기본이었으며, 양이 커서 생활이 풍족해질 때의 그 푼푼한 마음이 곧 미였고 아름다움이었다.

‘아름답다’는 것은 ‘알 만하다’는 숙지 (熟知, 熟 익을 숙), 가지 (可知) 의 뜻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미의식의 형성과 미적 가치판단의 훌륭한 열쇠를 주고 있다. 이를테면 너의 머릿 속에 들어앉은 이러저러한 여인상이 바로 너의 미녀 판단기준이 되고 있다. 기실 너는 사제의 도량형기로써 측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네가 아름다운 (可知) 여자가 어머니에게는 모름다운 (不知) 여자가 되는 차이를 빚는다.

P102 미는 또한 , 신선미 즉 미의 지속성을 그 본질로 한다. 부단히 자기를 갱신하지 않는 한 미는 지속되지 않는다. 정체성은 미의 반어이며 권태의 동의어이다.

그러므로 너는 그녀가 어떠한 여자로 변화, 발전할 것인가를 반드시 요량해 봐야 한다.
착한 아내, 고운 며느리, 친절한 엄마, 인자한 시어머니, 자비로운 할머니 등 긍정적 미래로 열려있는 여자인가 현재 속에 닫혀있는 여자인가를 살펴야 한다. 이것은 현재를 고정불변한 것으로 완결하지 않고 과거와 미래의 연관속에서 변화발전의 부단한 과정으로 인식하는 철학적 태도이며, 현실성보다는 그 가능성에 눈을 모으는 열려있는 시각이다.

사실이지 사람이란 사과와 같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인생의 반려이며 생활을 통하여 동화, 형성되어 간다는 점에서 우리는 면밀한 선택으로부터 좀 대범해져도 좋을 것이다. ‘부모나 형제를 선택항 출생하는가’라는 현문앞에서는 답변이 없어진다.
너는 아직도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 하겠지만 요즘 세상에는 같은 가격이면 그 염색료만큼 천의 나쁜 치마이기 십상이다.

<좋은 시어머님 – 어머님께, 1976.1.19>
P106 제가 어머님께 바라고 싶은 것은젊은 사람한테 자꾸 배우시라는 것입니다. 진정 젊어지는 비결은 젊은이들로부터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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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5 그 자리에 땅을 파고 묻혀 죽고 싶을 정도의 침통한 슬픔에 함몰되어있더라도,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하여 위로된다는 사실이다.

큰 슬픔이 인내되고 극복되기 위해서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작은 기쁨이 이룩해내는 엄청난 역할이 놀랍다.

슬픔이나 비극을 인내하고 위로해주는 기쁨, 작은 기쁨에 대한 확신을 갖는 까닭도, 진정한 기쁨은 대부분이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오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만약 물 物에서 오는 것이라면 작은 기쁨에 대한 믿음을 갖기가 어렵겠지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믿어도 좋다. 수 많은 사람을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

P67 과거가 가장 찬란하게 미화되는 곳이 아마 감옥일 것입니다. 감옥에는 과거가 각박한 사람이 드뭅니다. 감옥을 견디기 위한 자위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만 이 자위는 참혹한 환경에 놓은 생명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생명운동 그 자체라고 생각됩니다.

<염려보다 이해를 – 아버님께, 1972.3.16>
P82 예(例 법식 예) 하면 근간에 읽으신 서 書, 문 文에 관한 소견이라든가 최근에 겪으신 생활 주변의 이야기라든가 하는 그런 구체적인 말씀을 듣고 싶은 것입니다. ‘염려의 편지’가 ‘대화의 편지’로 바뀌어진다면 저는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아버님이 편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86 독서보다는 사색에 더 맘을 두고 지식을 넓히는 공부보다는 생각을 높이는 노력에 더 힘쓰고 있습니다.

P97 지자 知者는 막여부 莫如父 (莫 없을 막): 아들의 됨됨이는 아버지만큼 알 수가 없다

P100 춘래불사춘 春來不似春 호지무화초 胡地無花草 (似 같을 사) 이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

저는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결코 많은 책을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 일체의 실천이 배제된 조건하에서는 책을 읽는 시간보다 차라리 책을 덮고 읽은 바를 되새기듯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필요가 있다 싶습니다. 지식을 넓히기 보다 생각을 높이려 함은 사침 思沈 (沈 잠길 침)하여야 사무사 思無邪 할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사무사 思無邪: 생각이 바르므로 사악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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