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제3판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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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얼굴 – 아버님께, 1977, 9.1>

P132 어느 특정기에 관한 지속적인 관심과 계통적인 독서는 대부분의 독서가 실족하기 쉬운 그 파편성, 현학성을 제거해준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매우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짧은 1년, 긴 하루 – 아버님께, 1977, 9.7>

P134 우리는 거개가 타인의 실수에 대해서는 냉정한 반면 자신의 실수에 대하여는 무척 관대한 것이 사실입니다.

자기 자신의 실수에 있어서는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처지,우여곡절, 불가피했던 여러 사정을 잘 알고 있음에 반하여, 타인의 그것에 대하여는 그 처지나 실수가 있기까지의 과정 전부에 대해 무지하거나 설령 알더라도 극히 일부밖에 이해하지 못하므로 자연 너그럽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P135 우리는 오랜 시간과 노력으로 모든 것을 열어놓은 자기 속으로 타인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이 열려있는 타인의 내부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타인을 자신만큼 알기에 이릅니다.

우리는 타인에게서 자기와 많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남은 차이를 이해하게 됩니다. 이 ‘차이’에 대한 이해없이 타인에 대한 이해가 충분한 것이 될수는 없으며, 그 사람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이 그의 경험을 자기 것으로 소화할 수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저희들은 이 실패자들의 군서지에서 수많은 타인을 만나고, 그들의 수많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가능성 속에 몸담고 있슴을 깨닫게 됩니다

<거두망창월 (擧頭望窓月) – 아버님께, 1977.9.19>

P136 지난 12일 어머님께서 혼자 빗속을 다녀가셨습니다. 입석 기차표를 끊고 "비가 오기에 생각나서" 찾아왔다고 하셨습니다.

<옥창 獄窓속의 역마 驛馬, 계수님께, 1977.10.4>

P137 하늘높이 바람 찬 연을 띄워놓으면 얼레가 쉴 수 없는 법, 안거(安居)란 기실 꿈의 상실이기 쉬우며 도리어 방황의 인고 속에서 상당한 분량의 꿈이 추구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창랑의 물가에서 – 아버님께, 1977.10.15>

P139 천수고 불감불국 (天雖高 不敢不局 ,雖 비록 수, 敢 감히 감, 局 판 국) 하늘이 비록 높아도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으며,
막견어은 막현어미 (莫見於隱 莫顯於微 , 莫 없을 막, 隱 숨을 은, 顯 나타날 현, 微 작을 미), 아무리 육중한 벽으로 위요(圍繞, 圍 둘레 위, 繞 두를 요)된 자리라 하더라도 더 높은 시점에 오르고 더 긴 세월이 흐르면 그도 일식처럼 만인이 보고 있는 자리인 것을…

저에게 주어진 이 작은 일우 (一隅, 隅 모퉁이 우)가 비록 사면의 벽에 의하여 밀폐됨으로써 얻어진 공간이지만, 저는 부단한 성찰과 자기 부정의 노력으로 이 닫힌 공간을 무한히 열리는 공간으로 만들어감으로써 벽을 침묵의 교사로 삼으려 합니다. 필신기독 (必愼其獨, 愼 삼갈 신) 혼자일 수록 더 어려운 생각이 듭니다.

<자신을 가리키는 손가락 – 부모님께, 1978.3.2>
P147 언청이가 밤중에 그 자식을 낳고서는 급히 불을 들어 비춰보았다. 서두른 까닭인즉 행여 자기를 닮았을까 두려워서 였다.
장자에서 읽은 글입니다. 비통하리만큼 엄정한 자기응시, 이것은 그대로 하나의 큼직한 양심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가르친다는 것은 희망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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