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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 김수환 - 김수환 추기경 회고록
김수환 구술, 재단법인 가톨릭평화방송 엮음, 조한건 감수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11월
평점 :

당신 뜻대로 하소서!
몇 번이고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었다. 십자가를 벗어 던지고 싶었다. 그러나 결단의 용기를 내지 못하였다. 결국 "당신 뜻대로 하소서."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죄인이다. 허물이 많은 사람이다. 하느님 앞에서는 고개도 들 수 없는 대죄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오히려 이런 죄와 허물을 통해서 바오로 사도가 죄 많은 곳에 은총도 충만히 내렸다(로마 5,20 참조)고 하신 대로 당신의 사랑, 당신의 자비, 당신의 그 풍성한 용서의 은총을 깨닫게 하여 주셨다. (p.412)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얼마나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그 사랑을 일상에서 얼마나 나누고 있을까? 매주 미사를 드리며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가까운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조차 놓칠 때가 많다. 머리로는 사랑과 나눔의 중요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음을 느낀다. 특히 요즈음에 나는 불평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온
것 같다. 그런 중 만나게 된 책이 바로 가톨릭출판사의 『추기경 김수환』.
사실 『추기경 김수환』을 읽고자 시작한지는 꽤 되었는데, 중간중간
김수환 추기경의 『바보가 바보들에게』를 다시 읽기도 했고. 김수환추기경 사랑과 나눔공원에 다녀오기도
했던터라 기록을 남기는 게 늦어졌다.
김수환 추기경은 한국 가톨릭교회를 대표하는 성직자이자, 종교를 넘어
많은 사람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분이다. 아마 많은 분들이 그 이름만으로도 그의 따뜻함과 겸손, 사랑을 떠올릴 것이다. 이 책은 그의 유년기부터 사제로서의 삶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야기도 담고 있어, 마치 그를 천천히 만나보는 기분이
들었다. 때때로는 희생과 양보의 마음을 느끼기도 했고, 종교인이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이로서의 고민과 방향, 또 신앙의 선배로서 후배들을 향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 등을
고루 담고 있어서 읽는 내내 나를 돌아보고, 생각하고, 깨닫는
등 배우는 것이 많았다.
『추기경 김수환』을 읽으며 우리에게 주어진 몫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나는
내 주변인들의 마음을 얼마나 알아차리고 있을까? 나와 다른 사람에게도 존중하는 마음을 보이고 있을까? 나의 손을 필요로 하는 순간에 손을 내밀 수 있나.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나의 신앙에 대해, 나의 삶에 대해,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교회는 명동성당을 치외 법권 지역이라고 주장한 적도 없고, 그렇게
생각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지난 세월 동안 힘없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벼랑 끝에 몰려 성당을 찾아왔고, 이곳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p.356)
『추기경 김수환』이 특히 인상깊었던 까닭은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은 목자였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일제강점기, 학도병시절, 정치적
탄압, 종교의 분열 등 한국교회의 여러 위태로운 순간을 직접 겪으셨고,
그것을 통해 스스로를 만들어가고 종교인으로서 성장해가는 모습을 내내 관찰할 수 있었다. 그가
종교인으로서 겪어야 했을 고민과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겪어야 했을 고민이 겹쳐지며 자신의 삶과 소명을 어떻게 지켜냈는지를 느꼈다. 그의 사목 표어,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에 어쩌면 스스로는 빠져있던 것은 아닌지 가슴이 시렸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절대 그를 빼놓지 않으셨으리 생각하니 위안이 되기도 했다.
교회는 세상 밖에 머무는 곳이 아니라는 말을 깊이 떠올린다. 노동자, 농민, 재소자,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인간의 인권과 존엄성도 지키려 노력했던 그의 삶을 바라보며, 종교가 가져야 할 방향을 생각해본다. 종교가 단순히 신앙을 지키며
사는 것이 아닌,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곳이 되기를, 예수님처럼
가난한 이들의 편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우선 나부터도 주변을 외면하지 않으며 살아가기로 다짐해본다.
나는 정말 많은 시련과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에 비해 여러 가지 의미로 행복한 삶을 살았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기 위해 부모와 집 모든 것을 떠난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백배의 축복을 받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하셨다. 이
말씀 그대로, 본래는 다른 길을 가려다가 주님께서 어머니를 비롯해 이런저런 분들을 통해 알려주신 사제의
길을 살아온 나는 현세적으로도 백 배 아니 그 이상의 상을 받았다. (p.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