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번역합니다 - 고독해서 즐거운 번역가의 일
이진 지음 / 수오서재 / 202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깨달았다. 사랑할 때 우리는 번역한다는 걸.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대서양이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막막하기도 하고, 다른 언어를 사용해도 눈빛 몸짓만으로 마음이 하기도 한다. 사랑하지 않으면 기껏 말을 알아듣고도 당신 대체 무슨 소리를 하냐며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소리를 지르지 만, 사랑하면 침묵이 흘러도 마음이 감응하고 봄이 움직인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더 열심히 번역한다. (p.114)

아. 무슨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을 차곡차곡 눌러 담은 책이 있단 말인가.

천근만근 가기 싫은 출장길의 KTX안에서 나는, 이 책을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옆의 아저씨가 내리자고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기차가 멈춘지도 몰랐을 것이다. 언제인가 읽으며 “자, 어쩔래? 아직도 불안해하고 힘들어할래?”라고 물어주어 나를 더 존중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했던 책,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의 역자, 이진 번역가의 작가로서의 첫 책, 『아직도 번역합니다』는 그렇게 나에게 문장의 맛을 제대로 맛보았다.

작가가 처음 번역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서부터, 아이를 키우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이어온 일, 문장을, 책을 향하는 마음가짐까지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어 읽으며 나의 마음을 비추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그토록 지키려 애썼던 것을 지키지 못했다면 나는 얼마나 더 쓸쓸했을까. 제 엄마가 수시로 일 때문에 혼이 나갔어도 아이들은 잘 자라주었고,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일도 여전히 매일 새벽 나를 기다리고 있다. 지키려 애썼던 것들은 다 내 곁에 있다. 그러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P.79)” 이 문장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했다. 잠든 아이 곁을 빠져나와 조용히 책을 읽던 나의 새벽은, 피곤했어도 나를 살게 한 시간이었고, 그걸 알기라도 하는 듯 칭얼거림도 없이 자라준 나의 아이가 나의 양분이었던 시간들. 마치 그 시간들을 잘 살아왔다고,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물은 없었더라도 잘 해왔다고 해주시는 것 같아 눈물이 핑 돌았다.

『아직도 번역합니다』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작가님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우리의 다음 페이지를 알지 못하지만, 오늘 쓰는 페이지를 성실히 채운다면 내일의 페이지도 결코 “후지지 않을” 것이라고.

비록 지금의 나는 내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그리고 타인의 문장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자신도 아름답게 담아낼 수 있다는 작은 신념을 이 책을 통해 여러 번 확인하며, 그래도 언젠가는 나도 다시 나의 이야기들을 써보리라 생각하기도 했다.

올해가을은 유독 오락가락이다. 추워서 오돌오돌 떨고 돌아와 패딩을 꺼내어 입은 다음날엔 어김없이 땀을 쏟고, 5분만 걸어도 반팔과 긴 팔, 패딩과 바람막이 모두를 만난다. 변덕이 가득한 요즈음, 30년이라는 시간동안 같은 작업을 하며, 같은 마음으로 하루하루 자라온 이의 글은 자작자작한 감동과 깨달음을 준다. 아마 이 책을 만나는 모든 이들은 나처럼, 그녀의 꾸준함에 감탄하고, 그녀의 문장에 공감하고, 문장에 묻어나는 따스함에 코가 찡해질 것이다.

가을날의 햇살 같은 이 책을, 아무래도 나는 오래오래 곱씹게 될 것 같다.

콩국수를 먹을 때마다, 그녀의 귀여운 농담을 함께 떠올리며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