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히로부미의 계획 VS 안중근의 반격 - 교과서가 다 담지 못한 안중근 의거
류은 지음, 이강훈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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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친 군인들은 억울하고 분해서 못 살겠다며 울부짖었어. 몸에 난 상처보다 나라를 빼앗겼다는 사실이 더 참기 힘들었던거야. (p.131)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나는 역사서 등을 참 부지런히 읽고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더 몰라서, 더 어려워서) 특히 독립운동가들 관련 저서는 참 부지런히 읽는다. 아마 그 중 가장 많이 읽은 것이 “안중근”이 아닐까 싶다. 아이에게도 독서습관과 역사만큼은 일상으로 만들어주고 싶어서 일찍부터 역사그림책과 인물그림책을 노출했는데 늘 한결같이 아쉬웠다. 스토리에 치중해 “역사적 사실”이 다소 간소화되거나 미화되거나 신화화된다는 것? 물론 나의 짧은 지식탓에 풍성한 살을 붙여주지 못하는 탓이겠지만. 

 

그러던 찰나 이 책을 읽게 되었고, 너무 잘 정리된 덕분에 내가 완전 빠져들어 읽었다. 평소 책읽는 훈련이 되어있다면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이 책은 충분히 읽어낼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다정한 문체와 쉬운 풀이로 전혀 막힘없이 읽어지기 때문. 

 

이 책이 더욱 좋았던 이유는 우리나라만의 시선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아픈 역사이기도 하나 치욕의 역사이기도 한데, 그것을 내부에서만 바라보고 “침략당한”과거로만 본다면 발전이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때문에 우리가 침략을 당했는지, 그 즈음 세상은 어떻게 변하고 있었는지를 바라보는 시각도 필요하다. 100년이 지난 역사를 우리 아이들이 그저 아픔으로만 받아들이기 보다는, 새 길을 보는 현안을 가지기를 바라기에 이 책의 시각은 더욱 반갑다. 

 

단순히 안중근 의사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왜 안중근 의사가 그래야했는지, 세계에 불어닥친 변화의 바람이나 한반도를 흔든 열강들의 요구, 일본과 우리나라의 달랐던 태도 등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그래서 필연적이었던 그들의 선택을 함께 고민하게 하는 책이었다. 아마 그런 넓은 시야가 아이들이 읽기에 전혀 어렵지 않은 문체임에도 어른인 내가 읽기에도 지루함이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사실 어린이의 역사서를 출판하는 출판사 자체가 귀하다. 보통은 다른 그림책과 더불어 만들고, 어떤 곳은 그림책에 살짝 역사의 맛을 입힌다. 그래서 이 책은 더욱 귀하다. 아이들이 보다 넓은 시각에서 안중근의사를, 그때를 바라보게 하니 말이다. 사실 <책과함께어린이>는 우리나라 첫 어린이역사서 출판사이기도 하고, 바른 지식 전달을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때로는 꽤나 어렵고 묵직한 책을 만나게 되곤 하지만, 그런 길을 걷는 이들도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더욱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이 시리즈들을 읽으셨으면 좋겠다. 그래야 바른 것을 전하는 책이 계속 나올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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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간첩단 조작 사건
황병주 외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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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잔인하고 교활한 것 중의 하나는 가족의 생명을 담보로 한 협박이었다. (p.78)

 




사실 이 책은 이미 읽은지 꽤나 시간이 흘렀다. 알고 있었던 사건이라 단숨에 읽어내리고, 이거를 왜 꼬꼬무에서 다루지 않냐며 이야기도 했다. - 혹시 내가 못 본 사이 다뤄주었나 찾아보니 여전히 없는 듯 하다. 장트리오, 제발 이것을 다루어주오. - 그런데도 이제야 리뷰를 남기는 것은 (엄청난 일을 많이 겪고 오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진짜 잘 쓰고 싶었다. 진짜 누구라도 이 책이 읽고 싶어질만큼 좋은 리뷰가 쓰고 싶어서였다. 그래야 단 한 명이라도 더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이제서야 내 스스로도 안타까운 마음이 더 드는 비루한 글이지만, 단 한사람의 마음이라도 두드릴 수 있기를 바래본다.  

 



어느날 갑자기 일상에서 끌려가, 단 일주일만에 간첩으로 오인을 받는다면? 그렇다할 증거는 커녕 오히려 부실수사라고 말할 여러 거리들을 겨우 긁어모아놓고도 수십명을 무장간첩단으로 탈바꿈하였고, 사형에 처했으며, 잔인하고 소름도는 고문까지 행했다. 요즘 세상 같으면 파란지붕 청원게시판이 떠들썩했을테고 해외토픽에 헤드라인으로 등장하고도 남을 일이다. 그런데 그들이 겨우 무죄임을 판명받는데 걸린 시간이 무려 37년이다. 그 37년동안 누군가는 사형을 선고 받았고, 누구는 농약을 마셨으며, 세상에서 소외되어 살아왔다. 과연 강산이 4번이나 바뀌는 세월 후에 그들의 죄명이 사라진다고 한들 그들의 인생도 깨끗해지는 것인가. 

 



종종 의외의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치공작이라는 의심을 하곤 하는데, 그 버릇은 사실 현대사 책들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생긴 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역사적으로 굵직한 사건이 생길 때마다 그것을 대항이라도 하듯 빅 이슈가 발생하고 굵직했던 사건은 꼬리를 감춰버리곤 했다. 이 사건 역시 부마항쟁을 덮기 위해서 등장하기라도 한 듯 어느날 갑자기 빵! 하고 터진 슬픈 뉴스거리는 아니었나 생각해보면 가슴이 묵직해진다. 

 

 



무죄로 판결한 원심 판단은 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가는 이들 3인의 피고인에게 배상 내지 형사 보상을 해줘야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삼척가족간첩단 사건으로 유죄를 받았던 다른 공동피고인들 역시 무죄가 선고되어야 하고, 이들에게도 국가배상 등을 하게 되는 상황이 심히 우려된다는 것이다. (p.198) 



 

2부를 읽는 내내 사실 꽤 많이 분노했는데, 검찰의 상고이유서를 읽으면서는 너무 화가나 책을 읽다말고 벌떡 일어났다. 국가가 배상을 해야하는 것이 두려워 무죄를 인정하면 안된다니! 과거사를 정리하겠다고 뚜껑을 연 사건을 두고 또다시 부끄러운 짓을 한다. 그러면서도 “나라를 위해서”라는 말을 참 쉬이 갖다쓴다. 한복입던 시절 대의를 위한다는 말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신하들이 나라를 위한다는 말로 주머니를 채우는 이들의 선조라도 되는 걸까. 소위 나랏밥을 먹는다는 이들이 무엇을 위해 사건을 조작하여 수십명의 인생을 짖밟고, 어느 날은 유죄를 어느 날은 무죄를 선고한걸까.  

 



오늘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책을 펼치며 또 한번 무거운 마음이 된다. 혹시나 하여 인터넷창에서 삼척간첩을 검색해보고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이 억울한 사건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지 못했구나,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많은 이들이 알아야하는데... 하는 아쉬움에 쉬이 문장이 이어지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나기부터 재심까지, 군더더기 없이 현상만을 다루었는데도 제법 도톰한 책이 하나 역어졌다. 만약 피해자들의 회환까지 담았다면 이 책은 훨씬 더 두꺼워졌을 것이다.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읽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이 사건은 공권력이라는 세글자를 계속해서 짚어보게 만든다. 세월 속에 묻혀버렸을 사건이지만 이 사건이 세상을 울리는 경종이 되기를 바란다. 판사, 검사들 책상 위에 금색저울이 아닌, 공권력 남용으로 피해받은 이들의 사건명이 올려져있기를 바래본다. 아주 작은 일이지만, 원래 세상은 그렇게 작은 것들로부터 바뀌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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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유 반달 그림책
사이다 지음 / 반달(킨더랜드)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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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구마를 먹을 때마다 “고구마구마”, “맛있구마~”를 외친다.

2. 고구마구마 책을 가지고 온다.

3. 고구마구마를 읽으며 고구마를 먹는다. (누군지 찾아가며)

 

아마 고구마구마를 읽은 집이라면 이런 비슷한 루틴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듯 하다. 우리집도 여전히 아주 촌스러운 말투로 맛있구마~를 외쳐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뭔 일이람! 조금 더 고구마스럽게(?) 읽어야 할 책이 하나 더 탄생했으니, 그 이름하야 “고구마유”. 지난번 책을 워낙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아무 말 없이 책상 위에 얹어놓았더니 어느새 스스로 가지고가서 후루룩 읽어버렸다. 전작에서는 까막눈이었던 꼬맹이가 자라, 스스로 고구마유를 혼자 소리내 읽더니 내 옆에 와서 깔깔거리며 말한다. “고구마 좀 삶아봐유”. 그렇게 우리는 고구마를 먹으며 고구마구마와 고구마유를 읽었다. 

 

일단 이 고구마시리즈들을 강력추천하는 첫번째 이유는 일러스트가 너무나 재미있다. 익살 넘치는 그림체, 표지의 집 스티커 등 아이들에게 저절로 웃음을 선물하기에,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도 이 책만큼은 읽어달라고 할 듯하다. 책 좋아하는 아이? 말해 뭐해~. 

자, 두번째 이유! 정말 끝도 없이 방귀들이 나온다. 아마 어른들은 알거다. 똥이나 방귀만큼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는 소재가 또 있을까. 이 책은 이름도 방귀, 일러스트도 연신 방귀다. 그래서 조금만 연기력을 가미해 읽어준다면 단숨에 온 동네 꼬마들에게 인기를 얻게 될 것이다. 

세번째 이유이자, 우리집에서 가장 인기 있던 이유는 “나눌 이야기가 많다”는 거다. 사실 우리집은 책을 읽으며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려보기도 한다.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위로 위로 올라가는 고구마를 10개쯤 그렸고, 주렁주렁 매달린 고구마도 잔뜩 그렸다. 그리고 우리가 고구마가 되어 생성부터 탈출(캐지기)까지 동작을 해보기도 했다. 책 한권으로 두시간을 넘게 놀 수 있다니! 이런 집콕시대에 완전 감사하구마유~ 

 

마침 집에서 고구마를 많이 먹는 계절이 왔다. 생활하는 그 모든 순간이 교육이고 추억이라고 했던가. 아이와 함께 “고구마구마”에 나오는 다양한 조리법으로 고구마를 먹어보기도 하고, “고구마유”에 나오는 방귀권법들로 목적지에 이르는 놀이도 해보시기를 권해본다. 아마 그 순간, 우리집처럼 신나고 즐거운 고구마세상이 열리게 될 것이다. 

 

아, 루틴을 하나 추가해본다. 

4. 고구마를 먹고 만난 방귀가 누군지 이야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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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시티 Rome City - The Illustrated Story of Rome
이상록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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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길은 혈관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육로와 해로, 이 두 길은 건강한 혈관이 혈액순환을 촉진하듯 문명세계에 사람과 자원, 생각과 기술을 순환하게 해주었다. (p.195)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이 말은 꽤 유명한 말이기도 하기만, 여러가지 의미에서 맞는 말이라는 생각도 든다. 단순히 “이동”의 개념을 넘어서 문학, 미술, 철학같은 것 역시 로마를 빼놓고서는 그 의미나 가치를 이야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도움을 얻을만한 문헌들은 사실 너무 방대하거나, 세분화된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일 수도 있지만 방대한 책은 읽다보면 길을 잃게 되었고, 세분화된 것들을 읽다보면 한가지에 치중하게 되는 게 많아 늘 읽어도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게 로마였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고, 이 책을 읽는 내내 켜켜히 쌓아진 로마의 시간들을 파노라마처럼 만났다고 말하고 싶다.   

 




 

새 시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중세인이 생각하기에 세계는 신이 만들었다. 세상 만물은 신의 의도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었고, 모든 인과관계는 신의 의지로 설명되었다. 인간의 삶은 신이 정해준 길을 따라가거나 정해진 결말을 기다리는 것에 가까웠다. 이에 반헤 고대의 신은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이거나 자연의 섭리에 대한 비유에 가까웠다. 나머지는 인간이 제 힘으로 혹은 운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만들어가야했다. 로마인들의 법과 제도, 철학, 공공 인프라, 문학과 미술에서 이루어낸 성취는 여기에 기반을 둔 것이다. (p.383)


 

언제인가 유럽을 다녀온 친구가 말했다. 길에서 동냥하는 거지도 잘 생겼고 화장실 조차도 고대 건축기술을 시전하고 있는 곳이라고. 어쩌면 이 친구의 말은 우스개소리지만, 로마를 이야기하는 완전한 문장이라는 생각도 든다. 도시 전체가 문화유적이니 당연히 그곳의 곳곳은 아름답고 대단할테고 거기에 속한 이들도 “있어보일” 것이다. 또 로마가 가지는 치명적인 단점(굳이 단점이라고 말하자면)인 인프라 확충이 어렵다는 점도 이야기하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로마를 살아가는 이들은 그런 불편을 기꺼이 감수한다. 그만큼 로마는 아름답고 특별한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로마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갈망은 한층 짙어졌다. 맙소사! 조금 더 알게 되니, 더 가고 싶은 건 뭐람. 

 


일단 이 책이 몹시 흥미로웠던 첫번째 이유는 책 전반에 걸쳐 로마의 곳곳이 일러스트로 담겨있다. 누군가는 사진이 더 좋다고 말하겠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 이미 사진으로 수없이 봐온 로마의 곳곳을 다시 일러스트로 만나니 로마감성이 그대로 묻어나는 느낌이었다. 한층 더 따뜻하게 느껴지고 한층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봤다는 느낌이 든달까. 

 


담백히 풀어나가는 이야기도 너무 좋았다. 사실 서양의 역사서나 미술사 책을 보다보면 살짝 과하다는 느낌이 들때가 있는데 (그야말로 대서사시) 이 책은 그런 게 전혀 없다. 소금도 바르지않고 담담히 구워낸 김같다고 할까? 그래서 로마를 더욱 생동감있게, 포장없이 바라보게 한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무렵, 나는 인생의 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어쩌면 꽤 오랫동안 고민해온 일이었는데 실천하지 못하고 살다가 문득 번개라도 맞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어쩌면 그 모든 일들이 계획처럼 시행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 모든 것들을 후회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오늘만을 본다면 엄청난 큰 순간이지만, 인생전체를 본다면 그저 한 순간이지 않겠는가. 로마의 순간순간이 이렇게 묵직한 이야기로 담기듯, 나의 순간순간도 그렇게 되리라. 

 




죽음을 잊지마라. 그대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뒤를 돌아보라. 지금은 여기 있지만 그대 역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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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우리돌의 바다 - 국외독립운동 이야기 :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 편 뭉우리돌 1
김동우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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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역사였고, 이젠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버린 이야기였다. “

 

꽤 오랜만에 책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온 것같다. 개인적으로 너무나 바쁘고 정신이 없는 두어달을 보내다보니, 평생 들여온 습관이라 생각했던 독서도 할 겨를이 없더라. 약간 폭풍의 눈에서 벗어나고 돌아보니 기록하는 것도, 숨이라도 쉴 겨를이 있어야 가능한 것인가 싶어졌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숨이라도 쉴 겨를이 있어야”하는 마음이 나를 괴롭혔다. 어쩌면 그 시대의 역사는 숨쉴 겨를도 없어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잊혀진 시간사이에 있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 그나마 돌아볼수 있는 아픔은 아닐까. 

 

국화가 화병에 다 꽂히자 적막 속에서 빛이 들고 안온함이 퍼져나갔다. 한송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게 쌓이면 풍경을 바꿀 수 있다. 명이 생인 까닭이고, 생이 명인 이유다. (p.58)

 

나는 독서편력이 꽤나 심한데 역사분야의 도서를 좋아하고 즐겨읽는 편이다. 특히나 조선 후기에서 근현대사에 걸쳐진 책을 꽤나 많이 읽어온 것 같은데, 읽을 때마다 새롭고 다시금 가슴이 먹먹해지는 시절이 있다면 아마 그것은 독립운동 시기일 것이다. 읽을 때마다 아프다고 말하면서 나는 또 그것을 찾아읽는다. 한 명이라도 더 알아야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말을 철썩같이 믿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은 “뭉우리돌의 바다” 역시 그 시절을 이야기하는 책이기는 하나, 역사서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책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시리고 아픈 기억을 감각적인 사진에 담아내 치유로 이어가게 도와주는 책이었다고 하면 작가님이 섭섭하실까. 아무튼 나는 이 책을 “인도, 맥시코. 쿠바, 미국 등에서 아물지 못하고 있었던 이들의 상처에 딱지를 앉혀주는 책”이라고 기록해두고 싶다. 

 

존재의 역사가 더 확고하고 뚜렷해지길 바라며 셔터를 눌렀다. 언어가 아닌 가슴으로 진심을 전달할 수 밖에 없는 그 옛날 그들의 답답하고 난처한 심정이 이러지 않았을까. (p.173)

 

사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많이 울었다. 사진작가라는 사람이 글은 왜 이렇게 잘 쓰며, 그들의 사연은 또 왜 이렇게 굽이굽이 아픈 것인지 어떤 날은 한장도 채 읽어내지 못하고 엉엉 울었다. 때로는 그들의 이야기에 내 마음을 기대어 울었고, 어떤 날에는 문장들이 내 발목을 잡아 넘어지는 기분으로 울었다. 아마 이 책은 쓴 사람도, 쓸 것을 제공한 사람들도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차마 울지도 못했던 시간들을 풀어내가며 참아왔던 울음을 꺽꺽 뱉어내고, 그것을 주워담는 이도 같이 울며 담고, 다시 같이 울며 글씨를 이어가는. 

 

어느 페이지에서 작가는 무엇을 보자고 여기까지 왔더냐고, 비루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쫒아 남루한 현재를 확인하고자 함이었냐고, 아니면 역사학자들이 미덥지 못해 혹시 모를 다른 흔적이라도 발견하고자 했더냐고. 그리고 그는 전자도 후자도 아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을 저녁노을, 존재했고 존재하고 있으며 존재할 바다를 보기 위해서였다며 대답이 없는 하늘과 바다와 달에게 묻고 싶은 게 많다고한다. 그 문장을 읽으며 나는 깨달았다. 어쩌면 뭉우리돌 하나가 되어 사라져간 이들 역시, 역사에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남기고자 했기보다는 그저 살아왔고, 살아야하고, 살아야 할 우리들을 위해 자신을 불꽃으로 태웠을 뿐임을, 모두가 불꽃이 되어 하나의 훼를 만들었을 뿐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를 불꽃으로 태워버렸을지언정 우리는 그들을 순간 빛나고 사라지는 불꽃으로 기억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그 순간순간의 기억이, 기록이 지금을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임을 잊지 말아야한다. 

 

힘든 순간 이 책을 만났고, 이 책 덕분에 많이 울 수 있었다. 나도 이런데 이 책의 주인공인 이들은, 또 그의 가족인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만났을까. 사진 안에, 사진 너머의 이야기들을 가득담아 이 책을 세상에 내놓은 작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사실 리뷰를 쓰면서 책이 좋다는 말은 종종 하지만, 꼭 이 책을 읽으라는 말은 잘 하지 않는다. 내게 좋은 책이라고해서 남에게도 좋고, 내게 나쁜 책이라고해서 남에게도 나쁘리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두고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꼭 한번 읽어보시라고. 부디 이 책을 만나고, 책 안에서 잊혀졌지만 흐르고 있는 시간들을 만나시라고. 애니메이션 “코코”에 보면 누군가 기억하지 못하는 영혼은 “죽은 자의 땅”을 넘지도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수많은 뭉우리돌을 기억해야한다. 자신의 삶을 불꽃처럼 태우느라 어느 시간에, 어디즈음에 머물러있는지도 모를 그들을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 살면서 한번은 헤메일 나를 위해서도. 

 

몰라서 기억할 수 없었던 시간들, 몰라서 감사할 수 없었던 이들이여 

“그대여 다시 반짝여라” (p.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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