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로마 시티 Rome City - The Illustrated Story of Rome
이상록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로마의 길은 혈관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육로와 해로, 이 두 길은 건강한 혈관이 혈액순환을 촉진하듯 문명세계에 사람과 자원, 생각과 기술을 순환하게 해주었다. (p.195)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이 말은 꽤 유명한 말이기도 하기만, 여러가지 의미에서 맞는 말이라는 생각도 든다. 단순히 “이동”의 개념을 넘어서 문학, 미술, 철학같은 것 역시 로마를 빼놓고서는 그 의미나 가치를 이야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도움을 얻을만한 문헌들은 사실 너무 방대하거나, 세분화된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일 수도 있지만 방대한 책은 읽다보면 길을 잃게 되었고, 세분화된 것들을 읽다보면 한가지에 치중하게 되는 게 많아 늘 읽어도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게 로마였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고, 이 책을 읽는 내내 켜켜히 쌓아진 로마의 시간들을 파노라마처럼 만났다고 말하고 싶다.
새 시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중세인이 생각하기에 세계는 신이 만들었다. 세상 만물은 신의 의도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었고, 모든 인과관계는 신의 의지로 설명되었다. 인간의 삶은 신이 정해준 길을 따라가거나 정해진 결말을 기다리는 것에 가까웠다. 이에 반헤 고대의 신은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이거나 자연의 섭리에 대한 비유에 가까웠다. 나머지는 인간이 제 힘으로 혹은 운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만들어가야했다. 로마인들의 법과 제도, 철학, 공공 인프라, 문학과 미술에서 이루어낸 성취는 여기에 기반을 둔 것이다. (p.383)
언제인가 유럽을 다녀온 친구가 말했다. 길에서 동냥하는 거지도 잘 생겼고 화장실 조차도 고대 건축기술을 시전하고 있는 곳이라고. 어쩌면 이 친구의 말은 우스개소리지만, 로마를 이야기하는 완전한 문장이라는 생각도 든다. 도시 전체가 문화유적이니 당연히 그곳의 곳곳은 아름답고 대단할테고 거기에 속한 이들도 “있어보일” 것이다. 또 로마가 가지는 치명적인 단점(굳이 단점이라고 말하자면)인 인프라 확충이 어렵다는 점도 이야기하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로마를 살아가는 이들은 그런 불편을 기꺼이 감수한다. 그만큼 로마는 아름답고 특별한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로마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갈망은 한층 짙어졌다. 맙소사! 조금 더 알게 되니, 더 가고 싶은 건 뭐람.
일단 이 책이 몹시 흥미로웠던 첫번째 이유는 책 전반에 걸쳐 로마의 곳곳이 일러스트로 담겨있다. 누군가는 사진이 더 좋다고 말하겠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 이미 사진으로 수없이 봐온 로마의 곳곳을 다시 일러스트로 만나니 로마감성이 그대로 묻어나는 느낌이었다. 한층 더 따뜻하게 느껴지고 한층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봤다는 느낌이 든달까.
담백히 풀어나가는 이야기도 너무 좋았다. 사실 서양의 역사서나 미술사 책을 보다보면 살짝 과하다는 느낌이 들때가 있는데 (그야말로 대서사시) 이 책은 그런 게 전혀 없다. 소금도 바르지않고 담담히 구워낸 김같다고 할까? 그래서 로마를 더욱 생동감있게, 포장없이 바라보게 한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무렵, 나는 인생의 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어쩌면 꽤 오랫동안 고민해온 일이었는데 실천하지 못하고 살다가 문득 번개라도 맞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어쩌면 그 모든 일들이 계획처럼 시행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 모든 것들을 후회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오늘만을 본다면 엄청난 큰 순간이지만, 인생전체를 본다면 그저 한 순간이지 않겠는가. 로마의 순간순간이 이렇게 묵직한 이야기로 담기듯, 나의 순간순간도 그렇게 되리라.
죽음을 잊지마라. 그대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뒤를 돌아보라. 지금은 여기 있지만 그대 역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p.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