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의 청년들 - 한국과 중국, 마주침의 현장
조문영 외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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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에 머문 삶의 모습은 그래도 꽤 다채롭다. 커뮤니타스를 생성해낼만한 에너지 자체가 소진된 삶들. 경이의 순간이 사라진 일상에 익숙해진 삶도 있다. 어떤 삶은 정상성의 궤도에서 탈선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다른 어떤 삶은 창업, 투자, 기술 혁신, 팬덤, 이주 등 다양한 방싱으로 문턱에 생기를 입힌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차별과 불평등에 좌절하고, 누군가는 공모한다. (p.17)

 


n포세대. 이게 요즘 아이들이란다. 그저 살아내기 위해 포기할 것이 많은 세대. 우리네 부모 세대만 해도 당연했던 결혼이나 출산이 우리 세대는 선택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되었고, 지금은 포기해야할 무엇인가라고. 돌아보니 나 역시도 무엇인가를 위해 당연히 다른 하나는 포기하고 살아온 것 같아서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고, 더 나은 가치를 위한 (적어도 스스로 판단하기에) 선택한 것에 대해 온 사회가 씁쓸해야 하냐는 회의적 시각도 있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이게 과연 한국과 중국의 청년들에 국한되는 이야기인가 싶어진다. 어쩌면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는 -숫가락 잘 들고 태어난 애들 제외하고- 모든 청년들의 이야기인 것 같다. 그래서 다소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희망에 가득차 앞을 향해 달려야 할 젊은이들이 왜 이렇게 문턱에서 헤메이고 있나. 우리의 “오늘”은 왜 이런 모습인가. 

 


쉐어주택, 여성전용주택. 나처럼 “나의 공간. 나의 생활”에 대한 욕심이 많은 이들에게는 참 힘겨운 거주공간이었을테다. 그들이라고 하여 공간에 대한, 독립생활에 대한 욕구가 없었을까. 이 부분들을 읽으며 참으로 안타까웠다. 또 그 속에서 위태로이 느끼는 불안과 남성들이 말하는 역차별까지. 집은 쉬어야 하는 공간인데, 집에서마저 피곤함이 이어지는 삶인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의 나는 “눈을 좀 낮추면 되지 않나”라는 시각을 좀 가진 사람이었는데, 문득 “이 이상 눈을 낮추면 생계가 위태롭지 않은가”하는 마음이 든다. 일부는 더 나은 삶을 살고자 다른 것을 포기한다지만, 그저 생존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삶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시리다.  

 


직업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에도 회의감이 들었다. 경제적 자원에 따른 기회의 불평등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인식된 채 성장해온 우리들은, 어린 시절부터 차별과 불평등을 교육받으며 성장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의 부모님이 내게 주신 경제적 자원을 불평할 생각은 없지만, 우리 아이도 그러한 불평등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는 사회라고 생각하니 아득하다. 우리 아이가 어른이 될 순간에도 달라질 것 없는 사회라는 생각에 씁쓸함만 남았다.  

 


침묵 당하는 동시에 침묵하는 K (p.258). 이 문장이 참으로 가슴아프게 다가왔다. 어쩌면 우리모두는 라서, 경계선에 서 있는 청년들에 대한 이 책이 이렇게 먹먹하다.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용의 둥지에서도 모두가 용이 되지도 못한다. 어제의 영광은 내일 옥살이가 될 수도 있고, 우주까지 날아갈 기세였던 재산은 땅굴도 파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듯, 우리가 지나온 어제의 영광이나 아픔 역시 무엇인가를 남긴다. 

 


규범과 과거를 거부하고, 새로움을 여는 세대들이 불안과 균열을 경험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허나 그들의 흔들림이 그들의 삶 자체를 흔드는 일은 아니기를 바래본다. 다음에 읽게 될 “요즘 아이들”책은 “살기 위해 포기해아 하는 삶”이 아닌 “더 나아지기 위해 선택하는 삶”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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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왜 사라졌는가 - 도시 멸망 탐사 르포르타주
애널리 뉴위츠 지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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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폼페이를 버리겠다고 결심하지 않았다. 그곳이 불더미 속에 묻힌 것은 거의 견딜 수 없는 상실로 느껴졌다. 그리고 많은 생존자들은 서둘러 다른 도시들에서 자기네 삶을 재건하고 그들이 잃어버린 공적 공간의 새로운 변형을 건설하는 데 헌신했다. (p.159/폼페이)

 

사실 처음 이 책을 받아들고 두가지 생각이 들었다. 최후의 날이 아닌, 도시 자체로의 폼페이를 드디어 제대로 알게 되겠구나, 하는 마음과 표지에서부터 르포르타주라고 적힌 지겨움이 가득할 것 같은 이 책을 내가 읽어낼 수 있을까하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두가지를 다 해냈다. 폼페이를 알게 되었고, 잘 읽어냈다. 평소 즐겨보는 다큐멘터리 한편을 시청하듯, 푹 빠져들어, 재미있게 말이다. (이거 왜 이제 읽었지?)

 

 

우리가 다름 장소의 거리를 걸을 때 우리는 다시 스스로를 발견한다. 더 좋을 수도 있고 더 나쁠 수도 있지만 말이다. (p. 97 / 차탈회윅)

 

발음조차 어려운 이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축에 속한다. 이 도시 이야기를 시작할 때 저자는 “먼 과거로 가는 입구”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처음엔 다소 시적인 표현이라 생각했으나 읽다보니 이는 정말 사실적인 표현이었다. 유목민들의 정착, 도구의 발달, 농경이나 사육, 사유재산 등 인류가 발달하는 그 모든 과정을 이 도시에서 다 만날 수 있다. 지금은 당연한 그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고대의 삶을 내가 쉬이 유추해볼 수는 없지만, 그것을 발견해주고 문헌화해준 이들이 있어 나는 작은 나의 집에 앉아서 고대의 그들을 만난다. 어쩌면 이것이 책의 가장 바람직한 기능이 아닐까. 도시는 도구이고, 조상이고, 우주론이고 역사라는 저자의 말이 깊은 공감을 가져온다. 

 

차탈회윅을 다 읽어갈 무렵부터 나는, 완전히 이 책에 빠져들어 도시들을 여행했다.

 

 

이 장소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도시가 딱딱하게 굳은 재 아래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로마 유적지들은 침식된 대리석 더미로 무너저 내렸거나 현대 도시 아래에 묻혀버렸다. 그러나 폼페이에서는 화려한 신전 봉헌물에서부터 구매자를 위한 가격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보존됐다. (p.104 / 폼페이)

 

사실 로마문명에 그닥 관심이 없는 이들도 폼페이는 알지도 모른다. 하루아침에 화산재에 뒤덮인 도시. 남녀가 끌어안은 화석(?)을 만들어낸 도시. 나 역시 폼페이를 역사적 의미보다는 하루아침에 사라졌다가 하루아침에 나타난 로마의 도시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바뀐 관점이 하나있다면 “사회화”라는 관점이다. “집”단위의 도시가 “거리”중심으로 변화하고 각기의 사회적인 건물들이 생겨나는 것. 그것이 현대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가. 넓게는 우리가 “문화”라 부르는 것들의 모체라고 생각한다면 로마문명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얼마나 큰가.  

 

 

“앙코르는 그 신전 가운데 하나가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거예요.” 

그 말이 맞다. 이 도시의 숨이 멎을 듯한 사원들에 대한 경탄을 참을 수 있다면 그것들이 기본적으로 흙으로 된 기단 위에 세워진 더 크고 화려한 신전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p.195) 

 

엄청난 문화유적을 품에 안고 정글로 사라졌고, 베트남군과 게릴라의 총질, 약탈에 의해 파괴되고 빼앗긴 도시. 개인적으로 앙코르는 아픔이 가득한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새로운 상식을 가장 많이 얻은 부분이 바로 앙코르였다. 그 아름다운 유적들만 바라보았던 나의 눈은 앙코르의 노동, 정치 등에 새로이 매료되었고 어쩌면 한 도시로의 집중이 어떤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유추하게 되었다고 할까. 오늘 다른 글을 쓰며 거론했던 “발전”의 어두운 뒷 모습을 앙코르에서도 만났다고 하면 나의 지나친 비약일까. 

 

 

아마도 이런 생각이 사람들로 하여금 도시를 떠나고 새로운 곳으로 옮겨가는 것을 더 쉽게 만들어주었을 것이다. 카오키아의 극적인 확장과 폐기를 생각할 때는 “폐쇄”라는 근본적인 관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p.279 / 카호키아)

 

네 도시 중 가장 생소했던 곳이 카호키아였다. 아마 이 도시가 가장 앞에 나왔더라면 생경한 마음에 이 여정을 마무리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도시를 만나는 동안 내내 도시의 가치관, 미술, 기술 등이 옮겨가는 과정과 그로 인해 도시까지 옮겨지는 것들을 보며 사람에게 있어서 문화가 얼마나 큰 가를 깨달았다. 그리고 사라져가는 것들이 얼마나 덧없는지도. (아, 이 사실주의 독서를 하면서도 덧없음을 논하는 나의 뇌여)

 

이 책을 편집한 이가 이 책에 대해 매우 완벽히 이해하고 있고, 매우 똑똑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이 파트를 읽으며 생각했다. 차탈회윅을 가장 앞에 넣고 카호키아를 가장 끝에 넣은 책을 덮은 후에 에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한상 제대로 받은 느낌을 얻었다고나 할까. 폼페이와 앙코르가 메인요리로 완벽한 것처럼, 차탈회윅은 에피타이저로써, 카호키아는 디저트로써 넘치도록 완벽했다. 

  

밤이 긴 계절이다. 소설책이나 에세이를 읽기에는 다소 긴 밤이다. 그럴 때 이런 책들을 만나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물론 이렇게 호흡이 긴 책을 읽으려면 자세도 여러번 바꾸어야하고, 고구마나 귤도 여러개 건들여야겠지만- 책을 덮은 후 책장을 쓸어보면서는 읽기를 잘했다고 여러번 생각하게 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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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앙스 - 성동혁 산문집
성동혁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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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 무심히 넘겨야 할 말은 아무것도 없다. (p.67)

 

그의 아네모네를 읽었던 날을 생각해본다. 좋은데 먹먹한 거. 그게 딱 내 감정이었을테다. 그리고 오늘 이 책을 만났다. 사실 읽어야 할 책이 많이 쌓여있던 상태라 일부러 바로 읽지 않고 미뤄두었다가, 한밤중 가벼운 책이 읽고 싶어 이 책을 선택했는데. 맙소사. 이 책은 그냥 책만 가벼울 뿐 묵직하다. 이야기도 묵직하고 문장도 묵직하다. 그런데 버겁지는 않다.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기라도 하듯, 휘리릭 하고 읽어진다. 

 

평문에 박연준 시인이 이런 말이 적었다. 울지 않는 슬픔이 우는 슬픔보다 슬픈 것을 아는 이의 글이라고. 성동혁의 슬픔은 차가운데 맑다고. 그래. 성동혁 시인의 글은 딱 그런 마음이다. 차가운데 맑고, 슬픈데 눈물은 흘려지지 않는다. 좋은데 먹먹하고 아픈데 이겨내진다. 물론 그는 수없이 자신의 목숨을 지고 이고 걸어온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글이 죽음이 묻어나냐고? 아니다. 오히려 그의 글은 삶이고 생이다. 속상한 일을 겪어 전날 눈물로 잠이 들었어도 웃는 얼굴로 다음 날을 맞이하고 또 하루를 살아내야하는 우리네 아침이다. 

 

어떤 시간은 내내 닿을 수 없을 것 같고

어떤 시간은 곧장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p. 182)

 

어젯밤 내내 이 문장이 내 마음을 마구 때렸다. 닿을 수 없는 어떤 시간을 단숨에 떠올렸으니 나는 어떤 시간에 닿기도 했고 닿지 않기도 했겠지. 지난밤 내내 마음을 둥둥 울린 이 문장 때문에 새벽에 잠에서 깨자마자 이 책을 다시 집어들었다. 해도 뜨기 전, 모닝커피를 마시며 다시 이 책을 훌훌 읽었다. 오묘한 것이 밤에 읽었던 감상과 새벽에 읽는 감상이 다르다. 밤엔 분명 눈물을 뚝뚝 흘렸는데, 아침엔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성동혁의 문장은 삶이다. 또 한번 죽음과 삶의 경계가 모호함을, 따로 떨어진 순간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러면서도 그의 문장은 늘 생을 마주하고 서 있음을 깨닫는다. 평생에 걸쳐 쓸쓸함을 학습해온 그는 다른 이들에게 말을 건다. 나는 쓸쓸했으나 당신들은 그러지말라고. 혼자인 줄 알았던 순간에 늘 기도하는 존재가 있었음을 깨달은 그가 말한다. 물리적으로 혼자라고해서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고. 그렇게 툭툭 던지는 문장에서 위로를 얻는다. 

 

 

사실 어젯밤 이 책을 펼쳐 10장도 채 읽기전에 생각했다. 

아, 글은 이런 사람들이 써야 하는구나. 나는 글 욕심내지말고 이렇게 맥주나 먹으며 독자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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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인의 위대한 패배자들 - 한니발부터 닉슨까지, 패배자로 기록된 리더의 이면
장크리스토프 뷔송.에마뉘엘 에슈트 지음, 류재화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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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투는 2000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탄복하지 않을 수 없는 기가 막힌 전략이었다. 한마디로 “가장 작은 부분까지 다 계획을 짜서 멋지게 실행한 전략, 전술의 진정한 구현”이었다. (p.24, 한니발) 

 


나는 이 책을 “역사뒷담화”라고 말해주고 싶다. 음, 정확하게는 1인자의 자리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이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잘 기록한 책이라는 설명이 정답이지만 굳이 뒷담화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패배자라는 단어에 묶여, “악인”이라는 색안경을 끼게 만들었던 이들의 이야기라서기도 하고 그만큼 흥미진진하기도 하다. 한니발, 클레오파트라, 베르킨게토릭스, 잔다르크, 몬테수마, 기즈, 콩데, 샤레트, 로버르티, 장제스, 트로츠키, 체 게바라, 닉슨. 이름만들어도 아마 그들이 묘사되는 모습이나 분위기를 떠올릴 수 있을 테다. 그래서 이 책은 더욱 재미있다. 우리가 흔히 알지만, 세월이 숨긴 주인공들의 이야기라서.

 


사실 현재에도 많다. 정상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이들 말이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는 재미나 교훈보다는 씁쓸함이 많아서 종종 뉴스창을 닫아버릴 때가 많다. 아마 그들도 먼 훗날에는 어떻게 기록되는지에 따라 다른 스토리를 만나게 되겠지. 


 

악명높은 장군 한니발, 혁명에 의해 살고 죽은 체 게바라, 당당한 여전사로 여전히 기록되는 광기의 잔다르크. 우리는 (아니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너무나 잘 알지만, 늘 세상이 만들어놓은 이미지로만 봐왔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생소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으며 새롭고 흥미로웠다. 아마 이제 나는 이들이 등장하는 영화나 책을 읽게 된다면 또 다른 재미를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상하이는 중일전쟁의 주요 전투지가 된다. 하지만 최대 학살은 12월에 난징에서 벌이진다. 중화민국의 총통이 된 장제스가 이 도시를 포기하라고 명령하고 난 다음이다. 하지만 한때 그는 그곳을 끝까지 수호하겠다고 맹세한 바 있었다. (p.410, 장제스) 

 


내가 굳이 이 문단을 기록한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역사의 한 끝이 이 문장 안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장제스의 오욕을 다른 것으로 기억할지 모르나, 나는 난징대학살이 장제스가 실패자로 변모한 한 고리라고 생각한다. 군인조차 버린 이 도시에서 일본은 강간, 살해 약탈을 자행했다. 그리고 이는 결국 세계 2차대전의 전조가 된다. 그럼에도 장제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전쟁에서 모두를 지킬수는 없겠지만, 그 누구의 목숨도 쉬이 여겨서는 안되고, 또 절대적으로 그래서는 안될 사람이 그들을 포기했다. 결국 그런 흔들림들이 모여 모든 것을 흔든다고 생각한다. 한때 반드시 수호하고자 했던 곳을 버린다는 것. 그러나 그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을 신념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실패한 후의 신념은 아집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많이 멈추며 읽었고, 많이 고민했다. 내 컨디션 탓도 있었으나, 헷갈리는 포인트들을 다시 찾아가며 읽는다고 더더욱 오래 걸렸다. 다 읽은 뒤에도 리뷰를 쓰기 위해 한번 더 읽어야했다. 분명 쉬운 책은 아니다. 그러나 그만큼 남기는 것도 많다. 어렵게 읽은 만큼 꽤 오래도록 내 머릿속에서 많은 생각을 빚어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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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친구들을 만나요 - 한국어린이교육문화연구원 ‘으뜸책’ 선정
하세가와 사토미 지음, 김숙 옮김 / 민트래빗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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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스스로 주저하는 모든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용기가 없는 어린이들은 당연하고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거나 만족하지 못하는 어른이들도 꼭 읽었으면 좋겠다. 

 

이전의 그림책도 사랑으로 읽었다. 이런 온도의 책들이 몇몇 있다. 작가의 <들판에서 다시만나>, <달밤의 노래>도 이 따뜻함을 고스란히 갖고 있고 <오늘 참 예쁜 것을 보았네>나 <나무할아버지와 줄넘기>에서도 비슷한 온기를 느낀다. 이 몇몇 책들은 동물들의 눈썹모양이나 입 모양이 다른 것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아이와 그런 소소한 재미도 느끼보면 좋을 듯하다. 

 

이 책은 새로 이사온 고양이의 이야기다. 낯선 동네에 이사와 친구들에게 자기를 소개하려다 우연히 친구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하나씩 얹는다. 친구들의 소망을 모두 챙기려다보니 결국 자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낯선 모습이 되어있다. 설상가상으로 사고까지 겪게 되고 결국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그 모든 것을 해결한다. 그리고 말한다. “안녕! 나는 고양이야”라고. 이전에 준비했던 채을 좋아하는, 패션센스가 좋은, 요리를 잘하는 등의 수식어는 내려놓고 말이다. 

 

사실 우리 꼬마는 착한 편이다. 그런데 나는 우리 아이에게 착하다는 하지 않는다. 아이가 내말로 인해 “스스로 버거운 착한아이”가 되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아마 이 책은 나처럼 고민하는 모든 부모의 마음을 대변할 것 같다. 스스로도, 아이도, 어른이 된 지인도- 그런 굴레 하나씩은 가지고 살지 않는가. 우리는 그 묵직한 굴레들을 쉬이 버리지 못하기에 때로는 어깨가 무겁다. 그래서 이 글의 서두에도 말했지만 주저하는 모든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 자신이 만든 굴레에 사는 이들이 꼭 읽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다가 꼬마에게 “너는 너 그대로 반짝반짝하는 아이야”라고 말해주었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고맙다고 대답한다. 아 아이야. 너는 어느새 이렇게 자라 너를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고마운 것이 되어갈까. 평생 당연한 것이라 받아도 되는 게 내 사랑일텐데.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도 마음이 울컥했다. 요즈음의 내가 일어났던 일들에 다소 위축되어 있었나보다. 아닌척 하느라 힘들었나보다. 내 본연의 모습에, 내 마음의 소리에 다시 귀기울이며 살기 위해 노력해야지. “있는 그대로 아름답고 충분한 김진희잖아”라는 당신의 말을 잊지말아야지. 

 

우리 아이도 사는 내내 스스로의 모습을 사랑하고,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가장 집중하는 아이로 살아가길.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모두 그렇게-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길. 

 

이 책은 그렇게- 스스로를 다시 사랑하게 하는 책이다. 

 

<독서대화>

1. 다른 친구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하기 싫은 것을 해본 적 있는지?

2. 그럴 때 마음이 어땠는지. 

3. 위에서 말한 몇몇 그림책들에서 같은 동물이 어떤 점이 다르게 묘사되었는지 이야기해본다. 

 

 

아. 꼬마는 “친구들과 잘 지내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나야”라고 말했다. 내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게 잘 자라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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