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에 머문 삶의 모습은 그래도 꽤 다채롭다. 커뮤니타스를 생성해낼만한 에너지 자체가 소진된 삶들. 경이의 순간이 사라진 일상에 익숙해진 삶도 있다. 어떤 삶은 정상성의 궤도에서 탈선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다른 어떤 삶은 창업, 투자, 기술 혁신, 팬덤, 이주 등 다양한 방싱으로 문턱에 생기를 입힌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차별과 불평등에 좌절하고, 누군가는 공모한다. (p.17)
n포세대. 이게 요즘 아이들이란다. 그저 살아내기 위해 포기할 것이 많은 세대. 우리네 부모 세대만 해도 당연했던 결혼이나 출산이 우리 세대는 선택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되었고, 지금은 포기해야할 무엇인가라고. 돌아보니 나 역시도 무엇인가를 위해 당연히 다른 하나는 포기하고 살아온 것 같아서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고, 더 나은 가치를 위한 (적어도 스스로 판단하기에) 선택한 것에 대해 온 사회가 씁쓸해야 하냐는 회의적 시각도 있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이게 과연 한국과 중국의 청년들에 국한되는 이야기인가 싶어진다. 어쩌면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는 -숫가락 잘 들고 태어난 애들 제외하고- 모든 청년들의 이야기인 것 같다. 그래서 다소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희망에 가득차 앞을 향해 달려야 할 젊은이들이 왜 이렇게 문턱에서 헤메이고 있나. 우리의 “오늘”은 왜 이런 모습인가.
쉐어주택, 여성전용주택. 나처럼 “나의 공간. 나의 생활”에 대한 욕심이 많은 이들에게는 참 힘겨운 거주공간이었을테다. 그들이라고 하여 공간에 대한, 독립생활에 대한 욕구가 없었을까. 이 부분들을 읽으며 참으로 안타까웠다. 또 그 속에서 위태로이 느끼는 불안과 남성들이 말하는 역차별까지. 집은 쉬어야 하는 공간인데, 집에서마저 피곤함이 이어지는 삶인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의 나는 “눈을 좀 낮추면 되지 않나”라는 시각을 좀 가진 사람이었는데, 문득 “이 이상 눈을 낮추면 생계가 위태롭지 않은가”하는 마음이 든다. 일부는 더 나은 삶을 살고자 다른 것을 포기한다지만, 그저 생존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삶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시리다.
직업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에도 회의감이 들었다. 경제적 자원에 따른 기회의 불평등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인식된 채 성장해온 우리들은, 어린 시절부터 차별과 불평등을 교육받으며 성장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의 부모님이 내게 주신 경제적 자원을 불평할 생각은 없지만, 우리 아이도 그러한 불평등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는 사회라고 생각하니 아득하다. 우리 아이가 어른이 될 순간에도 달라질 것 없는 사회라는 생각에 씁쓸함만 남았다.
침묵 당하는 동시에 침묵하는 K (p.258). 이 문장이 참으로 가슴아프게 다가왔다. 어쩌면 우리모두는 라서, 경계선에 서 있는 청년들에 대한 이 책이 이렇게 먹먹하다.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용의 둥지에서도 모두가 용이 되지도 못한다. 어제의 영광은 내일 옥살이가 될 수도 있고, 우주까지 날아갈 기세였던 재산은 땅굴도 파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듯, 우리가 지나온 어제의 영광이나 아픔 역시 무엇인가를 남긴다.
규범과 과거를 거부하고, 새로움을 여는 세대들이 불안과 균열을 경험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허나 그들의 흔들림이 그들의 삶 자체를 흔드는 일은 아니기를 바래본다. 다음에 읽게 될 “요즘 아이들”책은 “살기 위해 포기해아 하는 삶”이 아닌 “더 나아지기 위해 선택하는 삶”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