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때 무심히 넘겨야 할 말은 아무것도 없다. (p.67)
그의 아네모네를 읽었던 날을 생각해본다. 좋은데 먹먹한 거. 그게 딱 내 감정이었을테다. 그리고 오늘 이 책을 만났다. 사실 읽어야 할 책이 많이 쌓여있던 상태라 일부러 바로 읽지 않고 미뤄두었다가, 한밤중 가벼운 책이 읽고 싶어 이 책을 선택했는데. 맙소사. 이 책은 그냥 책만 가벼울 뿐 묵직하다. 이야기도 묵직하고 문장도 묵직하다. 그런데 버겁지는 않다.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기라도 하듯, 휘리릭 하고 읽어진다.
평문에 박연준 시인이 이런 말이 적었다. 울지 않는 슬픔이 우는 슬픔보다 슬픈 것을 아는 이의 글이라고. 성동혁의 슬픔은 차가운데 맑다고. 그래. 성동혁 시인의 글은 딱 그런 마음이다. 차가운데 맑고, 슬픈데 눈물은 흘려지지 않는다. 좋은데 먹먹하고 아픈데 이겨내진다. 물론 그는 수없이 자신의 목숨을 지고 이고 걸어온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글이 죽음이 묻어나냐고? 아니다. 오히려 그의 글은 삶이고 생이다. 속상한 일을 겪어 전날 눈물로 잠이 들었어도 웃는 얼굴로 다음 날을 맞이하고 또 하루를 살아내야하는 우리네 아침이다.
어떤 시간은 내내 닿을 수 없을 것 같고
어떤 시간은 곧장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p. 182)
어젯밤 내내 이 문장이 내 마음을 마구 때렸다. 닿을 수 없는 어떤 시간을 단숨에 떠올렸으니 나는 어떤 시간에 닿기도 했고 닿지 않기도 했겠지. 지난밤 내내 마음을 둥둥 울린 이 문장 때문에 새벽에 잠에서 깨자마자 이 책을 다시 집어들었다. 해도 뜨기 전, 모닝커피를 마시며 다시 이 책을 훌훌 읽었다. 오묘한 것이 밤에 읽었던 감상과 새벽에 읽는 감상이 다르다. 밤엔 분명 눈물을 뚝뚝 흘렸는데, 아침엔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성동혁의 문장은 삶이다. 또 한번 죽음과 삶의 경계가 모호함을, 따로 떨어진 순간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러면서도 그의 문장은 늘 생을 마주하고 서 있음을 깨닫는다. 평생에 걸쳐 쓸쓸함을 학습해온 그는 다른 이들에게 말을 건다. 나는 쓸쓸했으나 당신들은 그러지말라고. 혼자인 줄 알았던 순간에 늘 기도하는 존재가 있었음을 깨달은 그가 말한다. 물리적으로 혼자라고해서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고. 그렇게 툭툭 던지는 문장에서 위로를 얻는다.
사실 어젯밤 이 책을 펼쳐 10장도 채 읽기전에 생각했다.
아, 글은 이런 사람들이 써야 하는구나. 나는 글 욕심내지말고 이렇게 맥주나 먹으며 독자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