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폼페이를 버리겠다고 결심하지 않았다. 그곳이 불더미 속에 묻힌 것은 거의 견딜 수 없는 상실로 느껴졌다. 그리고 많은 생존자들은 서둘러 다른 도시들에서 자기네 삶을 재건하고 그들이 잃어버린 공적 공간의 새로운 변형을 건설하는 데 헌신했다. (p.159/폼페이)
사실 처음 이 책을 받아들고 두가지 생각이 들었다. 최후의 날이 아닌, 도시 자체로의 폼페이를 드디어 제대로 알게 되겠구나, 하는 마음과 표지에서부터 르포르타주라고 적힌 지겨움이 가득할 것 같은 이 책을 내가 읽어낼 수 있을까하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두가지를 다 해냈다. 폼페이를 알게 되었고, 잘 읽어냈다. 평소 즐겨보는 다큐멘터리 한편을 시청하듯, 푹 빠져들어, 재미있게 말이다. (이거 왜 이제 읽었지?)
우리가 다름 장소의 거리를 걸을 때 우리는 다시 스스로를 발견한다. 더 좋을 수도 있고 더 나쁠 수도 있지만 말이다. (p. 97 / 차탈회윅)
발음조차 어려운 이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축에 속한다. 이 도시 이야기를 시작할 때 저자는 “먼 과거로 가는 입구”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처음엔 다소 시적인 표현이라 생각했으나 읽다보니 이는 정말 사실적인 표현이었다. 유목민들의 정착, 도구의 발달, 농경이나 사육, 사유재산 등 인류가 발달하는 그 모든 과정을 이 도시에서 다 만날 수 있다. 지금은 당연한 그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고대의 삶을 내가 쉬이 유추해볼 수는 없지만, 그것을 발견해주고 문헌화해준 이들이 있어 나는 작은 나의 집에 앉아서 고대의 그들을 만난다. 어쩌면 이것이 책의 가장 바람직한 기능이 아닐까. 도시는 도구이고, 조상이고, 우주론이고 역사라는 저자의 말이 깊은 공감을 가져온다.
차탈회윅을 다 읽어갈 무렵부터 나는, 완전히 이 책에 빠져들어 도시들을 여행했다.
이 장소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도시가 딱딱하게 굳은 재 아래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로마 유적지들은 침식된 대리석 더미로 무너저 내렸거나 현대 도시 아래에 묻혀버렸다. 그러나 폼페이에서는 화려한 신전 봉헌물에서부터 구매자를 위한 가격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보존됐다. (p.104 / 폼페이)
사실 로마문명에 그닥 관심이 없는 이들도 폼페이는 알지도 모른다. 하루아침에 화산재에 뒤덮인 도시. 남녀가 끌어안은 화석(?)을 만들어낸 도시. 나 역시 폼페이를 역사적 의미보다는 하루아침에 사라졌다가 하루아침에 나타난 로마의 도시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바뀐 관점이 하나있다면 “사회화”라는 관점이다. “집”단위의 도시가 “거리”중심으로 변화하고 각기의 사회적인 건물들이 생겨나는 것. 그것이 현대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가. 넓게는 우리가 “문화”라 부르는 것들의 모체라고 생각한다면 로마문명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얼마나 큰가.
“앙코르는 그 신전 가운데 하나가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거예요.”
그 말이 맞다. 이 도시의 숨이 멎을 듯한 사원들에 대한 경탄을 참을 수 있다면 그것들이 기본적으로 흙으로 된 기단 위에 세워진 더 크고 화려한 신전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p.195)
엄청난 문화유적을 품에 안고 정글로 사라졌고, 베트남군과 게릴라의 총질, 약탈에 의해 파괴되고 빼앗긴 도시. 개인적으로 앙코르는 아픔이 가득한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새로운 상식을 가장 많이 얻은 부분이 바로 앙코르였다. 그 아름다운 유적들만 바라보았던 나의 눈은 앙코르의 노동, 정치 등에 새로이 매료되었고 어쩌면 한 도시로의 집중이 어떤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유추하게 되었다고 할까. 오늘 다른 글을 쓰며 거론했던 “발전”의 어두운 뒷 모습을 앙코르에서도 만났다고 하면 나의 지나친 비약일까.
아마도 이런 생각이 사람들로 하여금 도시를 떠나고 새로운 곳으로 옮겨가는 것을 더 쉽게 만들어주었을 것이다. 카오키아의 극적인 확장과 폐기를 생각할 때는 “폐쇄”라는 근본적인 관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p.279 / 카호키아)
네 도시 중 가장 생소했던 곳이 카호키아였다. 아마 이 도시가 가장 앞에 나왔더라면 생경한 마음에 이 여정을 마무리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도시를 만나는 동안 내내 도시의 가치관, 미술, 기술 등이 옮겨가는 과정과 그로 인해 도시까지 옮겨지는 것들을 보며 사람에게 있어서 문화가 얼마나 큰 가를 깨달았다. 그리고 사라져가는 것들이 얼마나 덧없는지도. (아, 이 사실주의 독서를 하면서도 덧없음을 논하는 나의 뇌여)
이 책을 편집한 이가 이 책에 대해 매우 완벽히 이해하고 있고, 매우 똑똑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이 파트를 읽으며 생각했다. 차탈회윅을 가장 앞에 넣고 카호키아를 가장 끝에 넣은 책을 덮은 후에 에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한상 제대로 받은 느낌을 얻었다고나 할까. 폼페이와 앙코르가 메인요리로 완벽한 것처럼, 차탈회윅은 에피타이저로써, 카호키아는 디저트로써 넘치도록 완벽했다.
밤이 긴 계절이다. 소설책이나 에세이를 읽기에는 다소 긴 밤이다. 그럴 때 이런 책들을 만나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물론 이렇게 호흡이 긴 책을 읽으려면 자세도 여러번 바꾸어야하고, 고구마나 귤도 여러개 건들여야겠지만- 책을 덮은 후 책장을 쓸어보면서는 읽기를 잘했다고 여러번 생각하게 될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