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대화법 - 상처받지 않고 상처 주지 않는 소통의 기술
임정민 지음 / 서사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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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목적은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을지라도 상대와 효과적으로 소통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있다고 했듯이,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안 하느니만 못한 상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정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좋은 말로 표현하자. (p.128) 



 

어른의 대화법. 사실 책 제목을 보고 걱정이 먼저 들었다. 과연 나는 어른의 대화를 하는가, 생각해보니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책을 읽다 두들겨 맞는 기분이 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조금 두들겨 맞은 기분이었고,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하는 문장에서 섣불리 '예', '아니오'를 대답할 수 없던 망설임이 나의 시작이었다면 이 책을 닫으면서는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떠올릴 수 있었다면 이 책이 내게 준 효과는 분명한 것 아닐까. 

 


사실 우리는 수많은 마음 도서에서 '나'를 찾으라는 말을 들어왔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가 '나'를 찾고 싶지 않아 안 찾는 것일까? 아니. 못 찾는 거다. 사실은 나를 제일 찾고 싶은 사람은 나다. 그런데 몇몇 책은 굉장히 모호한 말로 나를 찾는 법을 제시한다. 아. 뜬구름이여. 반해 이 책은 보다 세분된 개념을 제시해준다. 부모 자아(P), 어른 자아(A), 아이 자아(C)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는 방법이 꽤 명확해서 순간순간 내 마음이 어디에 치우치는지를 꽤 많이 생각했다. 타인의 언어나 행동에서도 '아 지금 저 사람이 아이자아구나. 이런 마음으로 한숨 기다려주자'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를 바탕으로 양육 태도와 성향을 비교해둔 부분이 가장 크게 와닿았다. 특정 문장이나 말로 이 부분을 다 옮기기는 어렵지만, 나의 성향이나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고, 또 순간적 상황에서 PAC을 생각해본다면 아이와 필요 없는 감정 소모를 꽤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사람은 다 다른데, 부모·자식인들 어찌 같을까. 이 책이 가장 좋았던 점을 꼽으라면 “가장 객관적이기 어려운 아이와 나를 나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한 칸 띄우기를 제공하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르기 때문에 싸우기도 하지만 다르기 때문에 상호보완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다름이 문제가 아니라 그 다름을 대하는 소통방식 때문에 부딪히고 싸우는 일이 많다. (p.21)

 



사실 개인적으로 타인에게 권하기 제일 힘든 책이 실용서적이나 자기계발서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아무리 좋았어도 타인에게 가서 닿지 않으면 그저 문장 쓰레기가 돼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히 이 책을 추천해보자면, 비대면으로 누군가와 소통하는 게 많은 요즘 특히 도움 될 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만나지 않고 소통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오해도 많아질 수 있는데, 이를 현명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방법을 많이 제시해주었다. 저자는 원래도 유명한 소통전문가이지만, 이 책을 통해 “요즈음의 소통”을 가장 잘 이해하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한걸음 물러선 느낌의 코치라 더 좋았다. 사실 어떤 책들은 읽고 나면 채 소화를 할 수 없을 때도 있는데, 조금 거리를 두고 가볍게 얹어주는 느낌이라 훈수나 충고라기보다는 “도움” 느낌이랄까. 

 



 

누군가와의 소통은 나를 드러내는 일이다. 만약 어느 외딴섬에서 혼자 산다면 우리는 사람과 소통을 할 필요도 없고 말을 잘해야 할 이유도 없다. (p.63)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뒤돌아 후회할 수도 있는, 돌이킬 수 없는 말을 늘 경계하자. (p.128)

 


“상처받지 않고 상처 주지 않는 소통의 기술”. 어쩌면 우리가 가장 간절히 바라지만, 사실은 참 어려운 말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생각해본다. 나도 타인도 조금 더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 감정을 조금 내려놓기. 이왕이면 긍정에 가까운 단어들을 찾아 말하는 연습을 하기. 이렇게 하나씩 구체화해간다면 나의 언어는 조금 더 성숙해지지 않을까. 여전히 휘청이는 나의 삶도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고. 

 



외딴섬에 살지 않기에 나 자신도 고슴도치가 되지 않기를, 고슴도치들에게 상처받지 않을 만큼 단단한 내가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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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불태우다 - 고대 알렉산드리아부터 디지털 아카이브까지, 지식 보존과 파괴의 역사
리처드 오벤든 지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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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이 대단한 힘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수집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은 가치 있는 일이고, 그것의 상실은 문명 쇠퇴의 조기 경보일 수 있다는 정신이다. (p.65)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기분이 묘했다. 책을 불태우다니! 물론 상징적인 말이겠지만, 늘 져버린 문화도 문화로서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내게는 참 어려운 말이다. 아무튼 저자는 “역사의 모든 시기에 도서관과 기록관은 공격의 대상이었다. 때로 사서와 기록관리자들은 지식 보존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잃기도 했다. 나는 역사 속의 중요한 에피소드 몇 가지를 탐구해 지식 보과서 파괴의 서로 다른 동기들과 그에 저항하기 위해 종사들이 개발한 대응을 제시해보려 한다.”며 몇몇 사례들이 가지는 매혹적인 이야기들 때문에 이 책을 기록한다고 말한다. 사실 역사는  “승리해서 기록물을 후세에 남긴 이들”의 관점이 많지 않나. 그래서 '파괴'된 이면은 만나기도 어렵다. 그래서 “책을 좋아한다면 흥미를 가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이다혜 작가님의 서평은 이미 맞는 말이라는 생각을 하고 이 책을 시작했다.   

 

 

이 책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격정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 물론 우리가 흔하게 사용하는 의미의 격정은 아니지만. 문서와 도서관이 보존되거나 파괴된 역사속에서 어떤 문화는 보존되고 어떤 문화는 파괴된다. 그리고 그 파괴 안에는 물리적인 굴복도 부족하여 정신이나 사상까지 굴복시키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하고 싶은 잔혹함이 담겨진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격정적으로 분노하고, 안타까워하고, 때때로 아파하기도 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문경새재의 칼자국난 나무들을 떠올렸다면, 단 한명이라도 내가 느낀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두 가지 가치는 그러한 수집품들을 지금 대학도서관들에서 매우 소중하게 여기고 기관들 사이에 경쟁을 불러일으키며 상인들이 비싼 가격을 요구하는 이유다. 그것들은 학생들에게 연구할 원자료를 제공하고 학문의 생산성을 높이며 교육 기회를 풍성하게 한다. (p.226) 

 

 

 

도서관과 기록물을 파괴하는 동기마다 사례는 각기 다르지만, 특정 문화를 말소한다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p.246)

 

 

 

도서관, 서점과 신문사 본사 파괴는 “분명히 타밀 문화에 대한 조적적인 공격”이었다. 한 타밀 정치 단체는 스리랑카 경찰에 의하 타밀 도서관 파괴가 “문화 말살”정책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p.261) 

 

 

 

우리의 일상생활이 갈수록 디지털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지식의 보존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 역사의 통제와 사회의 기억 보존은 누가 책임지게 될까? 지식은 민간조직이 통제하면 공격에 덜 취약할까? (p.310)

 

 

 

사실 이 책을 읽었다는 표현보다는 사색했다는 표현이 더욱 적합할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기록이 가지는 의미, 깊이를 생각했고 오늘날 “디지털기록물”들이 가지는 손쉬움과 단편성을 생각했다. 마치 그것은 고서와 오늘날 글들이 가지는 깊음의 다름같은것인가. 혹은 디지털 기록물에 대한 나의 편견일까. 가벼운 글을 싫다고 말하면서, 굳이 어려운 단어를 쥐어짜서 쓴 듯한 글은 더 싫다는 나의 치졸함인가. 이런 고민을 내내 하며, 그 와중에도 디지털로 생각을 기록하는 나의 행동에 머리를 쥐어뜯었다. 남겨진 문장의 깊이를 실감하면서도 가벼운 말을 내뱉듯 타자를 치는 나는 무얼하는 인간인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디지털기록물들은 태어나고 죽고를 무한히 반복중이다. 도서관이 타서 사라지듯, 수조수만개의 디지털도서관(개인사고라고 해두자)는 불에 타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인터넷이 언제까지 “지식과 정보의 홍수”라고 불릴지 모르겠다. 다만 여기서 하나 짚고 싶은 것은 그것이 언제 “범람”하는 것인가이다. (사실은 이미 범람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들이 누군가를 죽이고 아프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기록물들에 대한 인지가 없는 모든 이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가 죽어서 이름이 아닌 “흔적”이나 “댓글”을 남긴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슬픈가.”하고. 물론 이 질문을 나에게도 던져본다. 

 

 

아득한 마음으로 생각해본다. 

책의 힘을 아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부지런히 읽고, 생각하고, 귀하게 기록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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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 실력도 기술도 사람 됨됨이도, 기본을 지키는 손웅정의 삶의 철학
손웅정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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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라는 건 아주 조용히 옵니다. 그리고 기회는 악착같이 내가 만들어내야 합니다. 미래가 나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책을 읽으며 예의주시하며 관찰해야 합니다. (...) 책을 통해서 미래를 준비했을 때 의외의 기회, 꼼수가 아닌 내가 노력한 만큼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p.143) 

 



언제인가 아이와 책을 읽고 노는 것을 책으로 엮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실 나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거절했다. 어설픈 솜씨로 아직 다 크지도 않은 아이와 관련된 책을 내었을 때, 훗날 우리 아이의 결과물(싫지만 이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내가 싫다.)이 극악한 어른들의 평가 잣대가 되는 게 두려워서였다. 그러나 “가정은 최초의, 최고의 학교”라는 손흥민(!)의 아버지 최웅정 님의 책을 읽고 난 지금, 내 마음은 달라졌다. 여전히 아이와 관련된 글을 쓸 생각은 없으나, 내가 그것을 책으로 엮어내지 못하는 건 내가 단단하지 못함이라고. 

 


이 책을 단 한 줄로 표현하라면 나는 “신념”이라고 적고 싶다. 일단 손흥민이라는 세계적인 축구선수를 만들어낸 아버지라는 것만으로도 존경받을 분이지만, 그에 앞서 자신의 삶에 신념을 가지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는 인생 선배님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책의 첫 장을 펼칠 땐 손흥민의 아버지였다면, 책의 마지막 장에는 그저 손웅정이 남았다.

 



나는 내 아이들이 돈을 위해 살지 않고 진정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살길 바랐다. 그 길에 돈이 따라오면 좋은 것이고, 안 따라와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돼서 내가 좋아하는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돈만 좇는 삶을 산다면 그것을 과연 자기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p.112) 



 

사실 나 정도 또래, 그리고 그보다 나이 많은 이들 중에 돈을 생각하지 않고 주도적인 삶을 선택할 수 있던 이들이 얼마나 될까. 내 또래만 하더라도 그렇게 경제적으로 궁핍하지는 않더라도 사회적인 통념이나 기대에 갇혀 사는 이들이 많았다. 나 역시도 곤궁한 삶은 아니었으나, 내가 꿈을 좇는 것은 배고픈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눌려 취업을 위한 진학을 시도했던 것 같다. 웰빙한 삶보다는 월급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워라벨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러워진 요즘 아이들이 부럽다고 해야 할까, 내가 꼰대가 되어 부럽다고 느끼는 걸까 알 수는 없지만 나 역시 나의 아이가 돈만을 쫓지 않게 키우고 싶다. 그래서 더 돈을 위해 노력했던 것도 없지 않고.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내내 아이를 넉넉하게 키우는 것은 부모의 넉넉한 환경이 아니라, 넉넉한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언론을 통해 보았던 “손흥민의 아버지”는 아들을 오로지 축구만 바라보게 한 독한 이미지가 더욱 강했으나, 이 책을 읽으며 이미지가 크게 바뀌었다. 단단해서, 단단하게 아들을 키워낸 사람. 또 단단해서, 아들에게 그 단단함을 몸소 배우고 실천하게 한 사람으로.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아버지들이 좀 읽으시면 좋겠다. 물론 책을 읽는다고 해서 다 이런 아버지가 되기는 어려울 테지만, 손웅정 님의 말처럼, 책을 읽으며 단단해지려고 노력하고 단단한 아이를 키워내려고 노력하는 마음만으로도 충분한 변화를 몰고 올 수 있지 않을까. 이 책 가득한 신념을 많은 아빠가, 또 엄마들이, 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열심히 사는 이들에게 가득히 전파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하면서, 이 책의 뒤표지를 한참이나 보았다. 

 


나도, 이렇게 신념 가진 사람이, 엄마가 되어야지. 하면서. 

 

 

 

덧. 사실 이 책을 한점 전에 읽고, 이제야 리뷰를 쓰며 다시 읽었는데- 두 번 읽어도 너무나 좋았다. 힘들었을 때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을 준다고 해야 할까. 살면서 넘어지는 순간들도, 그저 축구장에서 넘어져서 다시 일어나는 것처럼 당연함으로 받아들이는 의연함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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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누가 데려가나 했더니 나였다 - 웃프고 찡한 극사실주의 결혼생활
햄햄 지음 / 씨네21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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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그러고 싶다.

엉뚱하다고 하겠지만 난 그게 좋아, 정말로. (p.267)

 

몇몇 지인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재미없는(?) 책만 골라읽는다고. 물론 그때의 나는 내가 읽는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강력히 설명하였지만 말이다. 그러나 정말 세상에는 재미없는 책이 거의 있다. (100권에 세 권 정도는 작가가 이따위 책을 세상에 내다니 미친건가 싶은 책과, 좋은 건 알지만 진짜 미칠거 같이 재미없는 책과, 무슨 말을 하는지 1도 모를 책들이 있긴 있다. 그나마 첫 예시같은 책은 그냥 덮어버리면 그만이니 뒤끝없는데, 나머지 두 종류는 머리카락을 쥐어뜯게 만든다. OMG!)

 

서론이 길었다. 아무튼 오늘은 재미없는 책만 읽는 이미지를 한방에 날릴 책을 소개하려한다. 책을 읽지않아도 인스타나 짤 등을 통해 누구라도 알만한 “시바(!)” 햄햄작가님의 신간, “누가 널 데려가나 했더니 나였다”. 사실 난 햄햄작가님의 팔로워라서 진즉 살짝살짝 엿보던 내용을 이렇게 완전히 책으로 볼 수 있다니, 너무 좋자나 시바. 으흐흐흐.

 

지난번 책은 정사각 판형이었는데, 이번 책은 또 길쭉하다. 책을 펼치자마자 판형의 이유를 정확히 알겠더라. 지난번 책은 살짝 짤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네칸만화같은 느낌. 그래서 더욱 읽을거리가 있고, 익살넘치는 일러스트도 가득하고- 정말이지 너무 재미있고 공감되는 내용이 너무 많아서 혼자 낄낄거리며 단숨에 읽어냈다. 그저 웃기기만 하면 사실 나는 리뷰를 남기지 않을텐데, 현실의 매운 맛도, 연애의 달고쓴맛도, 인생 짠맛도 고루 담겨있다. 진짜 우리네 사는 이야기가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담겨있달까. (곰팡이 꽃 이야기를 볼 때는 안쓰러워서 모금활동이라도 하고 싶었고, 설거지 후 배가 축축한 시바를 볼 때는 내 배를 한번 바라봤다.) 

 

사실 상단에 옮겨적은 저 부분은 찐한(?) 연애편지(?)의 한 부분인데, 이왕이면 로맨틱만 남기고 싶어서 저 부분만 따왔다. 그러나 작가님의 하루하루는 그저 핑크빛이 아니다. 아니, 우리 모두의 하루하루는 핑크빛이 아니다. 그저 핑크빛이기만 한 연애는 세상에 없을 뿐더러, 만약 핑크만 있다면 한달도 안되어 다른 연인을 찾아 떠날 것이다. 작가님의 하루하루를 엿보며 나는 때로 내 삶을 만났고, 친구의 삶을, 가족의 삶을 만났다. 그래서 이 책은 내게 첫장부터 끝장까지 공감이 가득한 이야기였다. 아마 누구라도 그럴 것 같다. 

 

겨울 철, 햇살아래 배깔고 고구마나 물어뜯으며 읽기 가장 좋은 책이었다. 

(아 끝으로 판다씨. 수고 많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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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 - 황혼이 깃든 예술가의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 분투기
윌리엄 E. 월리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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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인들은 미켈란젤로가 슬픔과 절망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전한다. 그는 정말로 절망했고 고령에 너무나 외로웠다. 이제 친구가 없었다. (p.81)

 



미켈란젤로. 아마 그림이나 종교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미켈란젤로의 이름은 알 듯하다.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그리고 <피에타>와 <다비드>. 그의 작품은 어느 하나 유명하지 않은 것이 없고,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하!”하는 경탄이 흘러나온다. 내가 아직 어린 시절, 그가 <최후의 심판>에 고뇌하는 자화상을 그려 넣었다고 하는 글을 읽고 “이정도 예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무슨 고뇌를 하는가. 물론 창조는 힘이 들겠지만, 이정도 작품을 낳을 수 있다면 매일 손뼉을 치고 다닐 텐데”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 오랜 궁금증을 풀어낼 책을 드디어 만났다. 

 


사실 미켈란젤로나, 대성당, 바티칸에 관련된 책은 꽤 많이 읽었다. 그런데도 이 책은 매우 새롭다. 보통의 책들은 정점을 기록하고 있기에, 미켈란젤로가 소위 가장 잘나가던 시절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책은, 70세에서 88세에 이르는 마지막 생을 기록하고 있다. 비록 예술가로서의 찬란한 시절은 한 끗 비껴갔을지라도 그의 일상과 생각, 예술과 종교에 대한 신념을 제대로 만나볼 수 있다. 어쩌면 이제 인생의 절반 정도를 살아온 내게 이 책은 말한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잘 걷고 있는가.”

 







피렌체 <피에타>는 미켈란젤로의 신심을 웅변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애초에 그 자신의 무덤에 묘표로서 그 쓰임새를 의도했던 작품이다. 그러나 거기에 딜레마가 있었다. 그 조각을 완성한다는 것은 대리석을 생생하게 살려내는 것이지만, 그 자신은 죽음에 숙명 해야 했다. (...)그러나 여러 기술적 심리적 이유 탓에 이 작품은 미완으로 남을 운명이었다. (P.243)

 


생각해본다. 그는 무슨 이유로 이 작품을 그리도 오래 간직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왜 <피에타>를 포기했을까. 그리고 칼카니가 이 작품을 보수하지 않았더라면, 그 앳되고 아름다운 성모마리아님은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나는 <피에타>를 처음 볼 때 (물론 실물은 못 봤지만) 미완성인 것도, 예수님의 다리가 한쪽이 없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너무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고, 성모마리아님의 얼굴의 깊은 감정이 놀라울 뿐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이런저런 생각이 나를 휘감는다.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을 만들 때, 가슴이 매우 아프지 않았을까. 고뇌하지 않았을까. 스스로 불완전함을, 스스로 미완의 인간임을 아파한 것은 아닐까. 

 


사실 이 책은 꽤 두꺼움에도 순식간에 읽혀지는 책이다. 며칠만에 나는 이 책을 두번 반복하여 읽었다. 처음에는 그저 술술 읽었고, 두번째에는 기존에 알던 이야기까지 살을 입혀 그의 마음을 좀 더 고스란히 느껴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일까. 수십년을 함께 한 지기를 잃고, 가슴아파하는 그의 편지들을 읽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슬픔의 한 가운데에서 홀로남은 외로움을 이야기하는 그가 처음으로 위대한 예술가가 아닌, 그저 나같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 느껴져 그의 작품들이 더 대단함으로 느껴진다면 역설일까. 

 

 




그 어떤 변경도 이것이 미켈란젤로의 건축물이라는 사실과 평가를 흔들지 않았다. 미켈란젤로로서는 어떤 구체적 형태를 설계하는 것보다 교회의 온전한 정체성을 보존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것은 하느님의 교회였고 그는 하느님의 건축가였다. (p.362)

 


어떠한 문헌을 보더라도 그가 하느님의 건축가였음은 틀림이 없다. 그렇지않고서야 고된 천정화를 그렇게나 많이 그릴 수 없을 테다. 디스크를 앓으면서도 천정에 그림을 그린다니. 책조차 들지 못하겠다고 가벼운 책만 읽은 내가 부끄러울 정도의 열정이다. 아니 열정이라는 단어도 너무 약소하다. 그것은 그저 하느님께 순명하는 삶, 그 자체였다고 보인다. 그리고 너무나 다행히도 그가 그런 삶을 걸을 수 있도록 돕는 이들이 늘 곁에 있었다. 아마 하느님께서 그에게 사람으로서 보답하신 게 아닐까. 당신의 집을 짓는, 당신을 위한 건축을 하는 숭고한 예술가를 그래도 홀로 두지 않겠다는 대답이지 않으셨을까. 

 


성 베드로 대성당을 건축할 당시, 그의 결의도 결의였지만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고, 이제 그 사랑이 나의 모든 희망(p.375)>이라고 말하는 그의 말에서 그의 신념을 정확히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순간들을 그 성당에서 함께 하며 외로움 대신 성취를 안겨준 것도 하느님의 대답이었다고 생각된다. 

 





미켈란젤로는 결코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것이 그에게 남은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그가 현실적으로 성취할 수 있다고 기대되는 유일한 길이었고 그는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p.378)

 


책의 끝에 가까워질 무렵, 나는 이 책이 얼마 남지 않음이 너무 아쉬웠다. 읽으면 읽을수록 명사라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다. 위대한 작품 뒤에 가려진 그의 삶이, 그리고 그의 지인들이 사실은 그 모든 작품의 밑거름이었구나, 싶어서 온 마음이 묵직해졌다. 우르비노, 리오 나라도, 칼카니. 그들이 그에게 어떤 역할이었는지, 또 하느님이 그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한문장 발견했다. 

 


사실 나는 평생 처음으로 안식월을 보내고 있다. 가만히 빈둥빈둥 되지 못하는 성격 탓에 늘 무엇인가 조바심내듯 살아온 나에게 처음으로 쉼을 선물한 것이다. (물론 디스크가 가장 큰 원이었겠지만) 그래서일까. 나는 그저 “쉼”에 집중해있었다. 혼자 햇빛을 쐬러 나갔고, 혼자 걸었으며-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고,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술잔을 기울였다. 애인과 느긋하게 점심을 먹었고, 커피잔을 사이에 놓고 걱정도 긴장도 없는 수다를 떨었다. 밀린 영화와 드라마도 잔뜩 보고, 사놓고 보지 못했던 만화책도 잔뜩 읽었다. 그림책 수백 권과 역사 만화책 백여 권도 읽었다. 그러다 보니 무거운 책은 한 권도 읽고 싶지 않았다. 그런 안식월 사이, 이 책을 읽고 싶어 나는 조바심을 냈었다. 아픈 목을 참아가며 많은 책을 읽어냈고, 이 책도 두 번이나 읽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기를 너무나 잘했노라고. 반드시 읽었어야 할 책이라고. 항상 나의 “궁극적 아름다움”이었던 하느님과 미켈란젤로를 만났다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이유지만 삶에서 “성취”가 가지는 묵직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또 좌절하기도 하고 상실하기도 한다. 그러나 반대로 사람은 매일 새로운 삶을 부여받고, 곤경을 딛고 일어서며 나아간다. 아마 미켈란젤로 역시 그런 과정들을 겪으며 그저 살아냈을 테다. 자신의 작품들이 이렇게 오래도록 사랑받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도 살만한 삶임을,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또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으니 나는 아직도 다시 나아갈 수 있음을 여실히 깨닫게 해준, 최고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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