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구한 의학의 전설들 - 위대한 의학의 황금기를 이끈 찬란한 발견의 역사
로날트 D. 게르슈테 지음, 이덕임 옮김 / 한빛비즈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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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클로로폼을 사용했던 의사들은 여성이 고통 속에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며 성경을 들먹이는 성직자와 동료 의사들의 저항에 부딪혔다. (...) 그러나 대다수 성직자들과 달리 예민한 남성들은 아내가 출산하는 순간에 고통으로 내지르는 절규를 차마 견디기 힘들어했고 절규의 행동이 신성하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p.104)

 


출산을 한 줄로 표현하자면 '고통의 순간'을 지나와야 경이로워질 수 있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그렇다고 '출산하는 여자'만 대단하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출산의 순간'을 겪고 태어난 귀한 존재들이니 말이다. 요즘은 출산하다 산모가 죽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지만, 과거에는 꽤 흔한 일이었다고 한다. 분명 태아의 평균 신체는 과거보다 커졌을 텐데 왜일까. '의학의 발전'이라는 당연한 걸 왜 묻냐 하겠지. 맞다. 의학의 발전에 의해서다. 그런데 그게 왜 당연해? 우리는 많은 것을 당연하다 생각하고 산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익숙해져서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뿐이다. 그러나 '당연하지 않았던 때'가 주는 교훈은 몹시 크다. 그것이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일 테고.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당연하게 바꾸어준 이들'에 관한 책이다. 

 


'어떤 혁명은 소리 없이 시작되기도 한다. (p.8)'는 말로 문을 연 이 책을 읽는 내내 놀라웠다. 당연하다 생각해온 그 모든 것들이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그것들이 당연해질 때까지 겪어온 시간이 쉽지 않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코로나를 겪으며 더 당연해진 손 씻기 조차 1847년에서야 시작되었다고 하니 놀라움은 당연했다. 

 


유럽을 휩쓴 전염병 등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질병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해보기도 했고, 클로로폼이나 코카인 같은 마취제에 대한 부분에서는 과하면 독이 되는 많은 것을 떠올리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우체통을 괴롭히는(?) 종이로 전락해버린 적십자가 초창기 어떤 모습으로 구호 활동을 했었는지 그 이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알게 되어 “아는 것의 힘”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구겨버린 지로용지에 사과를)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 있던 부분은 “과학의 나라 독일” 편이었다. 부끄럽지만 해당 편에 나오는 이야기를 전혀 모르고 있었으나, “암세포의 지나친 성장과 같이 신체 세포의 변화를 질병의 원인으로 보았다”(p.292)라는 본문에서 알 수 있듯, 그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우리 건강을 위협하는 암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현재 우리가 아는 의료보험의 시작점이 된 비스마르크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인간의 기본적인 두려움 가운데 하나다. 고대부터 전염병이나 유행병은 시시때때로 도시나 나라 전역을 공포에 밀어 넣었으며 때로 유럽-지중해 문화권을 포함한 세계의 많은 부분에 퍼져 수많은 문명과 사람들을 괴롭혀왔다. 전염병은 거의 항상 사회질서와 통치체계, 경제 체계를 뒤흔들었다. 종종 그것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의식과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어놓았다. (p.158) 


 

최근 몇 년간 코로나라는 무서운 바이러스는 우리를 흔들고, 세상을 바꾸었다. 19세기에도 세상을 흔든 전염병이 종류와 모습이 달라지긴 했지만, 현재를 흔들고 있다. 치료제나 예방제 등의 발달, 모두의 선진의식 등이 이 무서운 사태를 종료시킬 수 있겠지만, 이 사태가 끝난 후의 상황들도 고려해보아야 할 중요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종종 사람들은 지나간 것들을 의미 없는 것들로 취급하지만 과거의 사례에서 현명한 대처법을 찾아볼 수 있을 테다. 

 


쉬운 책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내내 요즘 우리가 사는 시대와 이 시대에 살기 위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을, 생겨야 할 '내성'들은 고민했다. 과거의 사례들에서 오늘을 떠올릴 수 있는 좋은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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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보이는 신발 이야기 보통의 호기심 5
이자벨 블로다르치크 지음, 마르조리 베알 그림, 권지현 옮김 / 씨드북(주)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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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모두 알겠지만, 나는 참 일관성있는 사람이다. 코트와 무늬 없는 니트를 즐겨 입고, 로퍼와 스니커즈를 사랑한다. 여름이라고 딱히 민소매를 입지도 않고, 추위를 많이 타면서도 패딩을 껴입지 않는다. 취향이 십여 년 유지하다 보니 이런 아이템들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다. 니트는 누가 처음 만들었나, 이토록 멋진 트렌치코트는 누가 시작이었을까. 그런 나의 궁금증 카테고리에서 '신발' 영역을 채우는 그림책을 만나 소개하려 한다. 일단 일러스트 멋짐이 뿜뿜하고, 내용도 가득하니 어린이들뿐 아니라 어른이들에게도 강추한다. ⁣


이 책은 씨드북 “보통의 호기심” 다섯 번째 이야기다. 공, 여행, 비행, 자전거에 이어지는 '신발' 이야기. 종종 아이들의 문화 관련 그림책들에서 신발이나 의상을 모은 그림책이 있기는 하나, 이 책은 조금 더 깊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고대 역사 속에서 발견되는 신발, 계급이나 환경을 나타내던 신발부터 상징물로서의 신발, 신발의 변천사까지 이 책에서는 꽤 다양하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아이와는 다른 그림책이나 인터넷검색을 통해 살을 붙여 책을 읽었다. 이 책이 특히나 좋았던 게 일러스트가 단순하면서도 상세히 표현되어 있어서 실제 사진과 일러스트를 비교하며 보기 너무 좋았고, 속지에 그려진 신발 일러스트들로는 우리 집 신발장에서 닮은 꼴 찾기를 하며 신나게 놀 수 있어 더 좋았다. (게다 빼고 거의 다 있는 거 왜죠? 하하. 우리 아이는 특히 c 사의 스니커즈가 실제와 그림이 너무 똑같다고 신기해했다.)⁣



특정 신발을 신어야만 왕궁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페이지를 읽으며 차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시상대에 올라 신발을 벗은 흑인들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용기와 투쟁에 관해 이야기했다. 다양한 운동화들이 언제 어떻게 신기는지 이야기하며 “농구도 하지 않는 엄마가 농구화를 가진 건 지구한테 좀 미안하다.”라는 환경 이야기까지! ⁣


사실 우리 아이가 혼자 이 책을 읽기엔 조금 깊다. 그래서 살을 붙여 읽느라 시간은 좀 걸렸다. 대신 풍성했고. 그렇기에 이 책은 나이 제한이 없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생각 없이 신어온 신발들의 숨은 역사와 이야기를 만나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듯, 아마 우리 아이는 신발을 신을 때 종종 이 책에서 만난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고, 자라며 무엇하나 쉽게 생겨나는 것은 없음을 이해하게 되겠지. ⁣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그림책이 존재한다. 깔깔 웃음이 나는 책도 있을 테고, 찡한 감동을 주는 책도 있다. 그저 일러스트만으로도 울림을 주기도 하고, 정보를 꾹꾹 눌러 담기도 한다. 아무래도 그림책만큼 다양한 얼굴을 가진 책은 없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그래서 든다. 이 책은 일차적으로는 정보와 역사를 눌러 담았다고 말해야겠지만, 그 너머에 수많은 얼굴을 한 사람들, 다양한 신발들을 일러스트로 만난다. 일러스트 하나하나를 세세히 만나다 보면 분명 그 이상의 것을 만나게 해주는 그림책이다. 이 책 하나로 신발의 역사를 통으로 만난 기분까지 든다. 미래의 신발에는 어떤 기능이 있을지 이야기하며 신이 난 아이 얼굴에서 앞으로의 신발은 어떤 이야기를 품게 될지 기대감도 엿보게 해준 고마운 책이었다. ⁣





*우리는 이렇게 읽었어요.⁣
1. 일러스트로 표현된 다양한 신발을 직접 검색해보아요!⁣
2. 우리 집 신발장에서 책에 나온 신발들을 찾아요.⁣
3. 연결하여 볼 수 있는 다른 책들을 읽었어요.⁣
4. 미래의 신발은 어떤 모습일지 그려보고 이야기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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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로 충분하다 - 유연하고 충실하게, 이소은이 사는 법
이소은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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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나는 깎이고 다듬어지며 쓸모없는 것들은 털어내고 덜어내는 중이다. 상처 난 곳에 새살이 돋을 때면 전보다 질긴 표피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내 마음에도 그런 변화가 계속되기를 바라며 “and since i made it here, i can make it anywhere! (여기에서도 살아남았는데 어디에선들 못 하겠어!)”를 모토로 삼고 나아갈 생각이다. (p.277)

 

그녀가 가수로 섰던 무대를 기억한다. 그 목소리도, 호흡도 기억난다. 사실 아직도 그녀의 노래 한두 곡은 내 차에서 흘러나오기도 한다. 친구들이 “토토가”라고 부르는 차답게 내 차의 노래들은 나의 10대를, 20대를, 30대를 함께 함께 해오다 보니 노래들도 각자의 추억을 켜켜이 쌓고 있는 셈이다. (그녀가 김동률과 부른 '기적'은 나의 첫사랑을 추억하게 한다) 아무튼 그녀의 아버지 책(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 - 이규천/ 수오서재)을 통해 그녀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면, 오히려 이번 책은 나를 다시 보게 되었다고 말해야겠다. 

 

 

바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고 하는데, 어째서 나라는 꿀벌은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시간이 늘 함께 하는 것일까. (P.39)

 

이 문장을 읽는데 코가 시큰했다. 나의 지난 시간이 떠올라서였을까. 물론 나는 그녀에 비해 이룬 것이 너무 없지만, 이룬 것이 없다고 한들 지나온 시간이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기에 바쁘고, 슬프고, 괴로운 꿀벌이었던 나의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녀의 글들을 통해 단단한 위로를 얻었다. 조금 울기도 하고, 결심하기도 하며 나의 밤들을 그녀의 문장으로 채웠다. 

 

 

나 자신이 되어라. 나는 이 말에 망설임 없이 동의했고, 무조건적으로 긍정했다. 세상의 기준에 나를 맞추지 않고 타인의 이목에 신경 쓰지 않으며, 중심을 내 안에 두는 것이야말로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가장 멋진 방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삶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P.10) / 네 마음의 소요를 지켜보며, 너를 참아내고 위로해주어라. 네 속에 있는 너를 다독이고, 용기를 주고, 네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는 넉넉한 주인이 되어라. (P.218)  

 

늘 그녀의 목소리는 “청아함의 대표주자”였다. 나는 맑은 목소리를 이야기할 때 늘 그녀의 이름을 꼽았던 것 같다. 청아하면서도 단단한 목소리. 그것이 내가 그녀를 형용하는 말이었던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며 그녀는 영혼까지 청아하고 단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선지 공책을 찢어 자신의 곡을 쓰던 그때부터 그녀는 자신을 차분히 그려온 것이 아닐까. 코스모스의 가느다란 줄기가 바람에 쉬이 꺾이는 것이 아니듯, 그녀는 여리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살아온 것 같다. 나아가되 아프지는 말자는 그녀의 말이 내 마음을 둥둥 울린다. 늦은 사춘기를 겪는 중이지만, 그래도 매일 나의 길을 걷기 위해 느린 걸음을 옮기는 나에게 쉼 없이 응원을 건네는 것 같다. 최근 몇 년간의 독서 중에서 가장 많은 인덱스를 책 곳곳에 붙이며, 나는 독자가 아닌 사람으로 위로를 얻었다. 

 

 

점을 옮기고, 방향을 바꾸고, 속도를 변화시키고, 직선으로 쭉 뻗어있는 길에서 벗어나도 좋다. 계획에 없던 다른 길로 들어서기도 하고, 비포장도로를 걷기도 하고, 잠시 멈추고 쉬어가기도 한다. 그래도 된다. (P.76)

 

얼마 전 지금의 나는 꽤 행복하다는 글에, 처음으로 커피를 마실 때 그저 커피만 마셔도 된다는 걸 알았다는 말을 썼다. 나는 그토록 바쁜 꿀벌이었다. 목적지도 없이 30대의 사춘기를 보내는 내게 그녀는 비포장도로를 건너도 되고, 다른 길로 가도 된다고 말해준다. 나조차도 나에게 그래도 된다고 말해주지 못했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도 나에게 말해주기로 했다. 

지금의 나로도 충분하다고. 여전히 두렵지만, 여전히 설레는 마음을 잊지 말자고.  

 

이 책을 만나는 내내 나는 온전히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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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주부 명랑제주 유배기
김보리 지음 / 푸른향기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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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의 결에 따라 많은 생각이 스쳐 간다. 자유로웠고, 쓸쓸했으며 더할 나위 없이 충만했다. 혼자 걸으며 무수히 많은 것들을 채집한다. 물리적인 것들을 사진으로 수집하고, 둥둥 떠다니는 대책 없는 마음을 애써 메모로라도 부여잡는다. 외로움이 아닌 고독을 그렇게 지켜간다. (p.62)

 

봄빛이 가득한 연 오렌지의 표지. 제주도. 여행기. 사실은 한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펼친 책이었다. 그저 신나고 즐거운 이야기가 가득하겠지, 하는 얕은 기대감이랄까. 이 책을 읽으며 눈물 콧물 흘리는 나를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모슬포 같은 마음을 털어내고자 혼자 떠난 제주도. 제주를 걸으며 자신의 지나온 길을 다시 걷고, 바다를 보며 50년이라는 삶을 되돌아보는 일기 같은 책이다. “내가 아닌 나는 될 수 없지만(p.27) 찌그러진 마음이 조금 펴지고, 어둡게 밝아 적당한(p.5)” 순간들을 만들어내는 게 짠한데 때때로는 달콤한 유배기. 그리고 그 여행에서 그녀는 결심한다. “바람이 분다고, 나를 향해 부는 것이 아닌 것을. 겁먹고 살지 말자. (...) 개 떨듯 떨더라도, 뛰쳐나오고, 걷고, 살자. (p.61)”고.

 

어린 시절의 한 순간순간이 사람에게 상처가 되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러나 우리가 쉬이 간과하는 것 중 하나가, 어른의 순간도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꽤 괜찮은 유년기를 보냈음에도 어른이 되어 겪은 순간순간이 여전히 아프고, 버거웠는데 나는 그것을 스스로 인정해주지 못했다. 최근에서야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나니 벗어나는 길도 눈에 들어왔는데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작가는 나보다 한발 앞서 이미 자신의 터널을 잘 빠져나오고 계심을 느꼈다. 같이 울고 웃으며 나도 이제 그 터널에 발을 디딜 용기가 나더라. 

 

 

느슨한 일상과 느린 걸음, 푸근한 자연은 걸음을 잡아주었다. 나하고만 사이좋게 지내면 되는 생활은 안팎으로 여유를 주었다. 심장이 느려졌다. (...) 영혼이 잘 따라올 수 있게 느리게 걸어야지. 조금 더 느리면서 열렬한 생활을 격하게 누려야겠다. (p.145) 

 

숲이 너무 좋아 나도 숲인 것처럼, 나도 자연의 하나로 배어든 것처럼 자연을 편드는, 식물과 동물을 편드는 생각이 걸음을 따라 이어졌다. (p.178)

 

느리게 살기. 사실 요즈음의 내가 가장 격렬히 지지하고 있다. 음악도 듣지 않고 책을 보지도 않은 채 가만히 커피만 마시기. 그냥 가만히 앉아 창밖을 보기. 요즈음의 지지하는 내 삶의 한 조각. 막상 해보니 아무것도 어려울 것이 없었는데 그동안의 나에게는 왜 그리도 남 이야기 같았을까. 작가의 말처럼 “나를 꼭 쥐고 있는 그 무언가! 그건 바로 나(p.6)”였음을 다 놓아보고서야 아는 미련함을 이제야 실컷 부려보는 중인 거다. 그러면서도 종종 친구에게 마흔을 목전에 두고 나는 왜 이러는지 쓸쓸한 웃음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느린 삶을 조금 더 지속할 예정이다. 내 영혼이 잘 따라올 수 있게 말이다. 책의 나이가 현재형이라면 나와 띠동갑일 작가님을 핑계로 조금 더 느린 나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찮은 글도 읽히면 괜찮은 글이 된다는 작가님의 말처럼, 나도 언젠가는 바다처럼 짜고, 귤처럼 달콤한 이야기를, 내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조금 더 '나'로 잘살아 보아야겠다.

 

작가님. 저 오늘부터 작가님 팬 할 거니까, 일단 술이나 한잔 다정하게 따라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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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의 세계사 - 뺏고 싶은 자와 뺏기기 싫은 자의 잔머리 진화사
도미닉 프리스비 지음, 조용빈 옮김 / 한빛비즈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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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금은 모르는 사이에 원천징수되고 강제로 징수된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강제로 가져가는 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무장 요원이 억지로 빼앗아 가지는 않으므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강제라고 한 말은 세금을 안 내면 전과자가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는 교도소에 갈 기회조차 없다. 세금이 원천징수되기 때문이다. (p.35) 

 

다양한 역사서를 읽으면서도 단 한 번도 세금의 역사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전과자가 될 기회도 없이 원천징수되기 때문인지, 나는 언제나 각종 세금을 내는 서민이면서도 그냥 당연한 무엇인가로            받아들이고 살았나 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세금이 역사 속에서 엄청난 흐름을 담당하고, 판도를 바꿀 “돈”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연한 듯 역사 속에 숨어있던 세금들을 만나며 알았던 과거는 새롭게 보이고, 몰랐던 과거는 다시 알게 된 읽기였던 듯하다. 

 

 

나폴레옹 전쟁은 영국에 6억 파운드 이상의 추가 부채를 안겼다. (...) 소득세 때문에 채무의존도는 줄었지만 여전히 정부 지출의 반 이상은 채무로 충당했다. (p.126) / 루스벨트는 뉴딜정책 실시를 위해 자금이 필요했다. 그는 1932년 선거 캠페인에서 맥주에 부과하는 주세만으로도 수억 달러의 정부 수입이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루즈벨트가 대통령이 된 것은 아마도 뉴딜정책에 대한 기대보다 금주법 폐지 공약 덕택일지도 모른다. (p.171) 

 

우리가 당연한 듯 알아온 역사의 순간들에, 늘 세금이 존재했다. 그것도 우리의 생각보다 깊게, 때로는 주인공으로. 세금으로 인해 농노의 난이 발생하고, 조세개혁으로 인해 영국의 권력 구조가 바뀐다. 노예제도로 인해 대립한 결과로 발생했다고 배운 남북전쟁 역시 미국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한 관세로 시작되었다니 그동안 만나온 역사의 새 얼굴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과거에 조세가 미친 영향들에 정신이 빠져 읽다 보니 현재 그리고 미래의 세금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의 명쾌한 분석들은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모습을 너무 명확히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글로벌 시대의 개인과 기업에게 강력한 사유재산보호법과 우대세율을 적용하는 국가가 가장 많은 기업을 유치하게 되어 있다. (p.295) / 디지털 기술은 또한 징세효율을 높인다. 무인 자동차에 내장된 컴퓨터가 주행거리에 따라 자동적으로 세금을 낼 것이라는 건 쉽게 예측할 수 있다. (p.265) / 노마드족의 생활도 마찬가지다. 주택담보대출도 없고 점포도 없다. 생활비도 선진국보다 적게 든다. 게다가 가장 큰 비용, 즉 국가에 내는 돈을 안 낸다. (...) 소득세는 얼마나 내야 할까? 낸다면 누구에게 낼까? (p.223) 

 

후반으로 갈수록 미래의 경제까지를 전망하는 책이라서 더욱 진지한 태도로 읽었다. 얼마 전 읽었던 다른 역사서에도 느꼈듯, 과거가 단순히 과거로 끝난다면 그것이 전래동화를 읽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하물며 전래동화도 많은 교훈을 남기지 않는가. 이 책을 읽는 내내 과거의 사례가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 또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하게 했다. 저자는 “세금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만드는 방법(p.313)”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더더욱 “당연하게 낼 일”이 아니라 공부하고 의논하고 토론해야 할 주제인 것이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세금에 대한 의구가 아닌 “불만”만을 품어왔던 나지만 이제는 세금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져봐야겠다. 우리가 큰 눈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세금은 또다시 우리의 역사를 왜곡시킬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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