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영화가 될 때
유의정 외 지음 / Book Insight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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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이 인생의 목표가 되지 않기 를 바란다. 내가 진짜로 해야 할 것들이 타인에 의해 계속 흔들리고 무너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정’의 시작은 내가 나를 먼저 ‘인정’하는 것이다. (p.62)

 

당신의 인생영화는 무엇인가? 당신이 본 영화 중 당신의 인생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진 것은 무엇인가? 나의 경우는 “인생은 아름다워”, “죽은 시인의 사회” 쯤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가족을 위해 극한의 고통도 참고 넘기며 버티는 숭고한 사랑을 보여주는 '인생은 아름다워'과 개인적으로는 책을 원작으로 둔 작품 중 책보다 더 좋았던 유일한 영화이자 자아 성장에 거름이 되는 '죽은 시인의 사회'는 내게 가족이나 사랑에 대한 가치관 변화를 선물했다. 

 

그런 점에서 자신에게 키워드를 던지는 영화를 심층적으로 풀이하는 이 책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웰다잉을 이야기한 '굿바이'말고는 모두 본 영화라 책을 읽는 내내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거나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또 “당신의 삶은 해피앤딩이길” 이라는 말로 소개해주신 책이기에, 책을 읽는동안 내 안의 행복이나 나의 키워드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보통 인생을 행복과 성공이라는 말로 결과를 평가한다. 아직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를 말하자면 행복과 성공의 절반을 이루었다. 어차피 기준은 주관적이니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함께 하는 팀이 있고, 누군가 내가 잘한다고 인정해 주고 내 이름으로 된 안식 처가 있으니 난 행복하고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p.109)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고개를 끄덕인 장은 제 3장, “삶의 가치”였다. 작년, 나는 몹시나 아팠고 힘들었다. 꽤 오래 다닌 직장에서 (퇴직을 목표로 한) 휴직을 시작했을 때, 섭섭함 보다는 시원함이 먼저 들었던 것은 나의 직장이 나에게 가치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는 내 가치를,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몇달을 헤멨다. 물론 지금도 내가 어디를 향하고 싶은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저 내 마음이 울리는 곳을 향해 걷겠다는 다짐은 더욱 명확해졌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르네와 점점 자존감을 되찾는 르네를 이야기한 3장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고, 확신이 들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아무도 내게 능률과 성실 모두를 강요하지 않았는데, 나는 그것에 얽매어있었다. 허나 최근 다시 나의 자존감을 마주하며, 나를 조금 더 사랑하는 방법, 조금 더 행복해지는 방법들을 많이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 책도 마음에 닿았다. 

 

어떤 문장은 심리서 같았고, 어떤 문장은 철학같았다. “아이는 일반적인 잣대인 당장 눈앞에 보인느 성적으로 자신의 값어치를 매기지 않았고, 자신의 임계점을 뛰어넘어 본인이 가고자 하는 길을 가게 되었다(p.70)”는 말이 마음을 쿵쿵 울렸다. 나의 임계점. 사실 살며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개념이지만 내 스스로 그것을 아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내가 내 삶을 해피앤딩이라고 믿으면 결국 그 방향을 향해 걷게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나를 믿어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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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
세이카 료겐 지음, 김윤경 옮김 / 모모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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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소리 내어 말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후련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3년이라고 생각하니 매일매일 '오늘은 뭘 하며 지낼까?'를 고심하게 되었다. (p.36)


사실 나는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엄연히 이야기하면 대하소설이나 장편소설 등 꽤 이름난 소설은 거의 읽었으나, 요즘의 소설은 거의 읽지 않았다. 소설을 덜 읽지 않는 이유? 간단하다.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책이 읽고 싶지 않을까봐. 계속 소설만 읽고 싶을까봐.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친구와 수정떡볶이를 먹거나, 편지를 주고 받거나, 소설을 읽은 것만 떠오른다. (그 시절 토지, 태백산맥, 아리랑 등을 다 읽었다.) 그런데 어쩌나. 이 책을 읽어버렸고, 소설이 얼마나 재미있는 분야인지 떠올려버렸다.  


“어느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는 죽고 싶어하는 소녀 이치노세 쓰키미와 자신의 목숨을 팔아 시간을 되돌리는 은시계를 얻은 아이바 준 사이의 시공초월 로맨스다. 이치노세 쓰키미는 계속해서 자살을 시도하지만 자살을 방해받고, 아이바 준은 그녀의 자살을 막고 싶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자살을 시도한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그녀의 몇 번이고 자살을 막겠지만, 아이바 준은 자신의 목숨을 댓가로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받았기에 시한부다. 결국 삶의 목적이 없어 삶을 팔아넘긴 아이바 준과 삶의 목적이 없이 자살을 기도하는 이치노세 쓰키미는 비슷하고 영혼인 것. 


솔직히 처음에는 흔한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 주인공이 겨우 살만한 마음이 들면 남자 주인공은 죽겠구나, 라는 내 나름의 결론까지 냈다고 할까? 소재도 그랬다. 왕따, 학교 폭력, 가족 간의 갈등, 죽음 등 다소 무겁고 예민하지만, 이미 우리 주변에 너무 많은 내용아닌가. 전형적인 일본소설 같은 느낌이 다소 들었으나 책을 읽다보니 심취하게 되더라.


문장력도 좋고 스토리도 너무 탄탄해 심취해서 읽었다. 잘 만들어진 일본 영화 한편을 보는 느낌이랄까. 어느새 나도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여 이치노세 쓰키미가 죽으면 어떡하나, 아이바 준의 3년이 그냥 끝나버리면 어떡하나 전전긍긍하며 이 책을 읽었다. 


내용이 많으면 스포일러하게 될까 조심스럽지만, 이 책은 가볍게 휘리릭 읽히지만 결코 그렇게 가볍게 남지는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서 살아갈 수 없고, 지닌 아픔을 드러내고 아파해야만 나아질 수 있단 것을 깨닫게 했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이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사람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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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 한국사 상식 44가지의 오류, 그 원인을 파헤친다!
박은봉 지음 / 책과함께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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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객관적이고 정확해야 할 역사에 어찌 오류가 있을 수 있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역사에서 오류는 어쩌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역사란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평가되는 것이니만큼 그 과정에서 현재의 이런저런 필요에 의해 과거를 비틀어버리는 일이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현재의 필요에 의해 과거가 비틀리는 과정을 낱낱이 지켜보면서 '역사란 과연 무엇인가'하고 새삼 되뇌게 될 것이다. (p.5)

 

아마 '박은봉'이라는 이름은 몰라도 '한국사 편지'라는 책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테다. 우리 집 역시 한국사 편지를 여러 번 반복했고, 그의 다른 저서를 읽은 적도 있었기에 '믿고 봐도 되는 책'이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펼쳤다. 그리고 그 기대는 틀리지 않았다. 꽤 오랜 세월 당연히 믿어온 한국사 상식들(정확히는 상식인 줄 알았던), 심지어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틀린 것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많은 개념을 다시 정리하며, 처음 배우는 이야기처럼 풍덩 빠져 읽었다. 

 

고조선의 '고'가 옛 고자로 이성계의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후세에 붙인 것이라고 배운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위만조선과 그전의 조선을 구분하기 위해 붙여진 것이다. 사실 이 정도는 이미 알고 있는 이들도 있을 거다. 그러면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누구의 말일까? 또 술잔이 동동 떠내려온다는 왕의 놀이터로 알려진 포석정은 사실일까? 거북선은 정말 철갑선인가? 우리가 최초의 서구 기행문이라 배운 유길준의 '서유견문'이 정말 최초일까? 아마 역사책 좀 읽었다는 사람들은 이미 구미가 당길 거다. 나는 목차를 둘러보면서 “아니라고?”를 몇 번이나 외치며 책을 펼쳐 들었고 마지막 장을 읽을 때까지 덮지 못했다. 

 

이토록 방대한 자료를 이렇게 일목요연이 정리하신 것을 단순히 열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하나의 이야기 만에도 여러 개의 사료가 삽입되고, 사진이나 그림 등의 해설자료가 포함된다. 그런데도 전혀 어렵지 않게 술술 풀어주셔서 가볍게 읽어내는데도 머릿속에는 이해가 쌓인다. 역사를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풀어주는 분이 흔하지 않음을 알기에 책에 담긴 44개의 오류가 얼마나 긴 시간에 걸쳐 세상에 나왔을지 쉬이 예상도 되지 않았다. 이런 깊은 지식을,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책상에 앉아서 읽는 것이야말로 호사다.

 

읽는 동안 나는 크고 작게 분개해야 했는데, 아무리 역사와 정치가 불가분의 관계라고 하여도 자신의 잘못을 가리기 위해 역사를 이용하고, 잘못된 대중화를 펼치는 것이 용납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가장 크게 분개했다. 현모양처나 영웅으로 가려도 독재의 그늘은 가려지지 않는 법이고, 결국 잘못은 세상에 드러나기 마련인데, 한번 굽어진 역사의 오해는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이 책이 출간된 2007년에서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세월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 세월 동안에도 여전히 바뀌지 않은 '잘못된 상식'이 허다한 것이다. 그러나 올바르지 않은 상식이 진짜인 것처럼 자리를 잡고 있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그것을 바로잡고 제대로 배울 수 있도록 수정하는 과정이 필요한 일임을 깊이 생각한다. 그저 많은 이들이 아는 것이 대중화인지, 잘 아는 것인지 대중화인지를 이제는 짚어볼 때도 되지 않았나.

 

이 책이 더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더 많은 이들이 나처럼 “진짜?”에서 “진짜!”로 바뀌는 과정을 경험하길 바라본다. (더불어 작가님께서 어서 '이 책만큼 멋진' 다음 책을 선보여주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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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는 누구야? 팜파스 그림책 9
김연주 지음 / 팜파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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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책은 익살 넘치는 표지 덕분에, 책을 만나기도 전부터 궁금했던 “쟤는 누구야?”입니다. 제목처럼 두더지일까, 여우일까- 예상조차 할 수 없던 이 책을 실물로 만나니 역시나, 표지부터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꽃 아우라에 부끄러운 듯 서 있는 “정체불명의 동물”은 심지어 부끄러워하기까지 합니다. 나무에 숨은 다른 동물들처럼 나도 같이 “쟤는 누구야?” 하는 마음으로 책을 열었습니다. (실제 주인공 바바는 카피바라라는 종이라고 합니다. 카피바라 : 남아메리카에 서식하는 설치류)  

 

맙소사! 이 책은 그림책이야, 애니메이션이야? 페이지를 꽉 채우는 귀여움 가득한 일러스트에는 저마다 종알종알 이야기하는 동물들이 가득합니다. 각 페이지에 등장하는 동물이나 집, 학교, 이불이나 채소 등의 모양이 어찌나 귀여운지 그대로 똑똑 때다 집을 장식하고 싶을 정도. 더욱 놀라운 것은 손톱만 하게 그려진 동물들의 얼굴도 저마다 모두 다르고, 각기의 이야기를 나누거나 행동을 취하고 있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 집 꼬마는 이 책을 펼쳐 들고 3시간이 넘게 동물들의 이야기를 읽고, 표정을 관찰하고, 무엇을 먹는지, 무엇을 하고 노는지 살피며 즐거워했으니 얼마나 귀여운 책인지 예상이 될까요? (엄마, 이거 봐. 어머 고슴도치가 커피를 마셔~ 엄마 돼지는 교실에서도 뭘 계속 먹어~ 엄마 누구는 어쩌고 엄마 얘는 저쩌고~)

 

신기하게도 문장 대신 전부 대사로만 이루어진 이 책은 그림책과 애니메이션의 장점을 모두 담은 듯합니다. 아이가 보고 싶은 페이지는 계속 머물러 볼 수 있으면서도, 대사가 가득하다 보니 생동감이 느껴지니 말입니다. 각 동물들의 표정이나 행동을 관찰하여 다양한 기분이나 감정을 예상할 수 있고, 말주머니와 생각주머니를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어 더욱 좋았습니다. 우리 꼬마는 “표정 밖에도 표정이 있어요” 라며 동물들 주변에 그려진 놀라는 번개, 물음표, 땀방울, 음표 등을 매우 세세히 관찰하고 재미있어 했답니다. (당연히 자신의 그림에 반영하기도 했죠.) 영유아기 그림책에서 이제 학습만화나 문고로 옮겨가야 할 아이들에게는 다리 같은 역할로, 더 어린아이들에게는 새로운 느낌의 그림책으로 더없이 좋은 페이지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익살스러운 일러스트가 전부냐. 그랬다면 소개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내용 면도 너무 좋아요. 특히 낯선 곳에 새로 적응해야 하는 신학기나, 전학 등의 상황에 노출해주면 너무 좋을 듯하고, 반대로 낯선 상황에 처한 친구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너무 좋아서, 이런 책은 교실에 하나쯤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답니다. 

 

이 책의 주인공 바바(쟤)의 감정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부끄러워하다가 이내 어색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변하고, 원래 살던 곳과 원래의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엄마·아빠를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한 친구가 토끼가 내밀어 준 덕분에 새 친구들을 사귀게 되고, 자신이 살던 곳에 관해 이야기하며 서서히 친구들과 가까워지죠. 그렇게 바바는 원래 그곳에 살던 아이처럼 친구들과 더없이 친한 사이가 되고, 새로 전학 온 친구 코알라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주기까지 할 정도로 마을에 적응하게 됩니다. 

 

친구들 감정변화도 주목할 만합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어른들의 수군거림에 동조하고, 수줍어하는 바바를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살짝 거리를 두기도 하죠. 그러나 이내 스스럼없이 바바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다가 친구로 받아들이게 되죠. 이 부분을 살피면서는 어른들이 얼마나 입조심을 해야 하는지 살짝 생각해보았답니다 ^^:

 

'적응'은 아이도 어른도 너무 힘든 일입니다. 아마 좁은 인간관계와 세상을 유지하는 아이들의 경우는 그 스트레스가 더 클 테고요. 이사나 전학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어쩌면 매 순간이 적응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렇게 위트 가득한 책으로 아이와 즐겁게 수다를 떨고 나면 아이의 마음을 조금 더 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요즘 아이들처럼 “귀염뽀작”이라는 단어를 절로 떠올리게 한 그림책, “쟤는 누구야?”였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읽었어요

1. 그림마다 동물들이나 배경을 관찰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보아요.

2. 생각 주머니만 있는 동물은 말 주머니를, 말 주머니만 있는 동물은 생각주머니를 만들어보아요.

3. 낯선 곳에 대한 적응, 신학기나 전학 온 친구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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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불꽃처럼 맞선 자들 - 새로운 세상을 꿈꾼 25명의 20세기 한국사
강부원 지음 / 믹스커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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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현은 죽기 직전, 아들 '김성삼'과 손자 '김시련'에게 소중히 보관해온 행랑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249원 80전'이 들어있었다. 그녀는 이 돈을 조선이 독립했을 때 '독립축하금'으로 쓰라는 유언을 남겼다. 실제로 이 돈은 해방 후 1946년 3.1절 기념식에서 김구와 이승만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p.47) 

 

학창시절부터 역사서를 좋아하긴 했으나, 여전히 역사는 어렵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학창시절에는 '문제를 잘 푸느라' 어려웠고, 지금은 온 마음을 다해 '감사하고 죄송해하며 읽느라' 어렵다. 어느 시대의 위인인들 우리에게 좋은 영향을 주신 분들이 대다수니 감사하지 않겠냐마는, 죄송한 마음이 함께 드는 20세기의 역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더 공부하게 하고 생각하게 한다. 언제인가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김이경 저. 한겨레 2021 출판)”를 읽고 한동안 묵직함을 떨칠 수 없었는데, 오늘 소개할 이 책 역시 그런 묵직한 찬사를 할 수밖에 없는 책이다.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리뷰 https://blog.naver.com/renai_jin/222274419032) 

 

한 드라마에서 보통의 여인들이 방안의 꽃으로 살다 간다면,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은 불꽃으로 산다고 하였던가. 이 책은 그렇게 불꽃으로 살다간 25명을 이야기한다. 그야말로 책 제목처럼 새로운 세상을 꿈꾼 “역사에 불꽃처럼 맞선 자들” 이야기다. “세상에 맞서 싸운 여자들”, “최초의 도전을 감행한 자들”, “시대와 불화한 열정과 분노”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진 이 책은 25명 어느 하나 경중을 따질 수 없이 묵직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강주룡, 남자현, 김점동, 나운규, 김승옥 등을 비롯하여 '감사하고 꼭 기억해야 할' 이름들을 또박또박 부르고 있다. 

 

세상에 드러난 이들의 이야기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도 있었으나, 25명의 이야기는 하나하나 저마다의 서사와 깨달음을 지니고 있었다. 담담한 문장으로 이어지는 글이나, 결코 담담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아무렇게나 잊혀도 무방한 이름은 없다며,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으로 꺼내온 작가님도 그들이 바꿔놓은 '어제'를 고마워하고 미안해한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역사서를 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알지 못했던 5개의 이름과 그래도 무엇을 한 사람이라고 한 줄 정도는 나열할 수 있는 20개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 내내 자세를 한번도 바꾸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자세를 바꿀 틈도 없이 심취하여 읽었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이 책은 25명의 삶을, 사상을, 업적을 촘촘하게 기록하고 있다. '메인의 역사'가 아니라 읽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 이 책에는 역사의 그늘에 숨겨진 조연이 아니라, 25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 책을 만나고 나면, 그들이 왜 주인공인지 너무나 여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나운규의 성난 얼굴은 견고한 성벽을 향해 던진 작은 달걀 하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운규는 그 후 한국 영화계가 낳은 '기린아'이자 '풍운아'가 됐다. (p.231) 

 

나운규에 대해 작가가 기록한 이 말은, 어쩌면 이 책의 25명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견고한 성벽을 향해 작은 달걀을 던졌다. 달걀 파편이 자신에게 튀어도, 때로는 성벽이 무너져도 발을 떼지 않고 계속해서 달걀을 던졌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가 있다. 그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고, 그래서 정말 세상이 바뀌었다. 

 

나도 한때는 그들과 내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변하기까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오늘 이 책을 통해, 다시 확인받는다. 역사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동시에 비추는 거울임을. 그들의 신념으로 우리의 오늘이 조금 더 나았고, 우리의 신념은 아이들의 내일을 조금 더 낫게 만들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작가가 한글자 한글자 온 마음으로 적었을 25명의 이름에 나도 감사의 마음을 보태며, 이렇게 묵직한 지식을 선물해주신 작가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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